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흐린 날]''''‘촌스럽게 요즘 세상에 누가 그렇게 선을 본다니?’'선이란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조촐하게 식사를 하는 자리라 여겼던 유선에게, 어머니의 말은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이혼이라는 거사를 치렀다고는 하지만, 인회 이외의 다른 남자를 만나 본 적 없는 그녀였다. 혼자서 생면부지의 남자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떠밀리듯 집을 나와 잠실 근처에 있는 호텔 레스토랑으로 향한 유선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처음 뵙겠습니다. 홍대일이라고 합니다.”'두 번의 파혼 전력이 있다는 서른 두 살의 남자는 전해들은 것 이상으로 칼칼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어머니의 말대로라면 두 번 모두 여자 쪽의 결함이 있어 파혼을 했다지만, 막상 시니컬한 남자의 목소리를 듣자니, 과연 그 말이 사실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파혼을 했다지만 무엇 하나 버릴 데가 없는 사람이라더라. 학원 강사 일을 하는데 수입도 제법 되는 모양이야. 그 나이에 벌써 자기 이름으로 된 단독주택까지 사 뒀다네. 무엇보다 양친이 제대로 된 사람들이라니까, 허투루 보지 말고 눈여겨봐. 또 아누, 꼭꼭 숨겨 뒀던 네 짝일지.’'형식적인 통성명이 오가고 식탁 위에 식사가 세팅되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엔 조금은 어색한 대화가 오고 갔다.'“비서 일을 하신다고요?”'“네.”'“전공이 비서학이었나요?”'“네.”'“일은 할 만합니까?”'“네, 그런대로 할 만해요.”'뭘 알겠다는 건지는 모르지만 한 손엔 나이프, 다른 한 손엔 포크를 거머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전 전공이 영문학입니다.”'“아, 네.”'“개나 소나 다 문과를 지망하던 시절이라 졸업을 하고 나니 딱히 들어설 곳이 없더군요. 들으셨죠?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선.”'“네.”'눌변은 아니지만 상대로 하여금 궁색한 대답을 하게 만드는 남자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으로.'“유선 씨는 어떤 생각으로 선을 보러 나오셨나요?”'“네?”'뜻하지 않은 남자의 질문에 유선의 눈이 동그래졌다.'“듣자하니 아이가 있으시다던데…… 아, 오해는 마세요. 그런데 일일이 신경 쓸 만큼 잘난 사람은 아니니까요.”'“…….”'“결혼을 위해서인가요?”'“저 무슨 말씀이신지…….”'“선이라는 게 원래 그런 의미잖습니까. 결혼을 위해 누군가를 만나는 자리, 더러는 인연이 될 법한 사람이 있나 두리번거리는 자리이기도 하고. 아닌가요?”'“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딱히 뭐라 대답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정말이냐는 듯 남자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깍지 끼운 두 손으로 턱을 받친 남자가 유심히 유선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내 말문을 열었다.'“상(像)이 좋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