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작이다. '간만에 만난 해진이 왜 소개팅이야기를 꺼내지 않나 싶었다. 오늘 하루 종일 회사에서 까여서 쌓인 더러운 기분이 채 걷어지기도 전에 성미 급한 해진이 인희에게 본심을 드러낸 것이다. '무념무상의 표정으로 에이드를 들이켜던 인희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진다. 분명 해진도 이런 인희의 표정변화를 눈치 챘고, 인희의 기분이 나빠졌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진도 물러설 수 없었다. '해진은 반드시 1년 안에 인희의 애인을 만들어 주리라 결심했다. 이유야 간단했다. 벌써 5년 째 독수공방 중이신 여인희의 얼굴과 몸매가 너무나도 아깝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네가 왜 그 말을 안 하나 했다.” '“이번에는 진짜 괜찮은 사람이야. 너, 연애 못하는 이것도 병이다?” '“뭐?” '기가 차다는 듯 물고 있던 빨대를 놓아버리는 인희. 인희의 입 안에서 질겅질겅 씹혔던 것인지 빨간 줄무늬 빨대는 보기 흉하게 구겨져 있다. 큰 눈망울로 해진을 째려보는데 그것마저도 예쁜 인희다. '그래. 해진은 바로 그 점이 못마땅하다. 화를 내도 예쁜 얼굴에, 학벌도 좋고, 직장까지 있는 인희가 왜 연애를 안 하냐는 말이다. 해진은 인희의 입 밖으로 나온 빨대를 도로 인희의 입에 물려 놓고는 말을 이었다. '“철벽녀라고 아냐? 어? 네가 딱 그거야. 철벽녀.” '우물쭈물 그게 뭐냐고 묻는 인희를 보며 해진이 대뜸 머리를 쥐어박는다. 으이그, 이 못난 계집애. 얼굴만 예쁘면 뭐해. 이 바보 멍텅구리 같은 것을 어찌해야 좋을지 해진은 막막하다. '이마에 손을 갖다 댄 채 피곤한 표정을 짓는 해진을 보며 인희는 또 눈치를 보고 만다. 저라고 달달한 연애를 꿈꾸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알콩달콩 멋진 애인과 데이트 하는 상상, 로맨틱한 프러포즈를 받는 장면을 속으로는 수십 번 생각했다. 하지만 인희는 그 모든 로망을 현실이 아닌 글로 펼치고 있었다. '“로맨스 소설 작가라는 게 스스로 경험한 것도 없이 무슨 글을 쓰겠다는 거야? 막말로 네 글이 좋은 평을 못 받는 게 왜일 거라고 생각해?” '아픈 상처를 벌려 헤집고, 거기다가 소금까지 뿌리는 해진의 못된 행동에 인희가 으르렁거린다. 그렇지 않아도 인희에게 고민인 문제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 이야기하는 해진의 태도에 인희는 조금씩 화가 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