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이아레나 술집 '''' 아르모니아 제국력 320년, 남서부 요정 자치 구역 페미나임. ' 포르테는 다른 요정들과 검문을 통과하여 북쪽 지대로 가고 있었다. 이는 200년 전에 파트리크라는 인간 장군이 10만에 달하는 군사를 이끌고 와서 정복한 뒤, 요정족의 대족장에게서 항복을 받아내고 참살한 이래 계속된 일이었다. 흑색 요정들은 달아나서 가끔씩 인간들에게 보복 살인을 감행한다는 풍문이 있었지만, 살아남은 백색 요정들은 감시를 받아왔다. ' 하지만 포르테가 보기에는, 인간의 감시라고 해봐야 자신들에게 무기가 보이는가를 보면 끝이었기 때문에 그저 귀찮은 일이었다. 수백 년 동안 낯설었던 곳을 알고 그곳을 지배한다는 충족감만을 원하는 거라면 그냥 내버려두어도 괜찮을 것이었다. 괴롭히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해도 상대에게는 자극이 못 되는 일, 그러면 애쓰는 쪽만 제풀에 떨어져 나갈 일이었다. 설령 그런 하루살이 눈들이 여러 개 된다 한 들, 요정은 요정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 포르테는 가끔 그런 생각을 했지만 친구 요정들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요정들은 술집에 모이기만 하면 고대어로 인간들에 대한 욕설을 시작했다. 어떤 목적으로 모이든 간에 대화는 항상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를테면 정복자의 이름인 파트리크는 요정족의 고대어로는 페트루키아였는데, ‘하루살이 얼간이’ 라는 뜻이었기에 농담의 필수 소재였다. 다른 예로, 인간과 결합한 첫 요정의 이름인 사크시아스는 요정족 언어로 사프러시, ‘부적절한 혼합’ 라는 뜻이었다. 백색 요정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나서, 요정인 아버지와 함께 페미나임에서 살았던 레네라는 여자는 200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바이욜-랑테, 즉 고대어로 ‘사혈(死血), 더러운 피’ 라 비하되었다. 더 나아가서는 요정을 유혹하는 인간도 이와 같이 비하되기도 했다. ' 요정들의 정기 회합에 참석하기 위해 계속 걸음을 재촉하는 포르테의 옆에서는, 친구 요정들이 길가 잔디밭에 떨어진 새똥을 가리키며 바이욜-랑테에 대한 험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인간 경비병들은 백색 요정들이 토끼처럼 기다란 귀까지 붉히고 허리를 흔들며 낄낄대는 모습이 이상한 듯 힐끔힐끔 보았지만,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뭐라 제지하지는 못했다. 다만 각자가 나름대로 기분 나쁜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긴 창을 쥔 손만 불끈할 뿐이었다. ' 어느덧 포르테 일행은 구불구불한 돌담길을 지나 버섯 지붕을 얹은 술집 ‘사이아-레나’ 에 도착했다. 사이아-레나는 ‘마법의 봉인’ 이라는 뜻이었지만, 그것은 인간들에 대한 증오가 가득해서 비꼬기를 잘했던 주인이 붙인 이름이었다. 대족장이 참수된 이후 제국에서는 페미나임 언어에 능통했던 엘리자베뜨 황녀를 보내 다스리게 하면서 대대적인 검열을 했기 때문에 본래의 의도를 숨기고 모호한 단어로 붙인 것이다. ' “어서 오게, 포르테군.”' 주인 요르바네가 담담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 “아저씨, 다들 왔나요? 저희가 너무 늦은 건 아니겠죠?”' “허허, 너무 여러 가지를 한 번에 묻진 말게나. 천 년 가까이 되는 기억이 뒤섞여서 그리 말하면 답 찾기가 상당히 힘들다네.”' “에이, 농담이 심하시네요. 그럼 첫 번째 질문요, 다들 어디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