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항상 같이 있고 싶다

‘아침은 내가 할게.’

‘그럼 달걀말이 부탁해.’

‘참치 캔 있는데 김치찌개도 끓일까?’

‘좋지.’

하늘은 어제 술도 많이 마시지 않았고 규현이 심하게 달려들지 않았기에 일찍 잠들었고 푹 잤더니 일찍 눈이 떠졌다. 꼼지락거리다 규현이 깰 것 같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빠르게 침대를 빠져나왔다. 다행히 규현이 깨지 않아 샤워하고 나왔더니 규현이 일어나 주방을 서성이기에 하늘이 나선 것이었다.

‘오빠는 우선 씻고 와.’

‘엄마 같네. 알겠어.’

규현이 욕실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김치찌개부터 올리고 달걀말이 준비를 했다. 찌개가 끓고 있을 때 규현이 나오고 그때 하늘은 달걀말이를 시작했다.

‘오빠 밥 좀 돌려줘.’

‘응. 그런데… .’

‘응?’

‘우리 꼭 부부 같다.’

‘엄마라더니 이젠 부부야? 이거 간 좀 봐줘.’

‘나는 많이 짜지만 않으면 괜찮아.’

‘그래도….’

‘음… 맛있네. 뚝딱뚝딱 잘한다.’

규현은 생각했던 것보다 맛있어 놀랐다. 친구랑 같이 살며 아침은 꼭 해 먹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에서 밥을 해 먹는다고 해 어느 정도는 하겠지 했지만, 너무 맛있었다.

‘여기 마법 가루 넣었어?’

‘그런 게 여기 있겠어? 김치가 맛있어서 그런 거야.’

하늘은 냉장고에 소금과 후추, 다진 마늘 조금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그냥 참치 기름에 김치를 적당히 볶아 김칫국물, 다진 마늘 조금 넣고 끓였다. 넣은 것도 없고 재료도 부실해 맛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빈말이라도 맛있다고 해주니 기분이 좋았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

둘은 어제 사 놓은 반찬까지 꺼내 나름 진수성찬이라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다. 오늘은 시원하게 계곡에 가보자는 규현의 말에 하늘은 여름휴가를 제대로 즐기는 것 같았다. 바다와 계곡을 다 즐긴다는 게 쉬운 것은 아니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혹시 모르니까 겉옷도 하나 챙겨.’

‘안 그래도 넣었어. 가자.’

바다보다 계곡물이 차가워 혹시 추위를 느낄까 걱정되어 옷을 챙기고 구명조끼까지 확인하고서야 출발을 했다. 어제 해수욕장보다는 거리가 있었지만 20분도 안 되어 도착해 산을 올라 계곡에 도착했는데 어제 바다보다 사람이 많았다.

‘여기 사람들은 바다보다 계곡을 좋아하나봐.’

‘바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를 자주 보니까. 그리고 계곡은 산 안에 있어서 물이 차니까 뜨거운 여름에는 계곡이지. 그리고 바다는 애들이 좋아하고 계곡은 나이가 들수록 좋아한대.’

‘누가?’

‘우리 아버지께서 그러시더라고. 우리 가족은 여름에 여기 오면 바다보다 계곡에 와.’

어제 바다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았었다. 아이들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는데 지금 계곡에는 아이들도 많고 가족 단위가 많은 것 같았다. 어쩌면 바다는 넓어서 사람들이 적어 보였고 계곡은 좁으니 많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텐트가 많아 더 그런 것 같았다.

‘그냥 갈까?’

‘괜찮겠어?’

‘사람 많아서 물에 발 담그기도 그렇고….’

‘그럼, 여기 올라갔다가 올까?’

‘그래. 여기까지 온 게 아까우니까 가보자.’

규현이 혹시 모르니 운동화를 챙기라고 했었는데 다행이라 생각했다. 운동화를 신고 산을 오르는데 하늘은 어제 바다를 본 것보다 기분이 더 좋았다. 규현의 손을 잡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덕에 힘들기보다는 재미있었다.

‘이래서 산에 오르나?’

‘왜?’

‘그냥, 기분이 좋네.’

‘좋다니 다행이네.’

둘은 산행이 목적이 아니기에 중간 쉼터에서 쉬다가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계곡을 들렀지만, 오후가 되니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아 둘은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은 어제 사둔 고기를 먹을 생각이었기에 된장찌개를 끓일 준비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두워진다.’

‘그러네. 비 오려나? 일기예보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하늘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거실에 있는 TV를 켰다. 평일 낮 시간이라 뉴스를 하는 곳이 없어 핸드폰을 들었다.

‘현재는 구름 조금인데 이건 조금이 아니지?’

‘그러게. 어제 확인할 때도 구름 조금이었으니 소나기 정도겠지.’

둘은 배가 고파 우선 밥 먹을 준비를 했다. 규현은 고기를 굽고 하늘은 찌개와 어제 사 놓은 채소를 씻었다. 그리고 밥을 데우려는데 갑자기 천둥이 치더니 비가 쏟아졌다.

‘불을 켜야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구름이 있었지만 불을 켤 정도는 아니었는데 비가 오기 시작하니 컴컴해졌다. 밥을 먹으며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저녁때 올라갈 생각이었기에 갑자기 내리는 비가 반갑지 않았다.

‘우리는 놀러 가면 꼭 비가 오네.’

‘…그러네.’

‘음악 들을까?’

TV도 볼 것이 없고 계획에 없는 시간이기에 둘은 커피를 마시며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다 규현이 음악을 재생시켰다.

‘많이 들어봤는데, 뭐야?’

하늘은 규현이 도서관에서 가끔 음악을 듣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이어폰을 꽂고 항상 듣는 것은 아니었다. 집중이 안 된다거나 쉴 때만 가끔 듣는 거라 신경 쓰지 않았는데 지금 갑자기 연주곡이 나오니 궁금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께서 피아노 연주곡을 자주 들으셨어. 그래서 듣다 보니 좋더라고. 이건 유키 구라모토의 ‘로망스’야.’

‘아…어머님께서 음악을 좋아하시나 봐.’

‘잔잔한 연주곡을 좋아하셔.’

‘오빠는 가요는 안 들어?’

‘듣지. 왜?’

‘아니, 음악 듣자길래 어떤 가요가 나오나 기다렸는데 연주곡이 나오니까 당황스러워서….’

‘…하하하.’

‘왜 웃어?’

‘분위기 좀 내보려고 했는데 안 먹혔네.’

규현은 비도 오고 금방 그칠 비가 아닌 것 같아 분위기 좀 잡아보려 시도를 한 것인데 순진한 하늘은 단순히 음악에 관심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규현은 혼자 앞서 나간 것이 머쓱해 웃어버렸다.

‘…분위기 좋네.’

‘……!’

규현은 하늘이 자신의 옆으로 다가와 갑자기 입맞춤한 후 분위기 좋다고 말하니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챘다. 규현은 기다릴 것도 없이 하늘의 입술을 머금고 하늘을 일으켜 세웠다. 어제 같이 잤던 방으로 하늘을 이끈 후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잠시 떨어진 틈에 규현은 자신의 윗옷을 벗고 다시 하늘에게 다가갔다. 하늘의 입술을 머금고 손은 하늘의 윗옷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

‘미안.’

규현은 급한 마음에 손에 힘을 주었다. 하늘은 부드럽던 손길에 힘에 들어가니 놀라 소리를 냈는데 규현은 미안하다며 이전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어제는 규현이 망설이며 조심스러웠다면 오늘은 너무도 다급하고 강렬했다.

‘미치겠어.’

‘나도 미칠 것 같아. 하아….’

***

“올라가야 해?”

“그럼 가야지.”

“아야… 아프다.”

하늘은 자신을 감싸고 있는 규현의 팔을 아프지 않게 때렸다. 하지만 규현은 서운한 마음에 아프다 엄살을 부렸다.

“왜 자꾸 애가 되는 거 같지?”

“네가 그래야 봐주니까.”

“으이구… 내가 안 들어가면 오빠 내일 할아버지한테….”

“할아버지께 내가 말씀드렸어.”

“뭐?”

하늘은 규현이 태석에게 이상한 소리를 했을까 걱정되어 순간 큰소리가 나왔다. 규현이 뭐라고 했을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올라가는 게 좋을 것 같아 하늘은 침대 밖으로 나와 옷을 찾아 입으려고 했다.

“어? 내 속옷….”

“내가 아까 세탁기에 넣었어.”

“아…그럼….”

“윤하늘 너 진짜 올라갈 거야?”

“올라가야지.”

“알겠어. 기다려.”

하늘은 차가워진 규현의 말투에 놀라 규현을 바라봤지만 이미 세탁기로 향하고 있어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하늘은 규현이 옷을 넣는 서랍에서 반팔 티를 하나 꺼내 입고 규현에게 다가갔다.

“오빠, 화났어?”

“아니. 기다려 곧 끝나겠다.”

“나는 할아버지한테 오빠가 혼날 것 같아서….”

“내 얘기 듣지도 않았잖아.”

“…미안. 근데 오빠가 나 놀라게 했잖아.”

하늘은 억울했다. 태석과 무슨 말을 했는지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하늘이 오해를 할 수 있게 한 규현의 잘못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차갑게 말하니 서운함이 앞섰다.

“그래서 지금 들으려고?”

“…응.”

“내가 도착해서 올라가 인사드리는데 두 분이 나가실 준비를 하고 계시더라. 할아버지 친구분이자 할머니의 오빠분께서 호출하셔서 가신다고 너한테 따로 연락 안 할 테니 하늘이 오면 말 좀 해달라고 하셨어. 그래서 늦으시냐고 여쭤보니 내일 저녁에나 오신다고 하늘이랑 밥 잘 챙겨 먹고 있으라고 하셨어.”

“…진작 말하지.”

하늘은 태석의 친구이자 순희의 오빠가 주말에 자주 호출을 해 술을 마시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지금 규현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성급했고, 규현은 오해하게 했으니 둘 모두의 잘못이지만 하늘은 자신이 조금 더 잘 못 한 것 같았다.

“세탁 끝났네.”

“아잉… 내가 잘못했어.”

“…왜 이러지?”

하늘은 세탁기 앞에 선 규현의 뒤로 가 허리를 끌어안았다. 규현이 차갑게 말하는 것이 무서워 하늘은 빨리 화가 풀어졌으면 했다. 하지만 규현이 가만히 있어 불안했다.

“윤하늘.”

“네에.”

“내가 너한테 안 좋은 일을 할 것 같아?”

“…아니요.”

“잘 아네. 다음에는 내 말부터 듣고.”

“네에.”

“그리고 너!”

“네.”

“…이런 거 자주 해주고.”

“네에… 뭐?”

하늘은 갑자기 장난기 가득한 규현의 목소리에 규현의 등에 기대고 있던 머리를 들었다. 순간 뒤돌아선 규현의 시선과 딱 마주쳤고 웃고 있는 규현의 얼굴을 보고 하늘은 안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