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우리 연애 건너뛰고 결혼해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서자 불이 켜지지 않은 깜깜한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것 같아 해수는 깊은 한숨과 함께 힘없이 방으로 향했다. 그때 소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수야 괜찮아?”

“어? 소미야 너 어디 있어?”

“나 소파에 앉아있어.”

분명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들어온 터라 놀랐다. 소미의 가라앉은 목소리를 듣자 하니 그녀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어 미안함이 밀려왔다.

“불은 왜 안 켜고. 잠깐만, 내가 불 좀 켤게.”

“그냥 두고 이쪽으로 와봐.”

“너… 울었어?”

“정작 울고 들어와야 하는 너는 안 울고 내가 울고 있네… 흑.”

어두운 곳에 익숙해지자 소미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미의 얼굴이 흐르는 눈물로 얼룩져 있는 것을 확인하자 가슴이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다. 해수는 심장 부근에 손을 올려 잠시 지그시 누르며 말을 이었다.

“울지 마… 소미야… 괜찮아질 거야.”

“어떻게 괜찮아질 수 있겠어. 사진이랑 신상까지 다 돌고 있던데… 어쩌려고 그래.”

“내가 그 사람 손 잡았을 때 예상했던 일이었어….”

모든 것을 초월한 듯 보이는 해수의 모습이 오히려 더 안타까웠다. 모래 폭풍우 한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몸이 휘청거리고 상처가 날 게 분명했다. 붉은 혈흔이 그녀의 심장에서 흘러내리는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소미는 심장 부근에 손을 올리고 있는 해수의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품 안에 감싸 안았다.

“차라리 울어 해수야, 그렇게 속으로 눌러 참지 말고 울어… 그렇게 참기만 하면 병 되는 거야.”

“소미야… 흡… 흑…….”

“그래, 한바탕 울고 나면 조금 후련해질 거야.”

자신보다 작은 몸집인 소미에게 안기자 어린아이처럼 가슴에 묻고 있던 눈물이 결국 터져 나왔다. 해수는 오늘 어떤 일을 겪었는지조차 말 못하고 그저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서러운 흐느낌을 토해냈다. 현관밖에는 문고리를 잡고 들어오지 못하고 서 있는 소준이 흘러나오는 해수의 눈물에 휴대전화에서 절대 누르지 않을 것 같은 그 이름을 눌렀다.

“…여보세요.”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오늘은 적절한 타이밍이 아닌 것 같은데 다음에 전화하는 것이 어떻겠나.”

유현은 집으로 돌아와 외투도 벗지 못한 채 소파에 몸을 던져 넣었다. 그대로 조금의 미동도 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주머니에서 진동음이 울려왔다. 빠르게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생각지 못했던 소준의 전화였다. 잔뜩 화를 눌러 참으면서 조곤조곤 말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욱더 머리가 복잡해졌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책임도 못 질 거면서 큰소리만 친 건가?”

“내가 우리 사이에 그만 끼어들라고 했을 텐데.”

“해수가 이토록 가슴 아프게 울고 있는데 우리라 말하는 당신은 도대체 뭘 하는 거지?”

“…울어?”

유현은 그의 말에 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차라리 자신의 앞에서 눈물 흘리며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면 지금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분명 씩씩하게 말하고 뒤돌아 왔겠지… 후… 지금 상황을 제일 수습하고 싶은 사람이 바로 김유현 당신이겠지만, 더는 해수 눈에서 눈물 나는 일을 만든다면 나도 참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이 말 하려고 전화했습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뚜뚜뚜---

“하… 울고 있다라… 어떻게 해야 할까, 너를….”

힘들어하고 있을 해수 생각으로 그는 그대로 아침까지 그 자리에 앉아 밤을 지새웠다. 시간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어진 스캔들 때문이었을까 비난의 여론이 거세게 태진 그룹을 흔들었다. 김 회장의 말대로 그녀를 향한 비난과 악성 댓글이 쏟아졌다. 해수는 회사에서조차 경멸 어린 시선에 무척이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기 민지 씨, 혹시 담당자 메일 확인했어?”

“네.”

해수는 도통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 민지의 반응에 멈칫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돌려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저 당황스러워 그럴 것이라 이해하려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상처가 쌓여가는 것은 막지 못했다. 그녀는 잠시 휴대전화를 쥔 채 화장실로 향했다.

“그 여자 아직도 회사 나온다면서?”

“같은 여자로서 너무 수치스러워 결혼할 여자가 있는 남자랑 왜 만나?”

“얼굴값 하는 거지, 아무튼 같은 회사 다니는 게 창피하다니까.”

한참 남의 이야기로 자신들의 기분을 풀던 그녀들이 나가자 맨 마지막 화장실 문이 열리며 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을 만나게 되면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그의 경고를 잘 알면서도 시작한 만남이었다. 그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그를 사랑한다는 것 자체로 삶이 송두리째 뽑혀 나가는 것 같은 느낌에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후… 이제 정말 한계야… 결정했으니 이제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겠네….”

그 시각 회의실에서는 유현을 향해 더는 참지 않고 불만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유현은 조직적으로 움직임을 보이는 그들에게 더 이상의 구실을 만들어 줄 수 없어 묵묵히 참아내었다. 그런 그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본부장실로 돌아온 유현이 자신의 책상 앞으로 향했다. 김유현이라 쓰인 명패를 매만지는데 책상 위에 올려 둔 휴대전화의 진동음이 느껴졌다.

[해수: 퇴근하고 우리 데이트했던 남산으로 와요, 기다릴게요.]

퇴근 시간이 되자, 그의 초조함이 이 실장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업무를 마친 유현은 이성의 끈을 놓은 사람처럼 빠른 걸음으로 본부장실을 박차고 나갔고 이 실장은 쫓아가 강하게 유현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진정하시죠.”

“차 키, 지금 빨리 가봐야 해.”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아직 보는 눈이 많습니다.”

“아… 알았어.”

퇴근 시간에 맞춰 도로가 꽉 막혀 교통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았다. 시계를 계속 확인하는 그의 눈빛에 이 실장이 입을 열었다.

“차를 버리고 뛰어가고 싶으시겠지만 그렇다고 더 빨리 도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어. 그러니 안 내리고 가만히 있는 거 아닌가.”

그의 현재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이 실장의 말에 정곡을 찔려 뜨끔했지만, 티 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다행히 그 정도는 아직 분별하실 수 있는 정신은 붙잡고 계신가 봅니다?”

“누가 하도 어깨를 세게 잡으면서 진정하라길래 정신이 번쩍 들었지.”

“더 세게 잡을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 실장은 일부러 농담 섞인 말들을 던지며 그의 긴장을 풀어내려 노력했고 그 마음을 잘 알고 있던 유현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는 사이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가 빠르게 차에서 내려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그녀의 뒷모습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온 해수는 그보다 먼저 도착해 차가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서 있었다. 그와의 추억이 많은 곳이었다. 데이트하며 몰래 사랑을 적어 놓았던 곳이자 그 마음을 확인한 곳이기도 했다. 뒤에서 긴 팔이 해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해수는 그대로 그의 품 안으로 잡아 당겨졌다.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을 안 할 줄은 몰랐어….”

너무도 익숙한 그의 향기와 체온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해수는 그의 팔을 조심스럽게 두어 번 치며 말을 걸었다.

“…유현 씨, 이거 놓고 얘기부터 해요….”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그러고 간 뒤로 걱정돼서 전화하고 싶었지만, 시간을 달라고 했던 터라 기다리기만 하느라 애가 타서 죽는 줄 알았어.”

“…유현 씨는 그 일주일이 애가 타서 죽을 뻔했겠지만,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시련에 내 삶이 송두리째 뽑혀 나가는 것 같았어요.”

그는 그리움이 묻어나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를 향한 해수의 표정은 차가운 바람에 얼어 붙어버린 것처럼 굳어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입을 타고 나오는 말들은 유현에게 투정을 넘어선 원망이 섞여 있었다.

“오늘 만나자고 한 건… 설마…?”

“우리의 설마는 항상 그 설마가 맞았던 거로 알고 있지 않나요? 맞아요… 우리 이제 그만해요.”

“……!”

“더는 무리예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화가 났던 마음이 가라앉아 해수가 연락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 약속 장소인 이곳에서의 만남이 더욱더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을 알게 해준 고마운 곳에서 해수가 꺼낸 말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처음부터 예상하고 시작했던 것이었잖아… 그만하자니….”

“이 정도 일 줄은… 정말 몰랐어요….”

“많이 힘든가…?”

“네… 너무 힘들어요.”

“…어쩌지, 나는 놔주지 못할 것 같은데….”

유현은 여러 번 되묻는 자신의 질문에도 결심을 굳혔는지 딱 잘라서 거절의 의사를 표하는 해수를 강하게 붙잡지도 못하고 있었다.

“유현 씨.”

“……?”

“그래서 말인데요.”

“듣고 있으니… 말해….”

충격을 받은 상태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는 유현에게 해수가 다시 말을 걸었다.

“우리 연애 건너뛰고 결혼부터 하는 건 어때요?”

“…그게 무슨?”

“내가 당하는 것은 얼마든지 참아내고 감내할 수 있었는데 당신이 힘들어지는 것은 더 보지 못하겠어요. 어때요?”

점점 침울해지는 그를 향해 흔들림 없는 해수가 말을 이었다. 무척이나 힘든 나날들이었다. 일주일 동안 쉴 새 없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비난과 비수에 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욱더 많은 사람이 유현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그 사람 걱정에 밤을 지새우는 날이 더 많았다. 물론 재벌가와의 결혼이란 생각만 해도 답답해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유현을 보지 못하고 살아갈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였다.

“하….”

“어? 지금… 거절하는 거예요?”

해수는 유현이 놀라기는 해도 기뻐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유현의 한숨에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목소리가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했고 까맣고 깊은 눈동자도 흔들림으로 휘청거렸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그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조심스레 떼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때 나도 대답하도록 하지.”

“그게 무슨?”

뜻밖의 말에 놀라긴 했지만 기뻐할 수만은 없는 말이었다. 유현이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의기양양했던 해수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워졌다. 그 모습을 본 유현이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차분하게 말을 시작했다.

“실은 이번에 집에 갔을 때 뵈었던 분은 내 친어머니가 아니야… 복잡하지만 원래 본부인이었다가 아이를 낳지 못해 쫓겨났던 비운의 여자이기도 하지. 그 자리에 내 어머니가 들어와 나를 낳았고 내가 4살 되던 해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그 뒤로 나는 지금의 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일부러 마음 아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돼요….”

분명 가슴 아픈 이야기인 것이 틀림없었다. 마치 피를 토하는 것처럼 입가에 경련이 일 정도로 그는 자신의 상처를 꾹꾹 참아내고 있어 보였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이 집에 들어올 자신이 없어서 나를 떠난다 해도 더는 붙잡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이 진흙탕 속으로 너를 같이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난 아직도 두려워… 반짝반짝 빛나는 네가 나와의 결혼으로 그 빛을 잃어버리게 될 것 같아서….”

“…유현 씨 생각이 그렇다면 들을게요.”

자신이 결심은 어떤 내용에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았지만,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속에 담아두었던 것이었을 거라는 생각에 해수는 그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새어머니는 사람들 앞에서는 나에게 온 마음을 다하는 어머니로,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아버지와 살았던 내 어머니의 그림자를 찾으며 모진 학대를 일삼았지… 특히 말로 내 마음을 병들게 했어… 어느 순간부터는 그 모진 말에도 아무렇지 않은 날들이 오더군.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잘 웃지도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도 않는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휘소를 만나고 난 뒤였어… 아버지는… 한마디로 방관자…였지.”

“학대… 방…관자?”

상상 그 이상… 아니 상상할 수도 없는 말들이 그의 입에서 쏟아졌다. 어린아이가 견뎌냈을 그 혹독한 현실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절대 울지 않고 끝까지 들어야 했다. 해수는 가슴이 저릿거리는 것을 참아내느라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말 그대로 그저 상황을 지켜보며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 새어머니가 철저하게 이중적으로 말과 행동으로 가족들을 속였기에 몰랐을 가능성도 있어… ”

“그 정도로….”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어린 나이였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게 자행된 새어머니의 학대와 관련된 이야기를 유현은 덤덤하게 말로 내뱉고 있었다. 해수는 목이 메여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후… 현지는 졸졸 쫓아다니면서 살갑게 나를 대했던 아이야. 하지만 새어머니는 내가 마치 현지에게 무슨 짓을 할까 봐 유독 경계하면서 사람을 붙여 감시했어… 지금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야.”

자신을 향해 못된 말을 퍼부었던 사람이었지만, 유현에게 살갑게 대해줬다는 이야기에 눈 녹듯 현지에 대한 첫인상이 바뀌는 것 같았다.

“유일하게 그 집안에서 나에게 잘해준 한 사람… 할아버지는 태진 그룹을 이어나갈 최고의 경영자로 키우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하셨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남았어. 내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게 아니라더군… 자살이었어… 이게 간략히 정리한 내 성장 과정 이야기야, 어때? 정떨어지지 않나? 결정을 번복해도 괜찮으니… 지금, 뭐하는 거….”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모두 이야기한 그는 한쪽 입꼬리를 힘없이 올리며 읊조렸다. 그저 가만히 듣고 있던 해수가 크게 팔을 벌려 그를 안아주었다. 해수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겨우겨우 말을 이었다.

“많이… 힘들었겠다… 우리 유현이….”

“…….”

“이제는… 내가 당신 편이 되어줄게요….”

“…다시 신중하게 생각해보는 게.”

“우리, 결혼해요.”

다시 생각해 보라는 그의 말에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해수의 목소리가 얹어졌다.

“해수야….”

“더한 일을 겪었다 해도 난 당신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사랑해요….”

“윽… 흡… 흑….”

해수의 따뜻한 목소리와 그를 향한 진심에 결국 그가 무너져 내렸다. 강인한 남자였다. 빈틈없고 냉정하고 차가운 말을 내뿜어 다른 사람을 얼어붙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 심장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여리고 여린 마음을 스스로 지켜보려 가시덤불로 감싸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의 눈물이 너무도 아프게 터져버렸다. 스스로 이토록 울어본 적이 없던 유현은 4살 어린아이처럼 한참을 해수의 품 안에서 목 놓아 울고 또 울었다.

얼음 왕자의 얼음이 녹기 시작한 것처럼 쉬이 그치지 않자 해수는 그의 얼굴을 잡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뚝!”

“뚝…?”

“계속 울면 결혼하자고 한 거 취소한다!”

“풋… 큭큭크.”

휘소는 두어 발자국 떨어져 그들의 가슴 아픈 사랑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별을 고하는 해수로 인해 잠시 놀랐고 또 여자인 그녀가 청혼의 말을 꺼내는 것을 보며 박수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유현의 어린 시절을 듣던 그의 눈에 조금씩 물기가 어렸다. 유현의 처음 보는 눈물은 그만큼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어느 정도 울었으면 그칠 만도 했는데 영 그치지 않자 해수가 재치 있는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거짓말처럼 눈물이 쏙 들어가 버린 유현을 보며 옆에 있던 그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웃지 마, 이휘소.”

“이제 그만 가시죠.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여린 여자한테 안겨서 지금 몇 분 째 그러고 계시는 겁니까?”

유현이 빨갛게 부어오른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내뱉자 휘소는 이때다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바로 일침을 가했다.

“너….”

“이제는 내가 너무 추워서 더는 여기 못 있겠어요. 어서 가죠, 우리.”

해수는 민망해하는 유현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해수가 춥다고 말을 하자 유현은 바로 그녀의 차가워진 손을 자신의 코트 안으로 넣으며 차로 걸어갔다.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지만, 행복이라는 맛을 입에 머금고 웃고 있었다. 조금 떨어져 그들을 따라오던 휘소가 나란히 걷는 그들을 보며 속으로 말을 삼켰다.

‘형… 정말 다행이다… 앞으로는 흔들리지 말고 이 사랑을 지켜나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