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선희를 끌고 나온 종남은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종남이 발이 이끄는 대로 선희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좀 전까지의 상황을 봐선 선희가 당장이라도 자신의 손을 뿌리칠 만도 했다. 그런데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따라왔다. 종남은 조금씩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했다.'종남은 어느새 발걸음을 맞추며 흘끗 선희 얼굴을 쳐다봤다. 예전보다 조금 마른 얼굴에 짧아진 머리로 드러난 그녀의 귀여운 얼굴선. 변함없이 쌍꺼풀 없는 큰 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깊어져 있었다. 앙증맞은 콧방울도, 자줏빛 입술도 변함이 없건만, 어느 때보다 선희의 마음을 알 수 없어 종남은 환장할 노릇이었다.'‘날은 왜 이렇게 좋은 거야? 선희는 흐린 날을 더 좋아하는데…….’'종남의 속은 점점 타들어가는 듯했다.''선희는 종남의 얼굴을 안 보는 척하며 그의 발에 보조를 맞춰 걷고 있었다. 종남은 유난히 걸음걸이가 빨랐다. 데이트할 때면 항상 자신은 생각 안 하고 빨리 걷는다고 거의 뛰다시피 하여 타박했었는데, 어느새 종남이 자신의 템포에 맞추어 조금씩 걸음을 늦추는 게 느껴졌다.'평소 걷던 속도에서 조금 속도를 냈을 뿐인데 종남과 발을 맞출 수가 있었다. 선희는 그 사소한 일에 기분이 날 듯 좋아지고 있었다. 고집불통 종남이 자신을 배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어느새 종남은 선희와 자주 데이트했던 모교 안, 작은 공터에 온 걸 깨달았다. 학생들이 없는 조용한 교정은 그들이 다니던 때보다 유난히 작아진 듯했다.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의 학교를 보며 종남은 학교 안, 나무 벤치가 줄 지어 있는 곳까지 걸어가기 시작했다.''종남은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나무 그늘 아래, 그나마 깨끗한 벤치를 찾아 선희부터 앉혔다. 선희는 언제나 성질부터 내던 종남이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자, 걱정이 일기 시작했다.'‘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런데? 아이고. 떨려! 사남 오빠가 볼 때보다 더 떨리네.’'종남은 자꾸만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선희를 보며 마음이 조급해지고 있었다.'‘선희가 정말 사남 형 좋다고 하면 어쩌지? 분명 사남 형도 선희한테 마음이 있는 게 분명해. 군대 갔다 와서 내가 선희랑 사귄다니까, 고시 핑계 대고 절로 들어간 것도 그렇고 분명 뭔가 있어……. 사남 형이 선희 좋아하는 거 아냐? 아, 진짜 미치겠네!’'불안한 마음에 종남과 선희가 서로에게 입을 못 열고 있는 사이, 카페 안에 있는 수완은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고 웃음이 자꾸 삐져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