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버려진 사람들

장 내관은 유환을 황궁의 가장 은밀한 곳으로 안내했다. 황제의 침전 안 늘어진 족자를 걷자 나타난 문, 그 뒤로 이어지는 좁은 내벽.

한참 후 그가 도착한 곳은 세 사람이 간신히 서 있을 만한 작은 방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황제, 즉 유환의 아버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바마마, 소자 왔습니다.”

뒷짐을 지고 서 있던 황제가 천천히 뒤를 돌았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들어 유환을 바라볼 뿐이었다. 한 나라의 지존으로 존귀한 그의 얼굴에는 평안함보다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다시 황제의 눈길이 머문 곳은 하나밖에 없는 제 아들의 소맷자락이었다. 이 나라 다음을 이을 태자의 소매 끝단이 매우 낡았다. 몰래 황궁을 빠져나가기 위한 변장임을 아는데도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살아야 한다.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황제는 분을 삭였다. 이 모든 것이 내 탓이다.

“왔… 느냐.”

황제의 목소리가 떨렸다. 점점 나빠지는 그의 병세 때문이기도 했지만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멀리 보내야 하는 아버지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서이기도 했다.

“미안하다. 이 못난.”

“아바마마, 걱정하지 마십시오. 몸 잘 보전하고 뜻을 같이할 동지들과 돌아오겠습니다. 이 험한 곳에 아바마마만… 송구할 따름이옵니다.”

황궁 안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황제. 그리고 태자는 암흑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이 자리에 섰다.

“내가 힘이 없어 내 자식도 지키지 못하는구나.”

“아닙니다. 제가 부족해서… 제가.”

“서두르거라.”

유환의 말을 막으며 황제가 무명천으로 겹겹이 싼 보자기를 그의 손에 꼭 쥐여 주었다.

“이미 냄새를 맡았는지 모른다. 지체하다가는 네 목숨도 부지할 수 없느니라.”

“아바마마.”

“난 기필코 살아남을 것이다. 네가 힘을 갖고 돌아올 때까지 끝까지 살아남아 너를 위해 황궁 문을 활짝 열겠노라. 너는 가서 정진하고 네 사람을 모으고 힘을 만들 거라. 그때까지 내가 이 자리를 지키마.”

황제는 제 아들의 손을 단단히 맞잡았다.

“이 안에 너에게 황위를 양위한다는 칙서와 너를 도와줄 사람들을 위한 지방 봉토 문서가 있다. 이걸 가지고 가서 네 자리를 만들어라. 내 그때를 기다리마. 어서… 어서 가거라.”

황제는 아들의 등을 억지로 돌렸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 아들의 등에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살아서… 살아서 만나자. 내 아들, 유환아.”

황제의 말이 끝나자마자 장 내관이 유환을 끌고 좁은 방 끝에 난 쪽문으로 밀었다.

“어서 가십시오. 이 길 끝에 우호가 전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폐하 걱정은 마십시오.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어서.”

늙은 내관의 마른 손가락이 그의 등을 세차게 밀었다.

“이러다 발각되면 전하도 폐하도 끝입니다. 제발… 서두르십시오.”

결국 피눈물을 삼키며 유환은 좁고 어두운 길을 걸었다.

내 다음은 빛이 쏟아지는 대낮에 저 황궁 문을 활짝 열고 보란 듯이 돌아오리라. 그땐 내 아버지를 병들게 하고 내 어머니를 죽인 그놈들을 모두 내 발밑에서 짓이기리라. 다시는 이런 치욕을 겪지 않으리라.

어두운 길 끝에 작은 불빛이 어른거렸다. 호위무사 우호가 저를 기다리는 불빛이리라. 유환은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유환을 발견한 우호도 그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전하, 서두르십시오. 놈들이 이미 곳곳에 깔려 있습니다.”

유환은 우호에게 황제가 준 보자기를 넘기며 말했다.

“보고 올 사람이 있다.”

“네?”

한시가 급한 이 시점에 보고 올 사람이라니. 누군지 뻔히 짐작이 가지만 그녀를 만나러 갔다가 변이라도 당하면 그 후환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서신을 남기십시오. 지금 뵈러 가시는 것은 위험합니다.”

“잠시면 된다. 기약 없이 떠나는데 뭐라도 전해야 할 것이 아니냐?”

사랑한다면 기약이 없어도 기다릴 것이 옵니다. 목구멍까지 할 말이 차올랐지만, 우호는 차마 전할 수 없었다.

“일단 네가 먼저 떠나거라. 곧 너를 뒤따를 테니. 둘이 움직이는 것보다는 혼자가 더 수월할 터. 동완에서 보자.”

우호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유환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빠르게 이화와의 약속 장소로 뛰었다.

촤악!

살을 벨 듯한 찬물이 유환 위로 쏟아졌다. 벌어진 살갗으로 흘러드는 찬물 때문에 저도 모르게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분명 이화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느껴지는 둔통. 눈을 떠 보니 자신은 입에 재갈이 물린 채 흙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자신은 왜 이곳에 있는 것이며 저를 내려다보는 저들은 누구란 말인가. 도대체 자신은 왜 영문도 모르고 그들에게 쏟아지는 매를 맞아야 한단 말인가. 눈을 뜬 순간부터 기절하는 순간까지 그저 매질, 매질뿐이었다. 재갈이 물려 있으니 비명도 제대로 지를 수 없었다.

숙부일까? 숙부라면 그를 죽여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는 게 빠르지 않았을까?

입에 물린 나무토막에 빼곡히 잇자국이 새겨질 때쯤 그는 이 매질이 그를 길들이기 위한 것임을 알았다. 고개를 들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을 때야 재갈이 풀렸다. 그러나 그는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

쩍쩍 갈라진 입안으로 오직 물 한 방울만이 떨어지길 바랄 뿐이었다. 허공을 향해 벌린 입을 벌름거릴 때 물 한 바가지가 그에게 쏟아졌다. 찬물이 헤진 살갗을 저미는 통증보다도 입 안으로 스며드는 물기가 달콤했다.

퍽!

뻐끔뻐끔 얼굴에서 흐르는 물기를 입 안으로 담을 때 장정 한 명이 그의 배를 세게 걷어찼다. 헉하며 허리가 굽어지는 와중에도 땅바닥에 떨어진 물기에 입을 댔다.

“야, 일어나!”

남자가 그에게 일어나라는 명령을 했다. 유환은 남자의 말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지난번 그의 명을 어겼다가 밤새 또 매질을 견뎌야 했다. 그 기억으로 그의 몸이 반사적으로 명령을 따랐다.

“음, 이제 좀 말을 듣겠군.”

길들여졌다는 말에 자괴감이 들어야 하는데 이 매질이 끝났다는 안도감만 들었다.

“야, 얘는 며칠 걸렸냐?”

“열흘 정도. 좀 독한 놈인가 보네.”

“그럼, 투견장에 보낼까?”

“괜찮은데? 덩치도 있으니까 값을 좀 받겠어.”

툭, 사내 한 명이 그의 앞으로 굳은 떡 한 덩이를 던져 주었다.

“야, 이거 먹고 기다려. 네 주인을 모셔올 테니.”

사내들이 사라지자 유환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바닥에 고개를 박았다.

주인이라니… 한 나라의 태자가 주인을 기다리는 신세라니. 재갈이 풀렸는데 왜 자신은 혀를 깨물고 죽지 못하는가. 왜 저 흙투성이 떡에 혀를 내밀고 있는 것인가.

무엇보다 두 무릎을 모으고 얌전히 주인을 기다리는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

유모의 손을 놓친 아이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저는 제대로 잡고 있었는데 왜 홀로 이 시장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인지.

아이는 알고 있었다. 악착같이 잡은 손을 모질게 놓아버린 것은 자신이 아니었음을.

처음도 아니었다. 이번은 지난번보다 훨씬 먼 곳이고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곳이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만 같았다.

아이는 얼른 사람들 사이를 벗어나 골목으로 달렸다. 푸른 옷감이 즐비하던 곳을 지나왔다. 포목점을 찾아야 한다. 달리고 또 달리고 찾고 또 찾았지만 푸른 옷감이 늘어져 있던 포목점은 찾을 수가 없었다.

못 돌아갈 수도 있겠구나.

아이는 제품에 있는 주머니를 꺼냈다. 집에 돌아가기 전에 이걸 잃어버리면 안 된다. 숨겨야 한다.

아이는 주변을 돌아보다 야트막한 언덕이 보이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다 죽어가는 소나무 하나를 발견했다. 다음에도 찾을 수 있을 곳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나무 옆에 있는 큰 바위 밑을 사정없이 파냈다.

그 구덩이에 제 주머니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겉옷을 벗어 겉이 속으로 들어가도록 접어 주머니 위에 얹고 흙을 꼼꼼히 덮었다.

“꼭 찾으러 올게.”

아이는 다짐하며 흙더미가 드러나지 않도록 주변 나뭇잎을 긁어 덮었다. 살짝 눈가가 젖어 드는 것 같았지만 아이는 씩씩하게 손등으로 눈을 문지르고 돌아 내려갔다.

***

동완으로 가는 여각에 며칠을 머물렀으나 유환은 끝끝내 오지 않았다. 우호는 수도로 다시 돌아가 황궁과 다시 연락을 취하려고 했지만 모든 연통이 막혔다. 게다가 황궁을 에워싼 황제의 동생 양왕의 사병들.

황궁에 무슨 일이 터진 것이 분명했다.

혹시나 해서 이화의 아비인 승상의 집 근처를 배회했지만, 그곳도 양왕의 사병들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제발 태자 유환이 무사하기를.

결국 그는 홀로 동완으로 내려가 유환을 기다리기로 했다. 유환은 꼭 그를 찾으러 올 것이다.

***

건나라 수도 제1의 상단인 주문상회가 난리가 났다. 태수의 오른팔을 자청했던 주래원이 늘그막에 딸을 얻어 벼슬도 버리고 제집에 들어앉았다.

늙은 어미의 몸에서 난 자식이라서 그런지 병치레가 잦아 주래원은 딸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온갖 약초를 섭렵했다. 그러다 작은 약방을 차려 약초들을 사 모으다 인삼, 소금 등에 손대더니 그게 금세 큰 상회가 되었다.

딸 주여가가 아홉 살 되던 해에는 그가 만든 주문상회가 수도에서 가장 큰 상단을 거느리게 된 것이다. 다들 주여가가 복덩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딸이 사라진 것이다.

유모와 함께 장터 구경을 갔다 그녀가 잠깐 물건을 보는 사이에 아이가 유모의 손을 뿌리치고 뛰어나갔다고 했다. 함께 간 하인들과 유모가 근방을 백방 찾았지만 아이의 흔적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얼마 전에도 아이는 이런 식으로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워낙 호기심이 많고 천방지축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라 간혹 홀로 집을 나가거나 길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몇 식경 안에 돌아오는 아이였는데 이번에는 하루가 다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상회 모든 사람이 주변을 샅샅이 찾았지만 아이는 찾을 수가 없었다.

***

“옜다.”

예기는 돈뭉치가 든 주머니를 여가의 유모에게 던졌다. 주머니를 받자마자 유모는 고개가 땅에 닿을 정도로 굽실했다.

“내가 대감께 너를 크게 꾸짖어 내쫓는다고 했다. 그러니 네 고향으로 돌아가 쥐 죽은 듯이 살아라.”

“네, 네. 알겠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려가겠습니다.”

“물론 입도 잘 꿰매고.”

“예, 예, 여부가 있겠습니다. 그럼, 만수무강하시고.”

“됐다. 어서 가거라.”

유모의 말을 끊고 예기는 그녀를 빨리 내보냈다. 땅에 닿은 이마를 질질 끌고 나가는 유모를 보며 예기가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제대로 한 것 같은데….”

쓰윽, 병풍 뒤에서 누군가 나와 그녀 옆에 앉았다.

“워낙 영특한 아이라 또 찾아올지도 모르죠.”

초를 치는 남자를 휙 돌아보다 예기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아무리 영특하다 해도 고것이 지방 하나를 넘어 올 수 있겠느냐?”

“물론 없지만 그 동안 잘도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벌써 닷새야. 아직 소식이 없는 것을 보니 영영 오지 못하는 게다.”

그래도 여자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딱 죽여 버리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한 번 믿게 된 미신을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여가를 죽이는 사람은 천벌이 아니라 만 벌 아니 뼈가 가루가 되도록 그 벌을 받는다.’

그러니 함부로 죽일 수 없었다. 그래서 멀리도 가까이도 버리고 떼어 놓기도 많이 했다. 하지만 번번이 찾아오는 고것이 정말 귀신인가 싶을 정도였다. 어린 것이 어찌나 제집을 귀신같이 찾으러 오는지.

이번은 아닐 거다. 이번은 분명 못 올 거야.

***

장날이라서 그런지 작은 주막에도 사람들이 득시글거렸다. 늙은 주모는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주문하는 족족 국밥을 내어 가고 수육을 쓸었다. 정신없이 내 가다 보니 마당 한가운데 큰 쟁반에 쌓였던 깨끗한 그릇이 다 떨어졌다. 들어가서 대충 그릇이라도 헹궈서 내놔야 하는데 손님이 자꾸 들이치니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주모, 여기 술이랑 국밥.”

에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으니 오는 손님도 반갑지 않네.

손님 주문에 부엌에 들어가려다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아이를 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아이가 대야 앞에 앉아 국그릇을 닦고 있지 않은가.

“넌… 넌 누구냐?”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는 대답 없이 씻은 그릇들을 그녀 앞에 내밀었다.

“주모, 국밥은 언제 줄 거야?”

재촉하는 소리에 주모는 아이의 대답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 그릇을 들고 나갔다. 끓는 솥에서 국밥을 퍼 손님에게 내어 갔더니 또 다른 손님이 부른다.

“주모, 여기 수육 한 접시 가져 와.”

수육? 내가 수육을 썰어 놨었나? 다시 부엌에 들어가니 고 콩알만 한 아이가 수육을 꺼내 팔뚝보다 큰 칼로 썩썩 썰어 내놓는다. 한 접시 분만 덜어서 나가자 아이는 남은 고기를 다시 찜통에 집어넣었다.

한 개 정도 먹어도 모르는데 그걸 죄다 다시 넣어?

수육을 내주고 돌아오니 아이는 다시 쪼그리고 앉아 그릇을 헹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보다 주모는 다시 정신없이 손님에게 상을 내가고 술을 내갔다. 그러느라 오밤중까지 저녁도 못 먹었는데 부엌을 치울 생각에 주모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밥이고 뭐고 들어가서 죽은 듯이 잠이라도 자면 좋겠구먼.

하지만 하루만 장사하고 문 닫을 수는 없지 않은가. 천근만근 다리를 질질 끌고 부엌으로 다시 들어갔더니 아까 낮에 봤던 아이가 부엌 바닥을 쓸고 있지 않은가. 접시며 그릇, 솥까지 깨끗이 닦아 놓은 채.

아, 이 녀석 누구라고 했더라?

“넌 뭐냐?”

주모의 물음에 아이는 빗자루를 옆에 가지런히 놓고 그녀 앞에 서서 고개를 푹 숙였다.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여길 기어들어 와서 이러고 있냐?”

설마 남은 수육을 먹은 건 아니지? 주모는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아직도 김이 나는 솥을 열었다. 딱 봐도 아까 팔고 남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럼, 국밥이라도 먹으려고? 하지만 국밥 솥은 마당에 있었고 이 아이가 밖으로 나온 것은 본 적이 없었다.

“너 뭐라도 먹었냐?”

“….”

아이는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손님상 내가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은 자신보다 훨씬 작은 아이가 그 많은 부엌일을 혼자 다 했다면 아이도 허기에 지쳤을 거다.

“일단 나와라.”

주모는 남은 수육을 그릇에 담아 마당 가운데 평상에 놓았다.

“먹고 얘기하자. 나도 배가 고파 뱃가죽이 등짝에 붙겠다.”

주모는 젓가락을 들어 수육 한 덩이를 입에 넣었다. 오래 삶아져서 야들야들한 것이 맛이 기가 막혔다. 허겁지겁 몇 조각을 먹고 보니 아이는 평상 끄트머리에 앉아 저만 쳐다보고 있었다. 침을 꿀꺽꿀꺽 삼키면서.

주모는 커다란 고깃덩이를 한 개 집어 아이 입 앞에 갖다 댔다. 아이가 머뭇대고 있자 젓가락으로 입을 벌리라는 시늉을 했다. 살짝 입이 벌어지자 쑤욱 고깃덩이가 들어갔다.

“씹어.”

입 안에 든 고기를 어찌할 바 몰라 멍하니 있을 때 주모가 말하니 아이가 그제서야 야무지게 씹었다.

“너 몇 살이냐?”

“아홉 살입니다.”

생각보다 나이가 있네.

“네 부모가 널 여기다 버렸냐?”

가난한 부모들이 종종 밥이라도 얻어먹으라고 객잔이나 주막에 아이를 버려두고 가는 경우가 있었다.

“아닙니다.”

“그럼? 네가 집을 나왔냐?”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뭐냐?”

“그건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쪼그만 게 아주 강단 있게 말한다.

“뭐,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고. 그래서 넌 여기 왜 있는 거냐?”

“잠깐만 있게 해주십시오. 제가 설거지며 청소, 빨래도 하겠습니다. 그저 밥만 먹여주시고 잠만 재워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