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자형의 너른 기와집이 하늘로 날아갈 듯 멋스러운 처마곡선을 자랑하며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한 아름이 넘는 소나무와 상수리나무가 푸른 잎사귀를 뽐내며 기와집 주변을 감싸 안았다. 그 규모로 보나 위엄 있는 자태로 보나 근심 하나 없을 듯 당당하게 서 있는 명실상부한 만석꾼 가옥이었다. 그러나 부와 권세를 모두 틀어 쥔 이종대의 으리으리한 사랑채는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이종대의 외아들 극(極)은 순수한 검은 눈망울을 크게 뜨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고운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어머니, 할아버님께서 많이 편찮으신가요?”'극의 어머니 신씨 부인이 근심을 털듯 고개를 흔들고 다정한 눈으로 아들 극을 내려다보았다.'“극아, 할아버님의 완쾌를 빌어주려무나.”'극은 지병으로 오랫동안 누워계신 할아버지가 안타까웠다. 그러나 지금 극의 작은 머릿속은 다른 생각에 빠져들고 있었다.'“어머니, 또 동녀를 데리고 오실 건가요? 그 전처럼 그렇게 불쌍한 모습이면 싫어요.”'대가 댁 양반의 양기를 보충하기 위해 데리고 오는 동녀는 치아(齒牙)가 모두 뽑혀야만 했다. 극은 그 잔인한 행위가 싫었다.'“할아버님을 위한 아버지의 도리이니 너는 이 일에 상관치 말거라.”'어머니의 눈초리가 엄해졌다. 극이 어른들이 하는 일에 상관하여 남편의 역정을 듣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극의 아버지인 이종대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세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토지조사 사업으로 재산을 불려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그 이면 사연에는 친일파라는 오명이 있었다.'이종대는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기민한 머리를 활용하여 가스라학원 중학부를 수학하고, 경시청에서 근무하며 조선에는 없는 경찰 제도와 군사 제도를 익혔다. 이후 일본에서 많은 관료를 사귄 그는 금의환향하여 러일 전쟁 시 통역관으로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여러 차례의 장관과 관찰사를 거쳐 도지사가 됨으로 명실상부한 상류계층이 되었다. 또한 토지 조사 사업으로 빼앗듯이 전답을 늘린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기민성과 영활함을 발휘해 현재 총독부 자문기관인 중추원, 찬의에 이르렀다. '“마님, 계집아이가 도착했는뎁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