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아바마마, 어마마마 좀 말려주시지요.”' 어느 화창한 오후였다. 아론황제는 대전에서 긴 회의를 마치고 황후를 찾으러 정원으로 나온 참이었다. 따스한 햇살이 청록의 나뭇잎을 감싸고, 새하얀 분수에서 흐르는 물소리에 새들의 지저귐이 어우러져 있었다. 입가에 미소가 그려질 만큼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그럼에도 황제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있어야 할 황후가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신 어렸을 적 그를 꼭 빼닮은 아들놈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분수대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세 살배기 쌍둥이 공주 둘은 그런 태자의 주위를 불안하게 서성거리고 있었다.' “태자? 무슨 일이냐.”' 다섯 살의 어린 태자는 애 늙은이 같다는 평을 자주 듣는 데다, 어렸을 적 아론황제만큼이나 쌀쌀맞았다. 황가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금발의 금안이야 그렇다 쳐도 행동거지나 말투마저 황제를 꼭 빼닮아 궁내에 ‘역시 씨 도둑질은 못 한다’는 낯부끄러운 소문이 파다했다. 하지만 워낙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다보니 속정은 깊은 아이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춘 태자는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이 쌓였는지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 “어마마마께서 지금 나무에 올라가셨다 지붕으로 옮겨 가셨습니다. 내버려 두면 지붕 위를 뛰어다니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말씀 드려도 내려올 생각을 않으시니 소자로선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하니 아바마마께서 어떻게 좀 해보시지요?”' 짜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 속에는 숨기지 못한 걱정이 배어 나왔다. 그러나 다섯 살 먹은 어린애가 구사할 말투가 아니었다. 아무리 호랑이 핏줄에서 고양이가 나올 리 없다 해도 아론은 태자의 건방진 태도가 심히 탐탁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어렸을 적 자신과 똑같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지라 뭐라 말도 못하고 그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나마 황후를 닮은 귀염둥이 공주 둘이 커다란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오라비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올려다보는 모습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 “앞서 거라.”' 아론은 긴말 하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태자를 앞세웠다. 황제의 뒤를 따르는 시종과 시녀들도 잔뜩 긴장된 표정이었다. 대책 없는 황후마마께서 털끝이라도 다치는 날에는 그야말로 줄초상이다.' 웅성…… 웅성……' 태자가 아비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그 이름도 유명한 황후의 공학연구소였다. 건물 주위에는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시녀들로 복잡스러웠다. ' “무슨 일이냐?”' 가라앉은 황제의 음성에 부지불식간에 좌우로 갈라진 시녀들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용기 있는 누군가가 대답하기도 전 작업실 지붕 위에서 한 여인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성공이다앗! 음핫핫핫핫!”' 아론은 잔득 그늘진 얼굴로 지붕 위를 올려다보았다. 역시……. 예상 했던 대로였다. 말썽쟁이 유란황후가 지붕 위에 위태위태하게 서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허리에 손을 얹은 채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한 순간이라도 아차하고 중심을 잃으면 땅 아래로 곤두박질 칠 것이 뻔한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