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사방이 막혀 있는 방 안.

여자는 그 작은 공간에서 필사적으로 자신에게 달려들고 있는 악마 같은 남자를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고 있었다.

“오지 마. 제발……. 오지…… 마.”

애처롭게 떨리는 여자의 목소리에 남자의 입가엔 소름 끼치도록 더러운 미소가 지어졌고 여자의 얼굴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네년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어. 이곳에는 너와 나 뿐이거든.”

“가, 가까이 오면 죽여 버리고 말 거야.”

“그래? 어떻게 죽여 줄 건데? 아하, 내가 원하는 대로? 기대되는걸.”

발작하듯 머리를 쥐어뜯으며 도망치던 그녀는 악마 같은 그의 무지막지한 손에 잡혀 딱딱한 바닥으로 고꾸라졌지만 아픔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저 소름 끼치는 그의 웃음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죽음의 선율처럼 울려 퍼질 뿐이었다.

그녀는 바닥에 고꾸라져 있는 것도 모자라 자신을 누르고 있는 그의 몸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 팔을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히죽 웃고 있는 그는 여전히 그녀의 몸 위였다.

‘제발……. 누구라도 제발…….’

절망만이 가득한 곳에서 여자는 필사적으로 누군가에게 빌었다. 그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자신을 구해 달라며 발버둥 치던 그녀의 손에 작지만 뾰족한 물건이 잡혔다. 손가락으로 더듬어 보니 그건 바로 책상 위에 있던 작은 송곳이었다. 종이를 뚫기 위해 책상 위에 놓았던 그 작은 송곳이 마치 자신의 생명줄인 양 손에 꼭 쥐었다. 그러고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움직임을 멈추었다. 한참을 발버둥 치던 그녀가 움직임을 멈추자 그녀를 누르고 있던 그가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기회는 딱 한번. 정신을 차려야 해.’

이미 술이 먹어 버려서 마르다 못해 앙상하기까지 한 그의 몸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지만 살쾡이 같은 그의 눈빛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러곤 이미 죽어 있는 먹이에 침을 흘리며 다가오는 하이에나처럼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그녀의 옷도 하나둘 벗기기 시작했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하얗게 반짝이고 있는 그녀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녀는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 소름이 돋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기 위해 이를 악물어 가며 참고 있었다. 이윽고 탐스럽게 무르익은 그녀의 가슴을 희롱하던 그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얼굴을 들어 그녀의 입술에 그 더러운 입술을 가져왔다. 그의 더럽고 역겨운 입술과 깔끄러운 혀의 감촉을 느끼며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송곳을 꼭 쥐었다. 그리고 개처럼 헐떡거리고 있는 그의 목을 향해 사정없이 송곳을 내리꽂았다.

“헉!”

갑작스러운 그녀의 공격에 놀란 그가 목을 관통한 송곳을 움켜쥐고 벌떡 일어서며 그녀를 노려봤다. 목을 타고 뜨끈한 그의 피가 가슴을 적시자 그는 박혀 있던 송곳을 뽑아 집어 던졌다.

“이년이 죽으려고 환장했나. 감히…….”

하지만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찌른 송곳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동맥을 정확하게 찔렀고 동맥을 막아 주고 있던 송곳을 직접 뽑아 집어 던짐으로 모든 상황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가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죽일 듯 노려보며 한 발 내딛었지만 목에 박혀 있는 송곳을 빼자마자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고 그는 놀란 듯 목을 움켜쥐고 무슨 말인가 하려고 입을 뻥긋거렸지만 상황을 돌이키기엔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고목이 쓰러지듯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그를 보며 그녀는 피가 잔뜩 묻어 있는 몸에 벗겨져 있던 자신의 옷을 다시 챙겨 입고 거실로 나와 천천히 수화기를 들어 번호를 눌렀다.

“112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제가 사람을 죽였어요.”

“어디에 계시죠?”

“우리 집이에요.”

그녀는 통화를 끝내지도 못하고 들고 있던 수화기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회사에서 뒤 늦게 귀가하는 엄마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엄마.”

“아니 이게……. 도대체…….”

그녀의 손과 몸에 묻어 있는 핏자국과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핏자국을 따라 방으로 들어가던 엄마는 피를 흘리며 쓰려져 있는 그를 보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엄마.”

정신을 잃고 쓰러진 엄마를 부둥켜안고 그동안의 울분을 토해 내듯 꺽꺽 울고 있는 그 순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119 구급대원이 열려져 있는 문으로 함께 들어왔다.

“신고 받고 왔습니다.”

그녀는 신고를 받고 왔다며 피투성이인 자신을 놀랜 눈으로 바라보는 경찰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그저 쓰러져 있는 엄마만을 부둥켜안고 있을 뿐이었다.

‘엄마 이제 자유야. 이젠 마음 편히 엄마가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고 살아. 난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엄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