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나도 사랑해요

수연이 돌아서서 마주친 눈빛은 평소의 도현의 눈빛이 아니었다.

뭔가, 수컷의 향기가 강하게 나면서 무엇을 갈구하는 듯한 짙은 눈빛, 수연의 얼굴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깊은 눈빛에서 수연은 오늘 일어날 일들이 가늠이 되면서 갑자기 얼굴에 열이 확 올라왔다. 부끄러움에 도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 고개를 숙이니 도현이 수연의 턱을 잡고서 올려 시선을 맞추었다.

“어딜 봐. 날 봐야지.”

자신만 부끄러운 것인지. 도현은 눈빛만 바뀌었지 하나도 부끄러운 것 같지가 않았다.

괜히 억울해진 수연은 얼굴을 꼿꼿하게 들고 시선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하였다. 그런 수연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살포시 올라가는 도현의 입 꼬리와 왼쪽 볼에 짙어지는 보조개가 보였다.

수연이 도현의 미소와 보조개를 입까지 벌리고 잠시 넋을 놓고 보는 사이 그 벌어진 입 사이로 도현은 다급하게 입을 맞추었다.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성급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키스는 시간이 갈수록 거칠어졌고 수연의 등은 어느새 뒤에 있는 냉장고에 붙어버렸다.

냉장고와 도현의 사이에 갇혀 거친 키스를 받아내던 수연은 잠시 입술을 뗀 사이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현의 가슴팍에 기대었다. 도현은 자신이 너무 몰아붙였나 싶어 조금 미안해졌고 수연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한쪽 팔로 나머지 어깨를 감싸 안았다.

어느 정도 호흡이 안정된 두 사람은 고개를 들어 마주 보았고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괜찮아?”

“안 괜찮으면요? 그렇게 안 할 거예요?”

“아니.”

단호하게 대답을 하는 도현 때문에 다시금 당황한 수연은 잘게 떨리는 눈으로 도현을 지그시 응시하였고 도현은 다시 한 번 더 조금 전과 같은 키스를 하였다.

한참의 키스 후, 수연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언제 2층까지 올라왔는지, 그리고 침대에는 어떻게 누웠는지 모를 정도로 등 뒤에 푹신한 침구가 느껴졌고 눈앞에는 욕망이 가득 찬 표정을 한 도현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예쁘다.”

누가 할 소리. 가까이서 보니 정말 조각이 따로 없었다.

이렇게 잘생기고 모든 면에서 완벽한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며 예쁘다고 하니 아까 레스토랑에서 들었던 말도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거기다가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왔던 모든 것이 다 잊혀지는 것 같았다.

“나 예뻐요?”

“응. 너무 예뻐.”

“어디가요? 어디가 그렇게 예뻐요?”

예쁘다고 하니 정확하게 어디가 예쁜지 한번 들어나 볼까.

“훗. 꼭 듣고 싶어?”

수연은 눈을 피하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여보았다. 그래? 그렇다면 해줄게.

머리에 입을 맞추고.

“여기도 예쁘고.”

볼록한 이마에 입을 맞추고.

“여기도 예쁘고.”

항상 자신만을 바라보는 양쪽 눈에도 입을 맞추고.

“여기도 예쁘고.”

예쁘고 좋은 말만 들었으면 좋겠는 귀에도 입을 맞추고.

“여기도 예쁘고.”

작고 오뚝한 코에도 입을 맞추고.

“여기도 예쁘고.”

미운 말을 내뱉다가 이제는 자신에게 도발도 하는 작고 앙증맞은 입술에도 입을 맞추고.

“여기도 예쁘고.”

보기만 해도 미칠 것 같은 희고 고운 목덜미에도 입을 맞추고.

“흣.”

“여기도 예쁘고.”

“오…, 오빠!”

“아직 안 끝났는데.”

“그, 그만하면 됐어요.”

“아직 멀었어. 이제 시작인데. 조금만 더 기다려봐.”

수연은 도현이 하나씩 입을 맞출 때마다 미칠 것 같았다.

발끝에 힘이 들어가고 몸이 배배 꼬이며 온몸이 나른해지는 것이 거기다가 도현의 입에서 한마디씩 나올 때마다 도현의 숨결이 얼굴 피부에 닿으며 오소소 소름이 쫙 돋아났다.

여기서 더 내려가면 어떻게 될지. 자신이 먼저 도현을 덮치게 될 것 같았다.

“그만할까?”

“네. 어디가 예쁜지 이제 알겠어요. 이제 그만 해요.”

실망한 표정을 짓는 도현을 보던 수연은 도현의 뺨에 손을 올려보았다.

자신의 뺨에 올라온 수연의 손에 입을 맞춘 도현은 손목에도 입을 맞추고 옷 위로 입술을 올리며 쭉쭉 올라갔다.

쇄골까지 올라온 도현의 입술은 쇄골에 쪼옥 하며 붉은 자국을 남겼고 그로 인해 수연의 몸은 움찔 떨렸다.

“사랑해.”

사랑한다는 도현의 말에 코끝이 시큰해진 수연은 눈물을 글썽였고 도현은 손을 올려 살짝 닦아주었다.

“왜 울어?”

“내가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나 해서요.”

“그런 생각 하지 마. 너니까 내가 사랑하는 거야. 사랑해, 이수연.”

“나도 사랑해요.”

수연은 자신도 표현하고 싶었다.

애교도 없고 무뚝뚝한 자신이지만 오늘만큼은 도현에게 마음껏 표현해주고 싶었다.

수연의 사랑 고백에 마음이 벅차오른 도현은 아까와는 다른 부드러운 키스로 수연의 몸과 마음을 달래주었고 수연은 도현의 목에 팔을 두르며 자신도 다르지 않음을 알려주었다.

키스가 이어지며 도현의 손은 수연의 옷 속으로 들어가 등과 갈비뼈 주위를 맴돌며 쓰다듬었고 이에 놀란 수연의 몸이 흠칫 놀라며 굳어지니 놀란 도현이 입술을 뗐다.

“하아…. 미안. 오빠가 오늘 제어가 안 돼. 놀랐어?”

지난번과 같은 상황이었다.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벌써 몇 번의 역사를 썼겠지만 처음인 수연에게 강제적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얼른 입술을 떼니 당황한 수연의 눈빛이 보였고 미안한 마음에 몸을 떼고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수연이 팔을 잡아 왔다.

“괜찮아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그냥 놀라서 그런 거예요.”

“그래, 놀라게 해서 미안해.”

말을 하고 다시 일어나려고 하는데 팔을 놓지 않는 수연이었다.

“나, 난 괜찮다고요….”

부끄러운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며 말을 하는 수연의 뜻을 금방 알아차린 도현은 지금 자신의 몸이 욕망으로 터져나갈 것 같았지만 그래도 꾹꾹 눌러 참으며 수연을 배려해보았다.

“수연아, 오빠는 괜찮아. 네가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

“혹시, 내가 처음이라 그런 거예요?”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지.

“그런 거 아니야.”

“난 정말 괜찮다고요. 내 처음이 오빠라서 너무 좋고, 오빠가 내 마지막이 될 거라서 그것도 좋아요.”

“하아….”

이제는 정말 한계였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예쁜 말을 하는 저 입을 당장에 막지 않으면 그동안 참아왔던 욕구가 마구 마구 분출될 것 같아 거칠게 수연의 입술을 베어 물은 도현은 더 이상 주춤거리지 않았다.

여우같은 토끼가 야수와도 같은 한 마리의 호랑이를 불러내는 순간, 야생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둘만의 아름다운 밤이 시작되었다.

*

무언가 묵직하게 누르는 느낌에 답답함을 느낀 수연은 눈을 떴다.

몇 번을 깜빡인 후에야 이곳이 어디인지 알았고 동시에 전날 있었던 일이 떠오르며 얼굴에 화르륵 하고 열이 올라왔다.

이불에 닿는 맨살의 감촉과 등 뒤에서 느껴지는 맨살의 느낌이 적나라하게 느껴지며 눈을 또르륵 굴린 수연은 도현을 깨우지 않고 어떻게 일어나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자신의 몸에 걸쳐져 있는 도현의 팔을 살짝 올려보았다.

힘을 조금 주니 팔이 들렸고 몸을 빠져나가기 위해 살포시 움직이는데 자신의 몸을 잡아당기는 강한 힘에 의해 다시 눕혀졌다.

아까보다 더 빈틈도 없이 수연을 안은 도현은 수연이 움직이다가 드러난 어깨 위로 입술을 묻었다.

“나 버리고 도망가는 거야?”

“도, 도망은 누가 도망을 간다고 그래요?”

“근데 왜 그렇게 살금살금 움직여?”

“아니거든요?”

도현을 피해서 도망을 가려고 하였지만 수연은 일단 큰소리부터 쳐보았다.

“그래? 그럼 가만있어. 나 아직 졸려.”

“그거야….”

‘잠든 지가 얼마 안 됐으니 그렇겠지.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큼큼. 안 할 것처럼 하더니 한번 시작하니까. 어휴.’

수연을 배려한다고 기다릴 수 있다고 한 도현은 고삐가 풀리니 통제가 되지 않았다.

수연이 처음이었기에 천천히 살살해야지 해놓고는 몇 번을 수연에게 덤벼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니 이렇게 피곤할 수밖에.

“좀 더 자자. 너도 피곤하잖아.”

“누구 때문에 피곤한데.”

작게 중얼거리는 수연의 소리를 들은 도현은 피식 하고 웃으며 팔과 다리로 수연을 꽁꽁 옭아매며 꽉 끌어안았다.

“답답해요.”

“참아. 이렇게 안 하면 도망갈까 봐 그래.”

“도망 안 가요. 그리고 나 화장실도 가고 싶은데. 샤워도 하고 싶고.”

“그래?”

샤워라는 소리에 벌떡 일어난 도현은 그대로 욕실로 직행했다.

나신으로 욕실로 가는 도현의 뒷모습을 보던 수연은 혼자서 얼굴을 붉히며 이불을 뒤집어썼고 자신도 같은 처지라 눈만 빼꼼 내밀고는 입을 옷이 없나 찾아보았다.

멀리 탁자 위에 어제 입었던 옷이 있던 것을 본 수연은 옷을 가지러 가기 위해 침대 밑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앗.”

“수연아, 왜 그래!”

수연의 비명에 욕실에서 나온 도현이 수연의 앞으로 오니 갑자기 보이는 도현의 맨살에 놀란 수연이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오빠, 옷!”

“응? 옷? 무슨 옷?”

갑자기 옷 타령을 하는 수연 때문에 어리둥절한 도현이 영문을 몰라 수연의 얼굴을 가린 손을 내려주니 눈을 꼭 감고 있는 수연이 보였다.

“옷 입으라고요.”

“아, 옷.”

그제 서야 수연이 왜 그러는지 이해한 도현은 씨익 입 꼬리를 당겨 웃으며 수연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어제 다 봤는데 새삼스럽게.”

“다 보긴 뭘 봐요.”

“왜, 안 봤어? 난 다 봤는데.”

“그래도 옷 입어요. 왜 벗고 다녀요.”

“어차피 또 벗을 텐데 왜 입어. 귀찮게시리.”

“네? 흐익.”

이상한 소리를 내는 수연을 안은 도현은 그대로 욕실로 들어갔고 그 뒤로 한참 동안 수연은 욕실에서 나오지 못하였다.

*

“꼭꼭 씹어서 많이 먹어. 쓰읍. 오빠한테.”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서도 자신을 향해 눈을 흘기는 수연을 도현이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수연은 너무 배가 고파서 도현의 말에 대답할 기운도 없어 눈을 흘기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욕실에서 도대체 얼마나 있었는지, 손발이 퉁퉁 불고 뿌연 수증기 때문에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겨우겨우 도현에게서 벗어난 수연은 걷기도 힘들었고 그와 반대로 펄펄 날아다니는 도현이 수연을 안고 나와 침대에 앉혀 놓고 배달되어 온 음식을 먹이고 있었다.

“우리, 집에 언제 가요?”

배가 어느 정도 찬 수연이 시계를 보며 도현에게 물었다.

“언제 가고 싶은데?”

수연을 데려다주기 싫은 도현이 답을 하지 않으며 되물었다.

“이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어젯밤에 나온 이후로 지금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정말로 집에 가봐야 할 시간이었다.

정옥이 안 들어 와도 된다고 아무리 이야기를 했다지만 아이들 보기에도 너무 늦게 들어가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도현도 수연도 아쉽기는 해도 슬슬 집에 갈 준비를 해야 했다.

“조금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될까? 이런 시간 내기도 힘든데.”

준비를 하면서도 도현은 정말로 가기가 싫은지 표정에서 다 드러났다.

사실 수연도 조금 더 있고 싶었다. 그러나 계속 이렇게 있다가는 정말로 가기 싫을 것 같아서 마음먹었을 때 일어나야 할 것 같았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어떻게 그래요. 빨리 가요 우리.”

“그러면, 딱 한 시간만 더 있자. 오빠 이제 바빠져서 시간이 많이 안날 것 같아서 그래.”

“알았어요. 그럼 딱 한시간만이에요.”

앞으로 바빠진다는 말에 수연은 마음이 약해졌다.

많은 시간도 아니고 한 시간만 더 있는 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니 도현의 말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도현이 말했던 딱 한 시간은 두 시간이 되었고 더 가서 세 시간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다른 곳에서도 아닌 침대 위에서 말이다.

“근데, 걸을 수 있겠어?”

찌릿, 묻자마자 날아오는 날카로운 시선에 흠칫 놀란 도현은 서둘러 수연의 준비를 도왔다.

가자고 그렇게 말해도 조금만 더를 외치더니 결국에는 수연의 다리가 풀릴 지경까지 몰아붙이고 말았다. 그렇게 수연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도현은 준비를 하였고 차를 몰아 수연의 집에 도착하였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서둘러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도현과 수연은 집안의 광경에 놀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