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륭乾隆 41년(1776년), 청제국 계림桂林. '귀족의 행렬이 분명했다. 혹은 왕족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황족의 일원일지도. 아니다. 황족까지는 아니다. 행렬의 중앙에 자리한 가마는 호사스럽기는 해도 황실을 상징하는 노란 장막을 드리우지는 않은 상태가 아닌가.'그렇다면 대체 이 행렬의 주인공은 누구이기에 이렇게나 많은 호위무사가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것일까. 지금 행렬이 지나가고 있는 이 길은 특별히 비적 떼가 날뛰는 지역도 아니거니와, 돌산으로 에워싸인 주변 환경으로 사나운 육식동물이―이를테면 호랑이라든가―서식할 만한 요건도 전혀 갖추지 않은 곳이란 말이다. 이렇게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전혀 없는 길임에도 호위하는 인원이 일백을 훌쩍 넘는 연유를 잘 아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행렬의 선두에 선 조선국 왕자 명언군明彦君 이길李佶 대감이었다. '조선국 왕자 이길 대감은 유람을 좋아했다. 다녀 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이번에는 향항香港(홍콩)에 가려는 참이었다. 청제국의 광활한 대륙을 끝도 없이 남하해서 그는 마침내 향항에 거의 다다랐다. 그의 눈은 욕심이 지나치게 많은 편이었다. 그는 지난밤 묵은 객잔 주인이 끝끝내 말린 곳까지 가서 보고 싶은 것을 모두 볼 작정이었다. 언제 가도 호랑이에 물려 죽는 사람이 많은 곳이라며,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호랑이에게 사람이 물려 죽는 것이 그다지 드문 일도 아니지 않은가. 만약 호랑이에 물려 죽는다 해도 그것이 유람을 좋아하고 자연을 즐기는 이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일 작정이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호랑이를 직접 보기 전에는.'그가 절경을 구경하던 중에 처음 마주친 것은 새끼 호랑이였다. 새끼 호랑이라면 그에게도 승산이 있었다. 이길 대감은 준비해간 장검을 앞발을 든 새끼 호랑이의 심장에 단숨에 찔러 넣었다.'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내리꽂은 장검을 잡은 팔은 숨이 넘어가는 새끼 호랑이가 쏟아낸 붉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다.'“끼이잉!”'그 어린놈이 애처로운 소리를 내며 피를 철철 흘리는 모습이 이길 대감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동정 따위를 느끼기보다 목숨을 구했다는 안도감을 느낄 뿐이었다.'빠르게 밀려드는 안도감을 느낀 것도 잠시.'“크허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