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군은 인적이 드믄 길을 골라 걸었다. 길이 점점 좁아지더니 마을에서 한참 벗어나 산을 빙 둘러난 오솔길에 들어섰다. 이제 꼭대기에 걸린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라 사실 겁도 났다. 고향 하남으로 갈까 하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아비는 아마 자신을 죽이려들던가 꽁꽁 묶어 다시 궁으로 보낼 분이셨다. ' 딱히 갈 곳도 가야 할 곳도 없는 소군이 느린 걸음으로 길을 걸을 때였다. 누군가의 시선과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는데 시선이 느껴지니 소름이 돋아 걸음을 빨리했다. 헌데, 느낌이 아니었다. 자신의 걸음을 누군가 따라오고 있었다. 길 가운데 우뚝 선 소군이 겁에 질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누군가 ‘홱’ 나무 뒤로 숨는 것이 보였다. 가만히 살펴보니 몸집이 매우 작았다. 소군이 다가가니 그 작은 물체가 얼굴을 배꼼 내밀었다. 더럽다 못해 구정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아주 어린 계집아이의 얼굴이었다.' “왜 따라 왔니?”' “…….”' “배가 고파 그러니? 나도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 “후……아이야. 정말 나도 단 한 닢도 없단다. 동냥을 하려거든 마을을 찾아가보렴.”' 이런 인적 드문 곳에 아이가 있는 것을 보면 산 어딘가 집이 있는 것 같았다.' 여자아이가 미적거리며 걸어 나오더니 소군의 앞까지 왔다. 아이의 행색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지저분했다. 옷이라 부를 수 없는 누더기는 빨아도 다시 입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이가 시커멓고 갈라진 손으로 소군의 소매를 잡았다. ' “동생이……아픈데, 엄마가 안 일어나요.”' “!”' 그게 무슨 소리인지 깨달은 소군은 아이가 안쓰러웠다.' “가보자꾸나.”' 소군이 살던 하남은 도성에서 한참 떨어진 변방중의 변방이었다. 그 중에서도 소군의 마을은 성 외곽의 작은 산골 촌락이었다. 한 해 농사가 잘 되어도 늘 배고픈 가난한 촌락에서 가뭄이라도 들면 죽어가는 이가 수두룩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한 명이라도 굶어죽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소군의 집이 아무리 가세가 기울어도 명망 있는 선비가문이 약재를 살 수 없을 만큼 가난해진 데는 그런 아비의 큰 손이 한몫했다. 어린 소군은 처음에는 배가 고파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배고픈 것을 조금만 참으면 다른 집 아이가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적게 먹고 아꼈다. 하지만 나라님도 구할 수 없다는 가난은 해마다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소군은 어미의 시체 옆에서 우는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아이를 따라 갔다.' 그러나 산 아래 지어진 집이라기보다 움막에 가까운 그곳에서는 집 안에 들어서기 전부터 심한 악취가 났다. 구역질을 참기 힘들 만큼 역한 냄새가 더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경고를 해왔다. 아이는 이 냄새가 익숙한지 소군을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소군이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는 순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으앙……엉엉……누나, 으앙.”' 아이는 오랫동안 울어서 목소리가 갈라졌다. 소군이 수건을 꺼내 코를 막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울고 있는 세 살 남짓 사내아이보다 더 먼저 눈에 들어온 어떤 것을 보고 그녀는 가까스로 비명을 참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눈동자가 있어야 할 커다랗고 시커먼 두 개의 구멍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시커멓게 썩어가는 시체는 문드러진 진물과 쏟아져 나온 오물들로 괴기스럽고 흉측했다. 아주 잠깐 눈에 담은 그것은 소군의 뇌리에 깊이 박혀 토악질을 참을 수 없었다. 어릴 때 보던 그런 시신이 아니었다. 죽은 이에게 말할 수 없이 미안했지만,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었다. 부들부들 떨며 괴로워하는 소군의 옆으로 여자아이가 다가왔다.' “아파요?”' “하아……하……읏……미……미안하구나. 내가 사람을 불러줄게. 조금만 기다리렴.”' 아이가 불안한 눈으로 또 소군의 옷소매를 잡았다. 안에서는 사내아이의 울음소리가 계속 들렸다. 소군은 도저히 저곳을 다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아이들을 놓고 마을로 다시 가자니 너무 오래 걸렸다. 그 사이에 변고가 생기면 그 죄책감을 어찌할까.' ‘도망치고 싶다.’' 마음속으로 저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린 소군은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이들을 보기 부끄러워졌다. 그러다 문득 깨우치는 바가 있었다.' ‘방기곡경(旁岐曲逕)!’' 바른 길을 좇지 않았더니 갈 길이 더욱 힘들어졌다.' 이 아이들을 외면하면 이제 또 무슨 어려움에서 도망쳐야 하는가……. ' “그래…… 일단 동생부터 보자꾸나.” '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소군의 발길이 쉬이 움직이지 않았다. 단단히 각오를 하고 어렵게 움막 안으로 들어간 소군은 역한 냄새에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고 아이의 몸을 시신을 볼 수 없는 방향으로 돌렸다. 눈에 시신이 들어오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 “어디가 아프니?”' “으엉……배……배 아파…….”' 가만 보니 아이의 옷에 배설물이 잔뜩 묻어있었다. ' “동생한테 뭘 먹였니?”' “밥…….”' “밥? 언제?”' “어제요. 이제 없어요.”' 시신이 이렇게 부패했는데 밥이 남아있을 리가 없다. ' “밥을 누가 해줬는데?”' “제가요.”' “불도 없이 어떻게?”' 아이의 말을 들어보니 생쌀을 물에 말아 먹인 모양이었다. 소군의 눈이 마당을 휘 저어갔다. 다행히 비단풀이 보였다. 소군은 부엌으로 들어가 물을 찾았지만 물도 썩어가고 있었다. ' 가까운 냇가에서 물을 떠와 불을 피우고 비단풀을 뽑아 씻었다. 계집아이는 혹여 소군이 가버릴까 불안한지 옆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소군은 풀을 달이는 동안 어린아이의 배를 어루만져주며 아이를 달랬다. 달인 약을 마시게 하자 아이는 좀 안심이 되는지 훌쩍거리다 잠이 들었다. ' 이제 냄새에도 좀 익숙해진 그녀는 눈을 딱 감고 시신을 치우기로 결심했다. 아이들도 자신도 이렇게 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어차피 나도 죽었으면 이렇게 되었을 몸.’' 얼마 전에 죽다 살았다 생각하니 용기가 났다.' 거적을 이불 삼아 누워 있는 시신을 그대로 말았다. 들 힘이 없어 거적을 질질 끌고 움막을 나갔다. ' 초여름에 들어서 해가 긴 것이 다행이었다. 멀리 가진 못하고 움막 옆에 땅을 팠다. 팔이 아프게 팠지만 그리 깊게 파진 못해 결국 그냥 묻어야 했다. 하루에 겪은 일 치고 너무 격하고 힘에 부쳤다. 그러나 땅을 파고 시신을 묻고 봉분을 다지는 동안 소군의 마음도 단단하게 다져졌다.'' 황제는 어제 길재가 가져온 양위장의 서찰을 받고 무척 기뻐했다. 태자비가 무사할 뿐 아니라 흉수까지 잡아 이제 삼일 거리에 있다니 기특하고 고마운 소식이었다. 태자비를 다시 볼 생각을 하니 어쩐지 시간이 빨리 가지 않는 듯하고 소식을 모를 때보다 더 초조했다. 어찌해야 하나 혼자 방정을 떨다 울금을 불러 태자비가 없더라도 늘 그곳을 깨끗이 하도록 당부까지 했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울금은 황제의 명에 괜히 화가 났다. ' ‘있을 때나 잘할 것이지.’' 그렇게 한창 기분이 좋았던 황제는 오늘 아침 보국대장군 강화찬이 전해준 소식에 또다시 근심이 깊어졌다. 무이 공주를 중심으로 황족들의 회동이 잦고 고위무관들이 공주 댁에 너무 자주 드나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황제 쪽에서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인데 도발하듯 대놓고 이러니 주저하고 있는 동안 제재를 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일만으로도 벅찬 것을 연월평이 가져온 문제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황제 광운이 선황의 적통 광율을 죽여 패륜을 일으키려하니 대신들이 나서서 구하라.’' 또 다른 괴문서를 본 황제는 그를 물린 후 서찰을 심하게 구겼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선황께서 귀비의 아들에게 정말 태자의 자리를 주려 했을까? 태후께서 근심하셨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애첩인 귀비의 힘이 강해지면 태자를 위협하는 적이 될 것을 근심하셨던 것이리라. 그러나 아무리 아들을 위한들 악행이고 범죄였다. 떳떳치 못한 행위가 결국 그 아들을 죄어오고 있는 것이다. ' “폐하. 간의대부 들었나이다.”' “들라.”' 그렇잖아도 부르려던 간의대부는 알아서 제때 들어왔지만 그도 별 뾰족한 수가 없는지 표정이 밝지 않았다.' “폐하…….” ' “연월평과 손을 잡자는 말은 하지 않길 바란다.”' 연월평과 손을 잡으면 이 판국을 덮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는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연월평은 그것을 이용해 황제를 얼마든지 이용하려 들것이고, 그와 손을 잡는다는 것은 태자비를 잃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저도 그것은 원치 않습니다.”' “다른 방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