#01 사람의 아픔은.'''저녁 여덟 시가 다 되가는 시간, 다희는 여의도역 근처에 있는 별 다방에 앉아있었다. 어젯밤 나주에 있는 남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수능시험이 끝난 지는 보름이 넘었음에도, 이제 서야 다희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투덜거리기만 한 채 전화를 끊었다. 다희는 준희의 힘없는 목소리가 못내 마음에 걸려, 아침부터 준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은 닿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색 유리컵을 손으로 감싸 안았다. 손끝이 데일만큼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나른해졌다. 따뜻한 온기와, 바람에 몸이 축 늘어졌다. 이층 창가에 앉아,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때 하정이 말했던 ‘사람구경’이 얼마나 재밌는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목도리를 친친 감고 장갑을 끼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좌판에서 액세서리, 털모자를 팔고 있는 아저씨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익숙한 냄새와 함께, 누군가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언제 왔어?”'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미지근한 목소리였다.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연애하는 내내 항상 그랬던 것처럼…….'“이십 분 정도.”'오랜만에 보는 준영의 얼굴을 고개를 돌려 자세히 쳐다봤다. 회사일이 바쁘다는 말이 핑계가 아니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것처럼 준영의 얼굴은 많이 야위었다. 까칠까칠 해 보이는 턱수염이 눈에 띄었다.'“춥지?”'“응, 그렇지 뭐.”'한 살 차이가 나는 연인이라고 보기엔, 어딘가 모르게 2% 부족한 느낌이 드는 준영의 태도는 무미건조했고, 다희도 그런 준영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듯 그저 대답만 꼬박꼬박 할 뿐이었다. '두 사람은 전철역에서 빠져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또는 지하철역 안으로 바삐 들어가는 사람들 모습을 쳐다본 채 어떤 말도 오가지 않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침묵만이 오갔지만 다희는 잠시나마 이별의 낌새를 눈치 채고 있었다. 여자의 직감은 언제나 적중하는 법이었다.'“……다희야, 헤어지자.”'두 눈을 꼭 감았다. 오늘 아침 화장대 앞에서 준영이 선물해 주었던 핑크색의 손거울이 와장창이라는 소음을 내며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듯 조각조각 깨졌다. 아침부터 유리가 깨졌다며, 하정의 투덜거림이 귓가에 아직도 맴도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 준영과 자신을 감싸고 있는 공기는, 옆 자리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는 여자들의 공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냉담했다.'“……그래, 오빠 결정이라면 그렇게 해야지.”'“내 결정이 아니라, 너도 그러길 원하고 있었잖아. 이렇게 질질 끌 필요는 없을 것 같다.”'다희는 유리컵을 바라보던 시선을 옮겨 준영을 쳐다봤다. 준영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그건 곧, 준영도 지금 이 상황이 편하지 않다는 걸 증명해주는 거였다.'“내가, 오빠랑 헤어지길 원했다고?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한 가지만 물을게. 내가 만나자고 했을 때 피했던 거 다른 여자 생겼어?”'“……응, 다른 여자 생겼다. 이제 너와 정리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