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와, 차승준! 너 양복 입으니까 전혀 딴 사람 같다. 그래,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 이거지?” '“채영!” '승준의 맞은편 집에서 그의 이웃사촌이자 오랜 소꿉친구였던 채영이 도저히 여자가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몸을 건들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늘 그랬다. 흔히 사회에서 말하는 여성다움은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보이쉬한 성격, 태도……. '외모는 지극히 여성스럽지만 그와는 대조되는 그녀의 그런 모습 때문에 어쩌면 승준은 다른 그 어떤 동성친구보다도 그녀를 더 친밀하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이성을 넘어선 우정, 그것이 그 둘이 오랫동안 간직해 온 관계였다. '“아아, 넌 또 아주머니 가게로 서빙하러 나가는 거야? 야, 웬만하면 웨이트리스 집어 치우고, 식당 하나를 경영하는 게 어때? 넌 경영학의 천재였잖아 “ '“글쎄……밑천이 있어야지. 넌 좋겠다, 그런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봉급도 많을 거구, 그럼 이 지긋지긋한 달동네도 떠날 거 아냐.” '채영이 부러운 듯 그를 바라본다. '가난…….'그것은 그녀가 20여 년 동안 지겹게 겪어 온 것이었으므로…….'그것 때문에 그녀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었다. '그녀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대학교 졸업마저도……. '“아, 난 이쪽 길로 가야해. 나중에 보자.” '승준이 미소를 지으며 발길을 돌렸다. 채영은 그의 밝은 모습이 늘 보기 좋았다. ''오늘은 승준이 첫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승준, 그 역시 가난에 찌들어 많은 절망을 겪어왔지만, 그의 뛰어난 지혜와 집념으로 당당히 한신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한신그룹은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대기업이었는데, 그런 곳을 그가 당당히 출근하게 된 것이다. 그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잠깐만 기다려, 차승준 씨. 처음 출근했으니 이사님께 인사 드려야 하거든.” '“아……예.”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직장상사가 그를 이사장 실로 안내했다. '“저……이사장님, 새 직원이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들어와요.” '차가운 목소리가 사무실 안에서 들려왔다. 문이 열리자 승준은 이사장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순간, 그는 정신이 아찔하였다. 긴 머리를 늘어뜨린 이사장은 마치 아름다운 소녀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차가운 눈빛과 새하얀 얼굴, 더불어 새하얀 가는 손은 마치 얼음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조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그의 가는 목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붉은 입술도……. '“자네 인사해야지. 뭐하나? 이사장님이야.” '“아, 예.” '‘뭐야, 겨우 내 나이 정도로 밖에 안 보이는데…….’ '승준은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