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섬에 닿았다. '배를 몰고 온 남자가 먼저 내려서서 미요에게 손을 내밀었다. 갈색 털로 뒤덮인 남자의 팔과 손을 미요는 징그러운 벌레라도 보듯 눈살을 살짝 찌푸린 채 내려다보았다. 어깨를 으쓱하곤 남자가 손을 거두어갔다.'미요는 배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모래밭을 쓰다듬던 얕은 바닷물이 인사하듯 찰랑이며 미요의 발을 적셨다. 커다란 여행 가방 두 개를 모래사장에 내려놓고, 다시 보트에 오른 남자가 말했다.'“Have a good time!”'미요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남자가 클클 웃었다.'남자가 탄 작은 보트는 모터 소리를 요란히 터뜨리며 미요로부터 멀어져 갔다. 끈적하게 들러붙는 남자의 웃음소리를 털어내기라도 하듯 미요는 공연히 어깨를 툭툭 털었다.'한적하기 그지없는 섬이었다. 이름 모를 열대의 나무들이 쭉쭉 높이 뻗어 있고, 그 위엔 원색의 과일들이 탐스레 매달려 있었다. 깨끗한 모래밭 저 너머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군데군데 숨어 있는 방갈로가 보였다.'해가 질 무렵이라 그럴까. 예상했던 것보다는 덥지 않았다. 다만 고요했다.'눈앞에 펼쳐진 이국의 풍경, 그 속에 빽빽이 숨 쉬는 고요로 미요는 잠시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미요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빛이 새파랗다 못해 눈이 시릴 지경이었다. 고개를 젖힌 채 미요는 눈을 감았다. 은은히 어지러웠다. 술에 깊숙이 잠겨들기 직전의 몽롱함과도 비슷했다.'저벅저벅, 점점 가까워 오는 발자국 소리. 미요는 눈을 뜨고 얼굴을 내려뜨렸다.'섬의 고요한 풍경을 밟아 깨뜨리며 미요에게로 걸어오는 한 남자.'미요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남자를 바라보았다.'만지면 손에 물이 묻어날 것만 같은 진초록 티셔츠에 하얀 반바지, 그리고 검은 샌들.'미요는 남자의 느긋한 걸음걸이가 못마땅했다. 그러나 느른한 걸음걸이와는 달리 노골적으로 드러난 팔과 다리가 몹시 강건해 보였다. 열대의 섬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거칠게 잘 단련된 몸.'이윽고 남자가 미요 앞에 와 섰다. 남자의 우뚝한 키 때문에 미요의 턱이 자연히 치켜올려졌다. 미요는 눈앞의 남자를 쏘아보았다.'왼쪽 눈을 완전히 가리며 이마로 흘러내린 짙은 머리칼, 숱 많은 눈썹과 길쭉한 타원형의 눈, 차갑도록 매끈한 콧날, 굴곡이 뚜렷한 입술, 그리고 그런 것들을 다 포용하며 적당히 그을린 피부.'객관적으로 잘생긴 얼굴이었으나 허점이 없어 몹시 서늘한 표정이었다. 게다가 미리 나와 맞아주기는커녕 기다리고 서 있게 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온몸에 밴 저 오만함이라니.'지나칠 만큼 꼿꼿한 남자의 태도가 미요에게 불쾌감을 불러일으켰다. 머리칼로 가려지지 않은 오른쪽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미요는 다분히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