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그 여자

‘끼이익’

귓가를 때리는 날카로운 소리에 병원 앞에서 차를 기다리던 도현의 고개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갔다. 도현이 돌아본 그곳에는 차를 급하게 세운 한 여자가 내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뒷좌석의 문을 열고 한 아이를 안으려 하였다.

“아!”

아이를 안던 중, 여자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아 버렸다. 팔이 아픈 것인지 팔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였다. 그러곤 혹여 아이를 놓칠세라 무릎을 세우고 다시 아이를 받쳐 들었다. 그러나 옆에서 본 여자의 얼굴은 눈에 띄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럼에도 여자는 아이를 놓지 않았고 차 문도 닫지 않은 채로 그대로 병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평소 남의 일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도현이었지만 낯익은 여자의 얼굴에 자기도 모르게 버려진 듯한 차로 다가갔다.

그곳에서 도현은 닫지 않은 차 안에 아직 자고 있는 남자아이를 발견하였다. 남자아이는 도현의 시선을 느낀 건지 찬바람을 느낀 건지 갑자기 눈을 떴다. 그리고 가만히 쳐다보던 도현과 눈을 마주쳤지만 눈도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았다.

갑작스럽게 아이와 눈을 마주친 도현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무슨 말인가 해줘야 할 텐데 생각하였지만 그보다 빠르게 눈을 돌리고 주변을 살피던 아이가 차에서 내려 버렸다. 그러곤 평소에도 있는 일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병원 안으로 들어 가버렸다.

당황한 도현은 아이가 들어간 병원 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운전석으로 가서 앉았다. 차를 주차한 후 차 키를 뽑아 차 문도 잠갔다. 차 키를 들고 응급실 출입문으로 들어가려던 도현은 흠칫 놀랐다.

‘하…. 참나, 차도현 뭐하냐? 내가 언제부터 다른 사람 일에 이렇게 신경을 썼다고.’

평소 남의 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인지라 차 키를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차 키를 들고 한참을 서 있던 도현은 망설인 시간이 무색하게 빠르게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

일주일 전.

“오, 차도.”

“왔어?”

“회사 일 혼자 다 하냐? 빨리빨리 좀 다녀라, 짜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보자마자 한마디씩 하였다. 늘 그렇듯 도현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으며 자리에 앉았다. 친구들도 익숙한지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인 도현, 민준, 재영, 상우는 각기 다른 대학을 나오고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제일 친한 친구로 지내며 만남을 이어오고 있었다. 모임의 분위기 메이커 재영과 상우, 차분하고 조용한 민준, 모임에 와서 별말이 없이 그냥 앉아만 있어도 존재감을 뿜어내는 도현, 성격이 달라서 주변의 사람들은 4명이 어떻게 친하게 되었는지 많이 궁금해하였지만 정작 본인들도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특히나 도현은 수호 그룹의 차남으로 겉으로 보기에 모델 뺨치게 큰 키에 얼굴은 웬만한 연예인도 와서 울고 갈 정도로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성격 또한 차갑고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도 그는 모임에 와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냥 친구들의 이야기만 듣고 있거나 술을 마시거나 재영이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인상을 쓰는 게 다였다. 그런 도현을 친구들은 가끔 말하는 조각상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도현은 허물없이 이야기할 수 있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만남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갑자기 ‘모이자’라고 하여도 웬만하면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본인도 잘 모르고 친구들만 아는 사실일 것이다.

“차도야, 나 또 차인 것 같다…, 흑…. 나 좀 안아주라. 이 형아 슬프다.”

재영이 학창 시절부터 혼자만 부르던 도현의 애칭을 부르며 두 팔을 벌리고 안겨 왔다.

그런 재영을 본 도현은 인상을 구기며 몸을 뒤로 뺐다.

“미친 새*.”

짧게 욕설을 내뱉고는 옆에 앉은 다른 친구들을 보았다.

“얘 또, 뭘 잘못했냐?”

그 한마디에 재영이가 발끈하였다.

“야! 내가 잘못하긴 뭘 잘못해?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재영이의 한 마디에 상우가 돌직구를 날렸다.

“그럴 거면 그냥 놔주라니까.”

재영이는 그 말에 이번에는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 나영이가 나한테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

“아는 놈이 매일 그 난리를 치고 있냐?”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난 그냥, 가만히 있는데 여자애가 와서 물어본 말에 답을 해준 것뿐인데, 하필 우리 나영이가 그때 들어와 가지고. 난 정말 억울하다고.”

재영이는 말을 받아주는 상우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였다.

“에라이, 미친놈…. 그럼, 답만 해주면 되지, 나영 씨도 있는데 왜 실실 웃었냐. 나가 죽어라.”

“그럼 웃어야지, 우냐? 가게에서 인상 쓰고 울고 있냐고?”

“네가 그냥 웃었겠냐? 안 봐도 헤벌레 하며, 좋다고 웃었겠지. 그러니 나영 씨가 돌지 안 돌아?”

“나영 씨가 보살이지, 저런 놈이 어디가 좋다고.”

“난 억울해, 억울하다고! 차도야, 내 말 좀 들어봐.”

말을 받아주던 상우에 이어 민준까지 나서서 재영을 몰아붙였다. 재영은 가만히 있는 도현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그런 재영이를 보며 도현은 작게 인상을 쓰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차가운 도현의 반응에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던 재영은 갑자기 핸드폰을 들었다.

“나영이 보고 싶다, 나영이, 우리 나영이, 며칠을 못 봤는지….”

항상 반복되는 재영의 행동에 친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곤 전화를 하는 재영에게 앞에 있던 안주와 냅킨을 집어 던졌고 재영은 고스란히 그것들을 다 맞았다. 친구들의 타박에도 전화기를 놓지 않던 재영은 전화기를 붙잡고 혼자서 계속 씨름을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자 한 통을 보내고 나서야 전화기를 다시 놓았다. 그러나 친구들의 온갖 구박 아닌 구박을 다시 들어야 했다. 문자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영의 그녀 나영이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나의 나영아, 여기, 여기.”

나영을 보자마자 재영은 울상이었던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영은 그런 재영을 보자마자 인상을 썼다. 재영에게서 고개를 돌린 나영이 친구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자리로 왔다.

그런데 나영은 혼자가 아니었다. 나영의 뒤로 굉장히 어려 보이는 여자가 한 명 들어왔고 재영이는 안면이 있는지 손을 들며 아는 척을 하였다. 상우가 처음 보는 여자의 등장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어 근데, 이 아리따운 여성분은 누구신지?”

상우의 물음에 나영이 같이 온 여자를 옆으로 세우며 소개를 해주었다.

“아, 친한 동생인데 오늘같이 술 한잔하다가, 재영 씨한테 인사도 할 겸 같이 왔어요. 불편하지 않으시면 같이 앉아도 될까요?”

“아이고. 당연히 되죠. 저희는 완전 환영입니다.”

불편하지 않냐는 나영의 얘기에 상우는 얼른 일어나 의자부터 빼주었다.

“수연아, 인사해. 재영 씨 친구들이야.”

“안녕하세요…. 이수연이에요.”

수연은 재영의 친구들이란 말에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였다. 고개를 들었을 때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닿아 있어 살짝 당황하였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동생분이 있었다니.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박상우라고 해요. 그리고 옆에는 김민준이고요. 저기 쟤는, 차도현이라고 합니다.”

역시나 사교성 좋은 상우가 먼저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말하기도 전에 민준과 도현의 이름까지 이야기하며 인사를 시켜주었다. 친구들의 소개를 받은 수연은 민준과도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나누었다.

마지막으로 도현과 인사를 나누려고 쳐다보는데 정작 도현은 수연의 인사를 받고도 인사를 하기는커녕 수연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였다. 너무 빤히 쳐다보기만 하자 당황한 수연이 먼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저기, 폼 잡고 있는 친구는 그냥 조각상이다 생각하시고 신경 쓰지 마세요.”

상우의 저에 대한 소개에 도현은 수연에게 닿았던 시선을 상우에게로 돌렸다. 상우를 향해 살짝 인상을 쓰다가 자리에 앉은 수연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자, 그나저나 우리 아리따운 여성분들은 뭘 드시려나요? 술 괜찮으세요?”

상우가 테이블 위의 음식들은 훑어보다 나영과 수연을 번갈아 보며 술병을 들어 보였다.

“아, 저는 괜찮은데, 수연이는 술을 잘 못 해요.”

“아이고 이런, 그렇다면, 다른 것을 시켜 드려야겠네요. 혹시, 뭘 좋아하세요? 마음껏 시켜 드세요. 어차피 돈은, 저기 앉아 있는 저놈이 낼 거니까?”

상우는 수연에게 메뉴판을 건네면서 맞은편 상석에 앉아 있는 도현을 손으로 가리켰다.

“내가? 왜?”

상우의 이야기에 눈썹이 삐뚜름히 올라간 도현이 어이없다는 듯 내뱉었다.

“하여튼, 있는 놈이 더 해요. 박봉에 시달리는 친구들이 불쌍하지도 않냐? 이거 얼마나 한다고, 그리고 우리가 먹냐? 여기 계신 아리따운 여성분들이 드신다는데.”

계속되는 상우의 말에 반박하려던 도현은 수연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자, 됐습니다. 이제 마음껏 시키세요.”

“저, 아니에요. 저는 그만 가야 해요.”

“왜 벌써 가세요? 놀다 가세요.”

간다며 일어나려는 수연의 이야기에 가만히 있던 민준이 한마디를 하였다.

“수연이는 재영 씨 얼굴만 보고 간다고 해서 같이 온 거예요. 바로 집에 가봐야 해요.”

아쉬워하는 상우와 민준을 보며 나영이 대신 이야기하였고 수연은 오자마자 다시 나가게 되었다.

수연이 나가고 그 문을 빤히 보던 도현이 갑자기 일어나며 재킷을 챙겨 들었다.

“왜? 벌써 가게?”

민준이 일어나는 도현을 보며 물어보았다.

“오늘은 좀 피곤하네.”

도현은 이마를 긁적이며 대답하였다.

가지 말라고 붙잡는 재영의 손을 뿌리치며 나영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술집을 나섰다. 혹시나 한 번 더 수연을 볼 수 있을까 하고 나오자마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수연은 벌써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도현은 살짝 실망하며 차를 타기 위해 주차장으로 갔다. 차를 타고 큰길로 나가려고 하는데 골목길 끝에 도현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수연이 걸어가고 있었다. 뒷모습만 봤는데도 갑자기 심장 부근이 찌릿한 게 쿵쿵거리는 것도 같고 아무튼 이상했다. 오늘 한 번 잠깐 본 것뿐인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람을 이렇게 빤히 쳐다본 게 얼마 만인지. 아니 태어나서 가족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오래 쳐다보기는 처음인 것 같았다. 단 몇 초 만에 시선을 뺏겨 버렸다. 그래서 수연이 나가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몸이 먼저 따라서 나가고 있었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모습을 한 번 더 보고 싶었고 이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이 수연을 따라서 나간 도현을 본다면 아마도 평생을 놀림감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도현은 차를 천천히 몰아 수연 옆으로 차를 대고는 조수석의 창문을 열었다. 수연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차가 옆으로 와도 눈치채지 못하고 앞만 보고 걷고 있었다.

“어디까지 가세요?”

이에 답답해진 도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한편 수연과 도현이 나가고 난 후 술집에서는 상우와 민준 재영이 서로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며 가만히 있었다. 몇 초 후 상우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거, 이거, 나만 이상한 거 아니지?”

“….”

“….”

“뭐야, 말 좀 해봐, 나만 이상한 거야?”

“뭐, 좀 이상하긴 하네. 아니 이상한가?”

“뭐래, 완전 이상하지. 정신 좀 차려봐.”

상우의 한 마디에 정신을 차린 민준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뭐, 확실히 지금까지 못 보던 모습이긴 하다. 차도현이 여자를 그렇게 빤히 쳐다보고, 허겁지겁 따라 나가는 모습이. 차도현도 사람이었네. 하하하.”

민준이 영혼 없는 웃음소리까지 내었다.

“내 평생, 저런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는데. 근데 재영아, 너는 왜, 아무 말도 안 해?”

제일 흥분해서 속사포 랩을 시전할 것만 같던 재영이 가만히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상우가 재영을 돌아보며 물어보았다. 재영은 상우를 한 번 쳐다보고는 나영의 얼굴을 보며 가만히 있었다.

“왜 그래?”

“수연 씨 혹시 애인 있어?”

“….”

친구들의 물음에도 재영은 바로 답하지 못하였다.

한편 처음으로 용기란 것을 내어 여자에게 말을 걸어 본 도현은 난감하였다.

“어디까지 가세요?”

“….”

도현의 물음에도 수연은 그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할 뿐 선뜻 답을 하지 않았다. 도현은 혹시 어두워서 잘 안 보여 자기가 누군지 몰라서 그런가 싶어서 다시 한번 더 용기를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