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닿지 않는 마음

비바람이 들이치는 날이었다. 하늘엔 구름이 꼈고 폭우가 쏟아졌다. 마치 그들의 피를 씻는다는 듯. 거센 폭우였다. 효수된 그들의 목이 높이 걸려있었다.

지나가던 백성들은 그곳에 침을 뱉기도 하고 욕을 하며 지나갔다. 그들의 입장에선 참으로 통쾌한 죽음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을 처단한 휘의 찬양이 온 세상에 가득하였다.

자랑스레 걸린 그들의 목. 저 멀리서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연재훈과 연상훈은 나란히 걸려있었다. 사라진 몸뚱이와 차갑게 잘린 머리, 그것이 그들의 끝이었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가장 중앙, 가장 높은 곳에 연상훈의 목이 걸려있었다. 빗물 섞인 피가 흘렀다. 비바람이 참 차가웠다.

“내려라.”

차갑게 읊조렸다. 검은 장옷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어 눈이 보이지 않았다. 질퍽한 흙탕물이 찰박거렸다. 차마 아버지가 길가에 버려지는 것은 볼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자신이 감당할 일이었다. 마른 눈물이 흘렀다. 더는 흐를 눈물이 없었지만, 마음속에서 피눈물이 흘러나왔다. 자신의 뒤로 손발이 묶인 죄인들이 걸어왔다. 그들은 맨발로 빗물이 가득한 흙바닥을 걸어 다녔다.

한 줄로 묶여 가는 모습은 딱 보아도 대역죄를 저지른 이들이었다. 앞서가던 병사가 커다란 채찍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매서운 채찍 소리에 살이 찢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똑바로 보아라. 바로 너희가 그토록 따르던 이들의 최후이니 말이다!”

죄인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높은 곳으로 보이는 머리만 덩그러니 있는 이들. 그 중 서란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었다.

이미 처참한 몰골이었다. 찢어진 상처에 빗물이 들이치니 고통이 밀려왔다. 게다가 저 멀리 보이는 남편의 목. 눈을 뜨기 싫었다. 자연스레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신들을 안쓰럽게 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과 마주친 시선. 너무 놀라 눈을 뗄 수 없었다.

틀리지 않았다면, 그녀는! 에라 모르겠다 냅다 달렸다. 의심 반, 확신 반. 조금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거기에 몸을 던질 이유가 충분했다.

마음과 달리 일렬로 이어진 밧줄에, 얼마 가지 못해 질퍽한 땅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빗물이 스민 땅에 발이 박혔다. 흙탕물에 옷이 젖어 들어가고 입에서는 짙은 흙 맛이 느껴졌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어깨로 기어서 조금 더 조금만 더 앞으로 다가갔다. 무조건 가야 했다. 저기로.

“멈춰라!”

일렬이 흐트러지자, 그들을 멈추어 세웠다. 호통 소리에 앞서가던 병사 하나가 움찔하여 이쪽을 쳐다보았다.

서란에게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익숙한 얼굴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머니!”

큰 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하염없이 비가 왔다. 미친 듯이 달려가 그녀를 일으켰다.

“황후… 마마!”

처참한 몰골에 가슴이 미어졌다. 왜 어째서. 서란은 애써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제발… 제발! 아이를 제 아이를, 그분의 아이를 살려주세요!”

그녀는 간절히 이야기했다. 코가 시큰해졌다. 아직 자신도 보지 못한 자신의 배다른 동생. 자신의 슬픔에 가려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리 고통 받는 것이 자신만은 아닌 것을.

“그리고, 이거….”

아무도 모르게 서란은 자신이 숨기고 숨겼던 것을 그녀에게 넘겼다. 연상훈이 자신이 잘못된다면, 그녀에게 전해달라고 했던 것. 그래도 이리 전해 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뭣 하는가! 끌어내라!”

병사들이 다가섰다.

“멈춰라.”

휘의 목소리였다. 다들 그들 앞에 벌어진 상황에 당황하였다. 비가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이 오는 날이었다.

“황후를 모셔라.”

휘는 단호히 말했고 세연이는 자신을 가로막는 호위들에 손길에 꼼짝할 수 없었다. 점점 자신과 멀어지는 어머니. 안되었다. 절대. 이럴 수는 없었다. 휘를 잔뜩 흘겼다.

“또 당신이야?”

“황후를 옮겨라.”

“이거 놔! 어머니! 어머니!”

서란은 그녀의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미친 듯이 부르짖었다. 자신을 보며 지었던 슬픈 미소가 점점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사라진 곳을 멍하니 응시했다.

비가 많이 왔는데, 한 방울도 맞지 않았다. 거대한 우산이 떨어지는 모든 비를 막았다. 친히 우산을 들고 있던 그를 노려보았다.

“요즘 따라 먹질 않는다 들었다. 굶어 죽을 셈이냐.”

“어머니를 어떡하려는 거야.”

“죄인이다. 친모도 아닌데, 이리 애틋하게 구느냐. 네가 황후임을 잊지마라.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그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변하였다.

“혹시나 하여 와봤는데 오길 잘했구나. 네 몸을 챙기지 않는다면, 저들도 모두 네 아비 곁으로 보내 버릴 것이다.”

그의 눈빛이 섬뜩하였다. 그 말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돌아가라. 궐로.”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감싸는 호위들의 손을 쳐내고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저 멀리 그녀가 멀어지고 휘는 멍하니 위를 올려다보았다.

걸려있는 그들의 목. 오가던 이들이 화풀이했는지, 목을 바치고 있던 버팀목이 많이 훼손되었다. 그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려라.”

휘는 낮게 말하였다.

“누가 묻거든, 빗물에 떠내려갔다 전해라. 그리고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어라.”

“…예. 폐하.”

“내가 이해가 되지 않지?”

“아닙니다.”

환은 대답했다.

“묻지도 않는구나.”

“이유가 있으셨겠지요.”

“세연이가 진정하거든, 나중에 묻은 곳을 알려주어라.”

자신이 그녀에게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자비였다. 쓸데없이 사고를 치는 것보다, 이리하는 게 나았다. 터벅터벅 그렇게 황궁으로 다시 돌아갔다.

“역적들의 목이 사라졌습니다.”

조정은 시끄러웠다. 온 데 간 데 사라진 그들의 목. 다들 내심 황후를 의심하였지만, 애써 내색하는 이는 없었다. 황후를 아니꼽게 생각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녀를 뒷받침해주는 세력은 없어졌다.

장부가 밝혀지고 수많은 대신이 유배를 가거나 파직 당하였다. 조정이 휑하였다. 새로운 인사이동이 필요한 시기. 다들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새로운 바람은 이미 불기 시작하였다.

“폐하. 황후께서는.”

슬슬 황후의 자리를 노리려는 이들이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대역 죄인의 자식이라 명분은 충분했다. 하지만, 이미 결심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지키기로.

“황후와 짐은, 이미 태자 시절부터 맺은 혼약이오. 선황제께서 직접 주선하신 국혼이었고. 또한, 황후는 그들의 죄를 밝히는 동안 영운궁에 유폐되어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였소. 그 어떤 소식 또한 듣지 못하였고. 그리고 황후는 태자를 낳은 몸으로 이미 명백한 황실의 사람.”

휘의 눈이 번뜩였다. 태자를 책봉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오늘 이후로도 황후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면, 이는 모두 짐을 향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합당한 처분을 내릴 것이오. 아시겠소.”

“예. 폐하.”

윤권율을 필두로, 다들 고개를 숙였다.

단호한 휘의 명령이었다.

**

날이 좋고 따듯한 오후였다. 휘는 평상시와 같이 정무를 보고 있었다.

“폐하. 황후마마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허락을 할 사이도 없이 그녀가 들이닥쳤다. 잔뜩 상기 되어있는 얼굴. 분노가 가득한 두 눈.

도저히 감정이라고는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헌데 어쩌나 저 도끼눈을 뜨고 보아도 저리 사랑스러운데.

“위험하다. 손에 있는 것을 놓거라.”

그녀는 벽면에 있던 칼을 빼 들었다. 성격 하나는 화끈했다. 금방이라도 찌를 듯이 달려들자, 눈 깜짝할 사이에 호위들이 나타났다.

“그만. 모두 물러가라.”

머뭇거리던 호위들은 자리를 물렀다.

“어찌 무르십니까. 제가 폐하를 해하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구요.”

“오늘은 어떻게 화풀이를 하러 왔느냐.”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도통 겁이라고는 먹지 않았다. 불을 지른다고 협박해도 칼을 들고 와도 도통 먹히지 않았다. 언제나 차분했고 미동이 없었다. 그래서 더 화가 뻗쳤다.

“폐하께서는 뭐가 그리 잘나셨습니까. 대체 뭘 그리 잘하셨길래 그리도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계십니까.”

억울했다. 하루하루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슬프고 화나는데, 그는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더없이 차분하고 침착했다.

“차라리 죽이십시오. 잘 하지 않으십니까. 절 죽이고 어머니가 평범하게 살 수 있게 해주세요. 도저히 못 살겠습니다.”

자신을 걸고 하는 협박도 그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폐하!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이제야 그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와 칼을 쥔 오른손을 잡았다. 이제야 바닥에 끌리던 검을 겨우 들었다. 쓸데없이 검은 왜 이리 무거운지.

“찔러라. 그래야 화가 풀린다면 날 베라.”

그의 눈은 진심이었다.

“허면 제가 못 찌를 줄 아십니까?”

그는 정말 찌르라는 듯 팔을 벌려 섰다.

“호위도 없다. 오늘 일은 철저히 비밀로 할 것이다.”

눈까지 지그시 감은 것이, 뒤통수를 한 대 갈려버리고 싶었다. 진짜 똑똑한 인간이었다. 내가 못 찌른다는 걸 어찌 저렇게 잘 알까? 재수가 없었다. 화가 나 칼을 내던졌다. 쨍그랑거리는 소리에 귀가 찢어질 듯 했다.

“나쁜 자식. 넌 세상에서 제일 나쁘고 잔악무도하고 냉정하고 냉혹하고 무도한 놈이야. 치사하고 치졸해서 호랑이도 안 물어갈 거야!”

있는 힘껏 그의 어깨를 밀쳐내며 외쳤다. 풀리지 않은 성을 내며 그곳을 뛰쳐나왔다. 그는 분명 미워해야 할 사람인데, 모두를 죽인 자인데. 그가 저럴수록 조금씩 분노가 누그러지고 있었다.

바닥에 나동그라진 휘는 옷을 턱턱 털며 일어났다. 저런 명검을 손에 쥐고 한다는 것이 겨우 욕지거리라니. 게다가 욕도 형편없었다. 호랑이도 물어가지 않을 거라니, 그건 좋은 것이 아니던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치실 뻔하셨습니다.”

환의 말은 그러고도 웃음이 나오냐는 뜻이었다. 휘는 더욱 크게 웃었다.

“다치지 않았다.”

“폐하를 위험에서 지키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

“하여 찔렀느냐?”

“아닙니다. 하지만 지난번 촛대를 가지고 오셔서 불을 낸다고 하신 적도 있습니다.”

“해서 불을 냈느냐?”

“아닙니다.”

“촛불로 무슨 불을 낸다는 것이냐.”

웃음이 멈추었다. 그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는 끅끅 웃었다. 눈물 섞인 웃음이었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가족을 다 죽여 버린 자에게 고작 한다는 것이 촛불로 불을 지른다고 난동을 부리거나 제대로 들지도 못하는 장검으로 벤다고 협박이나 하고.

왜인지 가슴이 아팠다. 못 할 짓을 한 듯 했다.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필 너였을까. 상처 입은 눈은 몇 배로 다시 돌아왔다.

그녀의 말대로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모질고 나쁜 사람이었다. 황제는 사람이 아니다. 가장 추악하고 잔악무도하고 끔찍한 자다. 끅끅거리는 웃음이 점점 높아졌다.

**

씩씩대며 영운궁을 돌아온 세연이는 급하게 윤을 찾았다.

“윤아! 어딨느냐!”

그를 찾아 사방을 헤맸다.

“황후마마.”

옆에서 윤이 나타났다. 무엇을 하다 왔는지, 숨이 차 보였다.

“어찌 그러십니까.”

“검을 배워야겠다.”

그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갑자기 어찌 이러십니까.”

“수련이 부족하여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예?”

“폐하를 베지 못했다. 확 벴어야 했는데.”

“마마!”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였다.

“어머니를 구해달라고 빌려고 갔는데, 도저히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해서 검이라도 뽑아서 협박하려고 했는데 너무 무거워서 한 손으로 들지도 못했다….”

한심하고 한심한 자신의 모습에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칼도 못 잡고 복수도 못 하고 어머니도 못 지키고.”

이러다가 계속 이러다가 복수는 꿈도 꾸지 못하고 그에게 무너져 내릴까 무서웠다. 그를 용서해 버릴까 봐.

“난 한심하다. 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고 지키지도 못하고.”

서러움이 차올랐다.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차라리 칼로 그를 쑤시기라도 했으면 덜 억울했을까.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억울하고 억울했다. 세상이 이토록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