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황후가 되다.

황궁 내가 떠들썩했다. 휘는 황제를 상징하는 황금색의 화려한 대례복을, 세연이는 황후에 걸맞은 옷을 차려입었다.

오직 황제와 황후만이 입을 수 있는 용 자수가 새겨져 있는 대례복이었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짠 황금색 실로 수를 놓았다. 늠름하게 그려진 용의 모습은 이제 그들을 진정한 황제와 황후로 인정하는 듯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장식들이 부딪혀 소리를 냈다. 혼자 입고 서기도 버거운 그 옷을 입고도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를 만나러 가기에 그랬을까.

천천히 한 발 한 발 내디뎌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높이 있는 계단도 거추장스러운 옷도, 상관없었다. 오직 자신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그만이 보였을 뿐이다. 이제야 그의 곁에서 명실상부한 황후가 되었다. 황후만이 황제와 나란히 할 수 있는 황후, 정비였다.

그 누구도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엄중하고 화려한 즉위식이었다. 그들을 올려다보는 수많은 사람, 그 뒤로 보이는 황궁과 도성. 이제 그들은 이 나라의 주인이 되었다.

그들의 발밑에는 수많은 백성과 천하가 있었다. 그는 환히 웃었다. 이젠 그녀도, 천하도, 황제도 다 자신의 것이 되었다.

앞으로 넘어가야 할 산은 많았지만, 지금처럼 행복한 순간이 또 있으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와 함께 있으니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세상은 그 하나로 가득했다.

휘가 황제임을 선포하는 선황의 교지가 발표되고 그들은 몸을 돌렸다. 그에 맞추어 모두가 무릎을 꿇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황제 폐하. 황후 마마. 만세를 누리시옵소서.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우레와 같은 그들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널리 퍼졌다.

폭풍 같은 하루가 지나고 정신을 차리니 이미 날이 저물었다. 몸이 피로하고 저도 모르게 하품이 나왔다.

잠이라도 깨려 창문을 활짝 여는데 누군가 손목을 낚아챘다. 깜짝 놀라 보는데, 환히 웃고 있는 휘가 보였다.

그는 조용히 하라며 입가에 손을 댔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없이 그를 따라갔다.

“어디 가는지 안 물어보느냐?”

“어디든… 좋습니다.”

그를 보며 찡긋 웃었다. 그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밤바람에 옷자락이 휘날렸다.

작은 안뜰이 있는 전각에는 온갖 꽃들이 장식되어 있었고 붉은 비단이 깔려있었다. 붉은 길옆에는 그를 밝히는 등이 있었다. 입을 다물어지지 않았다.

오색지를 예쁘게 오려내 곳곳을 장식하고 눈길이 닿는 곳마다 꽃들이 수놓고 있었다. 정성도 그런 정성이 없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런 것은 언제 준비하셨습니까?”

“국혼은 올렸으나, 손수 너에게 해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직접.”

오늘 밤이 지난다면 태자가 아닌 황제가 되었다. 돌이킬 수 없는 그 길 위에 황제가 아닌 한 사람으로 허락된 그 하루를 무엇보다 찬연히 보내고 싶었다.

“이 길은 너와 내가 함께 걸어갈 길이다.”

길가에 고운 꽃잎이 한 방향으로 길게 늘어섰다. 그 길을 따라 함께 손을 잡고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입가에 걸린 미소는 내려가지 않았고 달 아래 서 있는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반달처럼 휘어진 눈가, 햇살보다 따듯한 미소, 사랑으로 충만했다.

새하얀 눈보다 순수한 마음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 빛을 잃지 않도록.

“황궁은 험한 곳이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허니, 내가 널 지키기 전에 네가 스스로 너를 지켜야 한다. 알겠느냐”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싸늘한 냉기가 다 물기를 얼려버리는지, 그의 살결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딱 적당한 온도, 언제든 활활 타올랐다가 언제 그랬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입술을 찾아 헤맸다.

살짝 내리깐 두 눈은 간절하게 허락을 구했다. 한쪽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의 볼을 감싸 쥐자 주저 없이 다가왔다. 눈을 감고 있는 그의 볼을 힘껏 잡아 늘였다.

“…저만 할 것입니다.”

눈을 뜬 그는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엇이든. 이미 모든 것을 허락했다.”

그가 속삭였다.

어쭙잖은 용기가 생겨 볼에 살짝 입을 맞추고 말았다. 그는 그대로 얼어붙더니 이내 호탕하게 웃었다.

곧바로 서로의 숨결이 맞닿고 입술이 닿았다. 부드러운 혀가 입술을 간질였다.

입술 사이로 한데 섞인 뜨거운 감촉은 부드럽지만 강렬하게 파고들었고 안달 난 마음을 채워나갔다.

그의 입맞춤은 정신을 잃을 듯이 아찔했다. 살짝이라도 물러서는 법이 없었고 여지를 주면 더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놓을 듯 놓아주지 않던 그는 숨 쉬는 것을 잊어 숨이 가빠질 때쯤 겨우 놔주었다.

가쁜 숨을 몰아쉴 여력도 없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눈을 떴을 땐 전보다 더욱 서로를 원하는 짙은 시선이 허공에서 뒤엉켰다. 말을 해야만 했다. 지금 그녀의 몸을 휘어 감는 이 감정을.

지금밖에는 없으니까….

“은애… 합니다.”

그의 눈빛이 정처 없이 흔들렸다.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백번, 천 번 말해도 그 말로는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었으니까.

그는 대답 대신 번쩍 안아 들었다. 몇 걸음 가지 않아 푹신한 침대가 등에 닿았다. 다시금 그는 강렬하게 파고들었고 그를 끌어안은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자각할 사이도 업이 거추장스러운 옷들은 풀려버리고 살갗이 비칠 정도로 얇은 옷만 남았다. 맞닿은 몸에서 따듯한 체온이 느껴졌다. 그대로 전해지는 열기는 더욱 몸을 닳게 했다. 달뜬 숨은 점점 더 가빠졌다.

욕망에 취한 나른한 그의 두 눈은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을 애써 잡고 있었다. 이건 한순간의 욕정이 아니라는 듯 마지막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원해요….”

‘나도 당신을 미친 듯이.’

뒷말은 그의 입술이 삼켜 버렸다. 이전보다 훨씬 야릇한 감각이 온몸을 휩쌌다. 그의 입술에서 목으로 더욱 여린 살결로 이어졌다. 처음 느끼는 낯선 감각에 그가 닿는 곳마다 살갗이 오드드 떨리고 발끝부터 움츠러들었다.

그는 타오르는 불꽃처럼 거침없이 파고들었다가 누구보다 다정한 손길로 등을 쓸어내렸다.

서로를 완전히 마주하는 순간,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뜨끈한 공기에 섞인 숨소리만 울렸다. 비스듬히 누르는 그의 움직임에 그저 몸을 맡길 뿐이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그들의 사랑은 더욱 깊어갔다.

한바탕 폭풍처럼 지나간 밤은 잠들었던 그의 욕정을 일깨우기 충분했다. 여전히 뜨거운 가슴을 주체하지 못한 채 지친 기색으로 잠든 그녀를 눈으로 훑어 내렸다.

살짝 뒤척일 때마다 이불이 뒤척였고 살짝씩 보이는 하얀 살결은 잠재우고 있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금방이라도 다시 품에 안고 싶은 것을 애써 참으며 이불을 꼼꼼히 덮어주었다. 곤히 잠든 두 눈을 절대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넘겨주었다. 그녀는 그의 손길을 느꼈는지, 그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었고 그는 잠든 그녀를 안아주었다.

세상모르게 잠든 그녀를 두고 일어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갈 채비를 하면서도 입가에 걸린 미소가 내려가지 않았다. 얼마 만에 맞는 상쾌한 아침이란 말인가.

“햇살이 이리도 좋구나.”

문밖으로 나와 큰 숨을 들이쉬었다. 아침 햇살이 이렇게 눈이 부시고 아름다웠던가.

“절대 깨우지 말고 푹 쉬게 두거라.”

주변의 궁녀들에게 단단히 일러두고 애써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고 조례에 갔다.

뜨거운 햇살이 눈가를 때리는 탓에 잠에서 깼다. 온 세상이 나른하고 아름다운 것이 딱 좋았는데, 정신을 차리니 세상에 해가 중천이었다. 기겁하며 정신을 차렸다. 다급하게 분이를 불렀다.

“깨우지 않으면 어찌 하느냐! 태후마마께 가야 하지 않느냐?”

“폐하께서 곤히 잠드신 마마를 배려해 내일로 미루었습니다.”

분이는 그녀를 보며 웃었다.

“폐하께서 얼마나 마마를 아끼시는지 벌써 궁내에 소문이 파다합니다.”

휘몰아치는 어제의 기억에 얼굴이 붉어졌다.

“감축드립니다. 이제 어서 황자 마마를 폐하께 안겨드려야지요. 황후마마.”

두 볼이 아까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붉어졌다.

“놀리지 말거라.”

어딘가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도 이런 날들만 남았을 테니까.

“황후마마. 폐하께서 납시셨사옵니다.”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 방금 잠에서 깨어난 모습에 단장이라고는 할 것도 없이 초췌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옷도 제대로 갖추어 입지 않았다. 그녀는 다급히 궁녀를 불렀고 휘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폐하. 갑자기 오시면 어찌합니까.”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도통 집중이 되질 않았다. 보고하는 대신들이 전부 너로 보이지 않느냐.”

그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무슨 소리를. 기다리십시오. 옷을 입고 따라 나가겠습니다.”

훠이훠이 손을 내저었다.

“이미 꺼릴 것이 없는 사이인데, 어때서 그러냐.”

그 말을 들은 궁녀들은 작은 실소를 터뜨렸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대체 궁녀들의 얼굴을 어찌 보라는 건지.

“송구합니다.”

살짝 굳어진 표정을 알아챈 궁녀들은 재빠르게 고개를 조아렸다.

“나가 보아라.”

궁녀들이 모두 나간 것을 확인하고 그를 째려보았다.

“이거 어쩌나. 시중을 들 사람이 사라졌으니, 직접 시중을 들어야겠소.”

그는 천천히 다가와 두 손을 잡고는 꽉 안아버렸다.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깊은 숨을 들이켰다.

“진정으로 무슨 짓을 하였느냐. 오늘 하루 죽는 줄 알았다.”

“예?”

“안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

뜨거운 숨이 귓가를 간질이고 어떻게든 닿으려는 손을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폐하. 밖에서 다 듣습니다.”

웃음을 겨우 참아내며 또박또박 말했다.

“아직 나누어야 할 운우지락이 남지 않았느냐.”

이게 무슨! 그녀는 파고드는 그의 손을 잡아챘다.

“수라가 준비되었을 것입니다. 나가시지요.”

아쉽다는 듯, 그녀를 놓아주었다. 꼭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 머리를 어루만지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폐하. 가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라지지 않을 테니, 나중에 또 보시면 되지 않습니까.”

아까부터 소선은 휘에게 눈치를 엄청나게 주고 있었는데, 휘는 외면하고 있었다. 그녀가 나서자,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습니까? 황후의 말씀이 다 옳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가 나갈 때까지 따라나섰고 둘은 서로를 한동안 보지 못할 연인처럼 애절했다.

눈 뜨고 못 봐줄 정도로 서로 애틋했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궁녀들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황후. 이따 밤에 봅시다.”

재빨리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는 당황하는 그녀를 보고서야 만족했다는 듯 자리를 떴다.

서로의 입가에 걸린 흐뭇한 미소는 한동안 떨어지지 않았고 틈만 나면 생각나는 서로의 모습에 실없게 웃었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웃음이 번져갔다.

**

어두운 밤. 하얀 이불을 함께 덮고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그는 웃옷을 여미는 것도 잊은 채 누워있었다.

아침부터 정무를 보고 하루 종일 고된 업무를 마쳤으니, 피곤할 만도 하였다. 그 와중에도 그녀를 챙기는 것은 잊지 않아 한쪽 팔은 그녀에게로 향해 있었다. 한사코 팔베개를 해준다는 것을 말리느라 얼마나 실랑이를 벌였는지 모른다.

이미 진이 쭉 빠져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곳곳에 그가 남긴 붉은 자국이 가득하여 더는 힘이 남아있질 않았다.

이제야 숨을 고르며 한 풀 쉬었다. 그의 품에서 살짝 벗어나 눈을 감은 얼굴을 조용히 마주할 수 있었다. 무방비한 숨을 끊임없이 뱉어내는 것을 보니 깊이 잠든 것이 분명했다.

고요하게 밤공기가 그에 얼굴에 내려앉았다. 가끔은 믿기지 않았다. 지루할 정도로 평범한 일상을 그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를 만나고 틈만 나면 그와 함께했다.

그와 함께 밤을 보내고 수라를 즐기고 밤이 되면 별을 보고 다시 그의 품에서 잠이 드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의 품은 절대 벗어날 수 없었다. 불편할 것 같아 피해 보아도 다시 곁으로 와 팔을 뻗었다. 조금만 벗어나도 다시 붙잡으니 빠져나갈 도리가 없었다. 잠에 든 줄 알았던 그는 다시 옆으로 눕더니 두 팔로 안아주었다.

“…폐하. 여태 주무시지 않으십니까.”

“으음….”

잠에 취한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는 잠귀가 굉장히 밝았다. 아주 자그마한 소리에도 잠에서 쉽게 깼다. 아무 곳에서나 잘 자는 그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천천히 그의 등을 토닥였다.

“편히 주무십시오. 폐하.”

“…율휘다.”

잠에 잔뜩 취한 목소리에 그를 올려다보았다. 품속에 갇혀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저 낮은 목소리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