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아, 하아, 하아!”

열다섯 남짓 되어 보이는 소녀가 힘겹게 산을 오르고 있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6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한낮의 더위는 등을 이미 땀으로 흠뻑 젖게 만든다. 낡은 캔버스 운동화에 흰색 반바지를 입은 소녀의 가느다란 다리에는 무성하게 웃자란 자란 잡초로 인해 군데군데 긁힌 흔적만이 붉게 남아있다.

“조금만 더, 하아, 하아!”

곁에 아무도 없음에도, 소녀는 스스로를 격려하며 목에 매달려 있는 낡은 카메라를 한 손으로 꼭 부여잡았다. 한 시간 넘게 쉬지 않고 가파른 산을 오른 탓에 거칠어진 숨소리 아래로 가슴을 찌르는 통증이 찾아든다.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낮은 잡목이 보이자, 산을 오르던 발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폈다. 산비탈 위로 시야를 가리지 않는 너럭바위를 발견한 소녀는 아찔한 절벽 아래 밑으로 시선을 한 번 돌리고는 서슴없이 바위 위로 올라섰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친 후 목에 건 라이카 카메라의 뚜껑을 조심스럽게 연다. 저 멀리 보이는 마을 어귀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검은 기와가 늘어서 있는 고택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헌재, 소녀의 가족이 있는 곳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찰칵, 찰칵.

마을 한편에 위치한 고택과 함께 돌담 너머로 개화하지 못한 배롱나무 꽃이 막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울, 오밀조밀 모여 있는 낮은 집들과 초록빛을 머금은 들녘, 능선을 지나 과수원이 자리 잡고 있는 구릉지까지 고스란히 카메라 안에 담는다.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과 함께 기분 좋게 느껴지는 소리에 열기로 상기된 소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마을에서 외지로 통하는 유일한 도로가 지나는 산자락 끝까지 모두 필름에 담은 후 다시 렌즈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소녀는,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20여분 정도 더 산을 오른 후에야 소녀는 바위들 사이에서 있는 작은 나무를 발견하고 기쁨을 참지 못하고 해사하게 웃었다.

찰칵, 찰칵, 찰칵.

힘겹게 산에 올라, 셔터에 담아낸 것은 노란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듯한 ‘히어리’였다. 개화 시기가 긴 편이지만 이미 봄이 상당히 지나버려 찾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늘은 운이 좋게도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꽃을 찾았다.

“히어리, 봄의 노래.”

나뭇가지에 매달린 작은 노란색 꽃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소녀는 그렇게 말했다. 꽃을 바라보는 두 눈이 어느새 촉촉하게 젖어든다. 열기가 가득한 손바닥으로 떨어지려는 눈물을 닦아내고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햇볕에 붉게 그을린 가는 목에 걸린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게 몸체를 부여잡은 채 소녀는 다시 자신이 올라왔던 산길을 서둘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부헌재’라 쓰인 낡은 현판 아래.

소녀는 선뜻 마당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좁다랗게 열린 대문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고 안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인적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마당을 지나 중문에 다다랐을 무렵, 뒤에서 부르는 외침이 들린다.

“설이, 너!”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우뚝 선 소녀가 카메라를 두 손안에 꼭 쥐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소녀의 시야에 하얀 원피스에 단아하게 긴 머리를 하나로 묶어 올린 여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죄송해요!”

늘 있는 일이지만,

“너, 엄마가 몇 번이나 산에 가지 말라고 했니? 다 큰 것이 혼자 겁도 없이,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하려고…….”

나이에 비해 잔망스러운 걸때를 가지고 있음에도 제 아빠를 닮아 하루가 멀게 카메라를 들고 들이야, 산이야 뛰어다니는 딸아이가 여인은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상처투성이인 설의 가녀린 두 다리를 다시 한 번 내려다보며 입으로는 매섭게 다그쳤지만, 눈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쏟아낼 것처럼 젖어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설이 먼저 달려들어 두 팔로 그녀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미안, 엄마!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래도 오늘은…… 산에 꼭 가야했어요. 아빠에게 보여줄 히어리 사진을 꼭 찍고 싶었거든요.”

‘설아, 이 꽃 이름의 의미가 뭔 줄 아니?’

설이 아홉 살이 되던 해, 태준은 어린 딸에게 사진 찍는 법을 직접 가르쳐주며 막 피기 시작한 히어리의 꽃말을 알려주었다.

‘봄의 노래’라고.

‘아빠가 네 엄마를 처음 만났던 그 공원에도 히어리가 이렇게 피어있었단다.’

아빠의 수줍은 추억을 들으며 그 때, 어린 설은 태준을 향해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였었다.

딸의 속절없는 고백에 여인의 두 눈에서 힘겹게 참아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집의 유일한 아들이자, 종손인 태준이 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사진기자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 설이 다섯 살이 되던 해였다.

갓 서른이 넘은 젊은 나이에 홀로 되어, 하나뿐인 아들만을 바라보며 힘겹게 종가를 이끌고 살아온 조여림 여사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몇 주 동안 자리보전해 누울 정도로 힘겨운 줄다리기였지만, 결국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리고 전 세계를 누비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사진을 찍던 태준이 싸늘한 주검으로 가족들 곁으로 돌아온 것이 설이 중학교를 입학할 무렵이었다.

동남아 취재 여행 중 휘말린 사고.

폭탄 테러는 그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으나, 하나뿐인 아들의 죽음으로 조 씨는 충격에 말을 잃었고, 그의 꽃다운 아내는 어린 딸아이를 붙들고, 밤새 눈물을 흘렸다.

사흘 후면 3년 상이 끝나는 날.

직접 찍은 히어리 사진을 영정 앞에 놓고 싶어, 오늘 힘겹게 산을 올랐던 것이다. 그런 딸의 마음을 알기에 더 이상 나무랄 수도 없다.

쓸쓸한 고택의 마당 한편, 소녀는 엄마가 자신을 품에서 놓아줄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

잔치가 있는 날이면, 멀리서라도 태준의 지인과 제자들이 찾아와 제법 소란스러웠던 고택에는 이제 적막감마저 감돈다.

태준의 세 번째 기제사가 있는 날, 음식 준비를 도와주러 온 마을 아낙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꺼낸다.

“에고, 조 씨 어른 팔자도 드세지! 젊어서 혼자 과부 돼서, 어렵게 자식 놈 키워 놨더니, 자식새끼라고는 여리여리한 계집애 하나만 달랑 남기고 죽을 게 뭐여!”

“그러게요! 아들이라도 하나 남겨 놓고 갔으면, 그나마 대(代)라도 이으련만…….”

과수원집 동우네가 제 집안일인양 안타까운 듯 혀를 찬다.

“그런 소리 말어, 행여 설이가 들으면 어쩌려고?”

“아니,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내 말이 틀려요?”

“이게 다 며느릴 잘못 들여서 그렇다니까!”

이장네가 목소리를 키운다.

“맞아, 종갓집에 일본인 며느리라니 말이 돼?”

여인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려는 듯 담아두었던 속내를 한꺼번에 풀어놓는다.

“아이고, 저기 설이 온다, 쉿, 쉿!”

별채 중문을 넘어선 설의 모습을 먼저 발견한 동우네가 입단속을 시킨다.

별채 마당을 지나 반빗간에 들어서자 갑자기 멈춰버린 대화에 설은 얼굴을 찡그렸다. 알고 있었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겉으로는 상냥한 척해도 설의 엄마에게는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사실을.

‘구니야스 하나꼬(邦寧花子)’

엄마가 가진 이름이다.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이야기 뒤에 붙는 한씨 종갓집, 조 씨 어른의 일본인 며느리.

하지만 설은 태어나서 한 번도 어머니가 일본어로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16년 동안 종갓집 며느리로 산 하나꼬는 스스로 밝히지만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할 정도로 한국어 실력이 완벽했다.

국제결혼이 흔한 시대가 되었다고는 하나, 불천위(不遷位, 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神位) 제사까지 지내는 종가에 외국인 며느리를 들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안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태준과 결혼하기 위해 하나꼬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으로 건너왔고, 태준 또한 결혼에 대한 생각만큼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된 하나꼬는 조 씨의 모진 반대를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묵묵히 견뎠다.

그리고 힘겹게 얻어낸 결혼 허락.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 뒤에 숨겨진 하나꼬의 강인함은 종갓집 큰살림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손수하고 배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한국에 올 때만 해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한국어를 단 1년 만에 마스터해 버렸으니, 그 끈기와 집념만 보아도 노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일이다.

종갓집답게 연시제(年始祭)며 기제사(忌祭祀)등 한 달이 멀다 하고 제사음식을 준비해야했지만, 손끝이 야무지고 심성이 착한 하나꼬는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그리고 대대로 손이 귀한 집에 첫 손녀인 설이 태어나면서 최 씨는 하나꼬를 며느리로 받아들이고 정(情)을 주기 시작했다.

외탁으로 하나꼬의 모습을 쏙 빼닮은 손녀딸이었지만, 성격만큼은 태준을 닮아 보통 고집이 아니었다. 밝고 긍정적인 성격에 호기심도 많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해도 울지도 않고, 배시시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온 고택을 뛰어다니던 꼬마.

오랫동안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던 부헌재에는 한씨네 종손녀 설이 있었다.

*

초헌(初獻, 제주가 올리는 첫 잔)을 올리고 재배를 한 설이 사흘 전 산에 올라가 찍은 히어리 사진을 꺼내 조심스럽게 향안(香案, 향 놓는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아빠, 나 내년이면 고등학교에 가요. 많이 컸죠? 이제 사진도 제법 잘 찍어요. 아빠가 보시기에는 어때요?”

가는 손가락이 향안 위에 올려둔 사진을 제사상 쪽으로 밀어낸다.

“그러니까……, 이제 걱정하지 마시라고요.”

언제나처럼 아무런 말없이 넋을 놓고 앉아 계시는 할머니와 젖은 눈을 하고 있는 엄마를 돌아보던 설이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태준을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할머니, 엄마 그리고 제 걱정하지 마시고 아빠도 그곳에서 편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태준의 죽음으로 제 나이 또래의 아이들보다 더 빨리 철이 들어버린 딸의 모습에 하나꼬는 흐린 미소를 머금은 채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제사를 마친 후 설은 어머니를 도와 상을 치우고, 안채로 건너가 할머니의 자리끼를 봐 드렸다. 사괴석(四塊石, 한식구조의 벽체, 돌담, 바람벽, 화방을 쌓는데 쓰이는 25cm 정도의 각석)과 꽃무늬가 찍힌 전돌(흙으로 만든 벽돌)로 지어진 부헌재의 안채는 설의 조모와 어머니가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방에서 나온 설은 섬돌에 발을 내린 채 대청마루 끝에 앉았다.

귓가에 닿은 바람을 맞으며, 담 너머로 보이는 사랑채의 비헌(飛軒, 높은 처마)을 멍하니 바라보다 별채로 돌아가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밤을 머금은 미풍에 대지 위에 남아있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간다.

고요함 속에 간간히 들리는 풀벌레 소리에 맞춰, 흥얼거리며 하늘을 올려다 본 설이 큰길에 닿은 것은 대문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환한 달빛 덕분에 흙길을 지나 개울가까지 내려오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개울가에 비친 달빛을 보자 설은 목에 걸린 카메라를 두 손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