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그녀가 돌아왔다

“쳇! 나빴어!”

마지막에 그 소리와 함께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지만 이브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 신경 쓰기에도 바빴지만, 일단 중요한 것은 당장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는 것이다.

솔직히 아직 보육원에 갈 때까지 시간이야 많이 남았지만 그럼에도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오늘따라 저러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야 하지만 한번 그가 하자는 대로 다 따랐다가는 무작정 휘말리기 십상이다.

“진짜 나가는 거야? 응? 오후에 간다고 했잖아!”

“어휴, 정말. 애초에 이건 당신 일이기도 하잖아요?”

“다, 당신?”

듣기만 해도 생소한, 이브가 말하니 더 어색한 호칭에 그만 소름이 오소소 돋고 말았다. 솔현은 대략 3초간 멍하니 서 있었다. 이브는 얼굴에 톡톡 로션을 바르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잖아요? 벌써 몇 년 전에 어머님께서 신랑님에게 맡긴 일이라는 거. 그런데 요새 이거 내가 다 하는 건 알아요?”

“그, 그거야….”

“생각해 봐요. 할아버님 돌아가시고 누가 지금껏 이 일을 하느라 쉴 틈이 없었는지. 재단 규모가 지금 얼마나 커졌는지는 알아요? 작게 시작했다고 해서 사업이 아닌 것도 아니고. 이 일을 해야 사회적으로도, 우리 집안 재정까지도 책임을 다한다는 것쯤 아무리 어려도 신랑님이 더 잘 알잖아요.”

“…….”

그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프게 콕콕 찌르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게 당연한 거였다.

“지금 신랑님이 스물세 살이지만, 난 아까도 말했듯이 스무 살이에요. 이제 미성년자도 아니고 엄연히 책임감이라는 것이 생겨야 할 어른이라고요!”

어쩌면 처음으로 이브는 날카롭게 소리쳤다. 풀이 죽은 그의 모습에 약해질 뻔했지만 이젠 그만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두 사람의 지난 일주일 일정만 보더라도 이미 이브의 일정은 꽉꽉 차서 보통 대학생이라면 숨도 쉬기 힘들 것 같은 상태였으니까.

그에 비해 얼추 바쁘다고는 해도 솔현의 일정은 생각 외로 더 여유 있었다. 더군다나 자신과 평생 함께해야 할 이 남자는 다름 아닌 대재벌, 예성가의 막내아들 아니던가.

편안한 차림을 하고 일어선 이브는 싸늘한 얼굴로 현관으로 갔다. 그 뒷모습조차 우아하니 몸에 밴 곧은 걸음걸이가 오늘은 기가 막히게 무서웠다.

“저, 이브… 내가….”

“됐어요. 나갈 거니까 그만 불러요.”

탁. 문이 닫히고 덩그러니 집 안에 남은 솔현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으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화… 화났다. 내 신부가.”

***

“이브!”

“아, 하선아.”

요새 보육원으로 출근하는 것은 이브뿐만이 아니었다. 요새 한창 이 기업, 저 기업 불려 다니며 정신없이 일을 해야 했던 하선도 주말을 맞이해 이곳에서 봉사 활동을 왔다.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좀 피곤해서. 지성 씨는?”

“오늘 다른 일정이 있어서. 이따가 나 끝나면 데리러 온다고 했어.”

“너는 괜찮고?”

“나야 뭐, 이제 적응할 만하지.”

여느 때처럼 밝게 웃는 하선 또한, 특유의 소탈한 분위기로 이곳 아이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었다. 공부도 워낙 잘했던 터라 이브와 함께 아이들의 공부도 봐주고 요샌 오빠인 하민이 교육 관련해서 재능 기부 형식으로 무료로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만들어서 그곳으로 보육원 아이들을 연결해 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이브 못지않게 어마어마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지만 언제나 그녀는 활기가 넘쳤다.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한 번씩 만날 때면 마음이 편해질 정도로.

“솔현 씨는, 오늘 쉬는 날?”

“뭐, 그렇지.”

아무리 친해도 차마 싸웠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하선은 대강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감정을 감추는 일에 능숙한 이브이지만, 지금 표정은 벌써부터 지쳐 보였다.

“아쉽네. 매번 봉사를 올 때마다 보이질 않으니.”

“그럴까. 뭐, 됐어.”

“참. 그 이야기 들었어?”

“응?”

“정희연. 귀국했다는 이야기.”

툭. 미리 보육원으로 배송 보냈던 교구를 정리하다가 이브는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제 사회적 위치로 봤을 때, 오히려 희연은 이브의 상대가 되지 않겠지만 아주 가끔은 그녀가 궁금하긴 했었다. 유학을 떠난 이후, 단 한 번도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지만 딱 한 번, 박 비서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일이 생각났다.

‘요샌 잠잠하게 지내는 것 같지만 조용히 뭔가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조심하셔야 할 것 같군요.’

“그래. 역시 돌아왔구나.”

“역시?”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어. 그대로 물러나진 않겠지.”

“혹시, 아직 솔현 씨에게 미련이 남은 건….”

걱정스러운 얼굴로 하선이 중얼거리자 이브는 고개를 저었다.

“내 감이 맞다면, 그녀는 분명 접근은 해볼지 몰라도 본심은 아닐 거야.”

“그렇게 쉽게 볼 수 있을까? 혹시 모르잖아. 오랜 기간 짝사랑했었다 하고.”

“내가 보기에는 할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 것 같긴 한데.”

신 회장이 생전에 희연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사실 어린 소녀이기에 그냥 두기는 했지만 종종 솔현을 불러 몇 번 이야기한 전적도 있었고 더군다나 그녀의 할아버지인 전 정 의원은 워낙 탐욕적인 사람이라 더욱 싫어했다.

물론 희연이 유학을 떠난 후, 정계에서 거의 끌어내려지다시피 해서 1년 전쯤, 정신이 이상해지더니 세상을 떠났다는 루머가 떠돌았던 것이다. 정수하 원장은 그길로 미국으로 떠났다던가. 하지만 진실은 조금 달랐다. 정신이 이상해진 것은 맞지만, 쇠약해진 상태로 어딘가에서 요양 중이었으니까.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고 해도 재산만큼은 상당했을 거야. 물론 정치판에 발을 들이지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행적은 조사해 볼 만해.”

“또 널 노리는 건 아니겠지?”

“아마도. 그럴 목적이 아니라면 귀국하지 않겠지. 아무리 잠잠해졌다고 해도 집안마다 소문이 파다하니 누가 받아 줄 리도 없고.”

“하긴.”

“…소정일 찾아갈지도 모르겠는걸.”

“소정이라면, 그 공범?”

순간 하선의 눈이 커졌다. 물론 그 집안도 대단했지만 재단 이사장직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내려온 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던 것이다.

“얼마 전 과 동기에게 들었어. 그 애가 같은 학교로 전학 왔었다고.”

“하지만 찾아가기에는 우리도 그간 행적을 모르고 살았잖아? 관심 없다는 쪽이 더 맞는 이야기이겠지만.”

“하지만 희연의 입장에서야 그 애가 수족이나 마찬가지였는걸. 더군다나 두 사람이 퇴학당하던 날, 희연의 어머니라는 사람이 마지막까지 길길이 날뛰었으니.”

이미 오래전 이야기지만 아직까지 생생했다. 다신 마주치기도 끔찍할 만큼, 독하게 남 탓을 하던 그 중년 여자. 희연의 지시로 그림을 찢어 버렸던 소정의 탓을 해댄 것을 생각하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너, 솔직히 솔현 씨랑 싸운 것 맞지?”

“…뭐.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으니까.”

“잘 이야기해 봐. 너희 신 회장님 돌아가신 이후로 미세하지만 조금 감정이 뒤틀린 느낌이야.”

“난 그래도 그 사람 사랑하는걸.”

“그야 그렇겠지. 청혼도 받았다며.”

“으응.”

아주 잠깐 그 생각이 났는지 이브는 볼을 붉혔다. 분명 좋아하고, 가끔은 의지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지만 오늘 일은 너무했어. 바로잡아 줄 필요는 있지.”

“이브. 넌 너무 어른스러워서 걱정돼.”

“내가?”

이브는 의아한 얼굴로 갸웃거렸다. 물론 그렇게 지내 온 시간이 있으니 보통 또래에 비해 많은 것을 쥐고, 무거운 책임감으로 살아야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스무 살 어린 아가씨라는 사실을 잊고 산 적은 없었기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실 그가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는 것은 맞아. 하지만 같은 세상에서 자란 우리가 봐도 넌 너무 어른스러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혹시 말인데… 은연중에 눈치 보는 것 아냐?”

“내가?”

세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특히나 어린 시절부터 기사화되고 이미 유명 인사나 다름없으니 행동 하나에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더군다나 재벌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나 편견이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 뜯기듯 비난을 받았던 적도 있으니까.

“우린 그렇게 살아야만 하잖아.”

“그야 조심하는 것이 당연하기는 해. 하지만 가족들에게도 눈치 보는 것 같아.”

“가족들에게는 그다지….”

“우리 집만 해도, 아버지 어머니에게 그렇게까지 예의 차리지는 않는다고. 그리고 부모님 입장에서 우린 한참 어린 자식들이고. 조금 더 소녀답게 천진난만하게 크길 바라실 수도 있고. 혹시 말인데 부모님에게 떼를 써 본 적, 있어?”

“기억은 안 나.”

그랬던 적이 있기는 했었나, 이브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기억이 나지 않는 시절을 제외하고 대략 초등학교 때부터. 항상 뭘 갖고 싶냐는 물음에는 ‘괜찮아요.’ 혹은 ‘없어요.’

분명 다정하고 따뜻한 딸이었지만 이거 사달라, 저거 해달라 하며 투정을 부려 본 기억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야. 물론 생일 선물이야 우리가 알아서 하기는 하지만. 단 한 번도 너는 이게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그야….”

친구들이라면 예외일까, 어쨌든 센스 있게 먼저 제안을 하는 쪽은 그들이었고 이브도 가끔은 ‘이거 어때?’라고 의견을 구하기는 하지만.

“그러니 마음껏 응석을 부리며 자란 솔현 씨를 네가 이해하지 못할지도, 혹은 그가 너에게 서운할지도 몰라. 그것부터 맞춰야 할 것 같은데.”

“맞는 말이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이브는 아무래도 저녁에 먼저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자신이 그를 무시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었지만 그간 보아 온 그라면 분명 이해해 줄 것이다.

문득 방 안에 둔 토끼 인형이 떠올랐다. 낡기는 했지만 잘 관리해서 여전히 밤에 안고 잘 때가 있었다. 그것을 선물하던 날,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

***

여전히 솔현은 집에 있었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이브에게 갈까, 말까 고민에 빠져 표정은 그야말로 영혼이 가출한 것처럼 멍했다. 진정해 보려고 시원한 물을 벌써 몇 잔이나 들이켰지만 효과는 없었다.

하필 그 와중에도 예뻐 보이다니. 그래서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현명하고 사랑스러운 아내가 화를 내서 더 무섭기도 하고, 그리고….

“에이, 몰라. 일단 가자.”

드디어 결심이 선 듯 솔현은 현관문을 열었다. 제법 훈훈해진 날씨에 하늘도 꽤나 맑았다. 사과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어차피 그의 집안은 예로부터 아내가 하는 말은 무조건 잘 들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출입문을 나서며 솔현은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남겼다. 바쁜지 읽지는 않지만 일단 서둘러 그는 차에 올랐다. 보육원으로 향하는 길목에 새로 생긴 꽃집. 그곳에서 예쁜 꽃다발도 사들고 아이들에게 나눠 줄 간식까지 한 아름 사서 차에 실었다.

“아, 커피도 사갈까?”

분명 주말에도 일을 해서 많이 피곤할 것이다. 시원한 커피 한 잔을 주면 분명 마음이 풀려서 다시 사이좋게 식사를 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그는 마냥 신이 났다. 마침 근처에 이브의 취향에 꼭 맞는 예쁜 카페가 보여서 솔현은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더치커피 아이스 다섯 잔이요.”

자주 가지 않더라도 대략 오늘 몇 명쯤 출근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제 몫까지 사서 나오기만을 기다리는데, 대뜸 누군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오빠?”

“정희연?”

***

희연은 이전에 한국을 떠났을 때보다 더욱더 성숙해져 있었다. 원래 외모는 흠잡을 곳 없이 아름답고 운동을 즐겨 하던 터라 몸매도 예쁘지만 스무 살이 되면서 그 짧은 시간에 뭇 사람들의 이목을 끌 정도로 더 화려하게 피어난 꽃 같았다.

거기에 걸치고 있는 옷, 구두, 액세서리 모두가 하나같이 귀한 사치품이라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마저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솔현은 난감함에 날카로운 그녀의 눈을 피했다. 애초에 그 일 이후 서로 회복되기 어려운 관계가 되지 않았던가.

“오빤 여전하네.”

“언제… 귀국했어?”

“좀 됐어. 오빤 어때, 결혼은 했고?”

“식은 아직. 곧 올릴 예정.”

“그래. 축하해.”

의외로 태도는 차분했다. 이전처럼 매달리며 떼쓰는 일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다지 솔현을 바라보는 눈빛도 애틋하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런 눈이 아니었다.

“난 약속 있어서 왔는데, 커피 사서 급하게 갈 곳이 있었나 봐?”

“응. 좀 바쁜데.”

“그래, 조심히 가. 마침 나오는 것 같네.”

“잘 지냈지?”

뜬금없이 안부를 물었지만 희연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리고 앉았던 자리로 돌아갔다. 보아하니 혼자 온 모양인지 테이블에 주문한 커피는 한 잔뿐이었다. 사실 오랜 시간 친하게 지냈었으니 뭐라 더 말을 해볼까 싶다가도 솔현은 그만두었다.

애초에 희연이 그렇게 떠난 것에는 자신도 한몫했으니 이젠 감정이 좋을 수 없는 관계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하필 건드린 사람은 자신의 신부, 세상 무엇보다 사랑하는 그 아이인 것이다.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희연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다가 이윽고 작은 비웃음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마침 오늘 이 카페에서, 오랜만에 보는 그 멍청한 얼굴을 다시 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오묘했다.

“저….”

“네?”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꽤나 훤칠한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만 놓고 봐서는 나름 잘생긴 축이라 할 수 있으나 입고 있는 옷은 흔한 준 브랜드의 상품이었다.

“아까부터 보고 있었는데, 너무 예쁘셔서. 혹시 번호 좀….”

“어쩌죠?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휴대폰 개통을 못 했는데요.”

“아, 그러셨군요. 그럼 제 번호 드려도 될까요?”

“혹시 뭐 하시는 분인지 물어도 될까요?”

“저, 근처 대학교 다니는 사람인데….”

희연은 주변 대학교가 어디가 있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명문대 근처이기는 하지만….

“혹시 A 대학이신가요?”

“아, 아뇨. 전 C 대학….”

“아.”

물론 이름 있는 학교이기는 했지만 희연의 마음엔 영 들지 않았다. 애초에 이 세계에는 그보다 잘생기고 집안이 좋은 남자들이 허다했다. 비록 제 집안이 이전만 못하다고 하지만 가진 재산만 해도 수백억인데, 굳이 만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죄송한데, 번호는 됐어요.”

“저기… 그래도 필요하신 일 있으면 불러 주셔도 되고, 외국 생활 오래하셨으면 한국 잘 모르실 텐데….”

남자는 의외로 끈질겼다.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올리자 심지어 침까지 꿀꺽 삼키는 모습에 황당해서 희연은 다른 테이블에는 들리지 않게 작게 속삭였다.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집적거려? 꺼져. 별 볼 일 없는 주제에.”

평온한 어조로 가시가 콕콕 박히게 말하자 그는 순간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반반한 얼굴과 다르게 말하는 폼이란, 3년 전에도 지금도 변한 것 따윈 없었다.

“쳇. 짜증 나게.”

그는 괜히 금이 간 자존심을 억누르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의 주변에 앉은 비슷한 남자들이 키득대며 차이고 온 그를 놀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