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일 만에 정신을 차린 후 율의 혈색이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저녁부터는 묽은 밥물을 넘길 수 있게 되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율의 시중을 들며, 청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 년이나 떨어져 지내는 동안, 그는 자신의 얼굴을 잊었는가? 아니면 아직은 정신이 없고 기력이 떨어져서일까? 예전 같으며 차갑게 내치기만 했던 아내의 손길을 그저 받아들이는 율을 바라보며, 청은 가끔 불안하고도 복잡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하긴 그 전에도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으니, 얼굴을 잊었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어쩌면 흐르는 세월 동안 그녀의 존재를 잊는 것이 그에게는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조금은 서운하고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그러나 며칠이 흐른 후, 청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상황이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의의 진찰을 마친 율이 오랜만에 몸을 씻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을 수 있게 된 날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전쟁터를 헤매던 그답게 그의 몸은 단단한 근육으로 덮여 있었으나, 날카로운 칼 자욱이 여기저기 긴 흉터를 남겨 놓았다. 한참을 자기 몸에 난 자국들을 말없이 바라보던 율이 입을 열었다.'“나는…… 무사요?”'그의 식사를 점검하던 청의 손이 멈칫했다. 그녀는 황급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흐트러진 그의 얼굴, 날카롭고도 깊은 회색 눈, 굳게 다문 입술을.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하.”'그녀가 평온하게 물으려 애를 썼지만, 떨리는 음색을 감출 수는 없었다.'“나는……누구요?”'일순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충격이 방 안에 내려앉았다. 청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율을 쳐다보았다.'“저하, 기억이 나지 않으시는 겁니까?” '율은 눈을 감았다.'“무엇을 기억하실 수 있으십니까?” '침묵을 지키던 그의 입술이 무겁게 열렸다. '“어둠…….”'감았던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율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 속에 충격을 받은 청의 하얀 얼굴이 비쳐 있었다.'“오직 어둠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