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화창하고 좋은 날씨였다.
올리비아는 빙긋 웃으며 기사단의 건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부단장님.”
부하들에게 깍듯한 인사를 받은 올리비아는 전날의 근무기록일지를 보면서 질문했다.
“밤사이에 별일은 없었고?”
“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음, 그렇군.”
올리비아는 일지를 꼼꼼하게 확인한 뒤에야 건물 밖으로 나갔다.
황성 내부의 방어 마법을 점검하며 다니던 그녀는 주군이자 샤 제국의 황제인 샤 알 브레히트 칼하트를 발견했다.
칼하트는 복도에 서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폐하.”
먼 거리였음에도 목소리를 들은 칼하트는 올리비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근육질의 단단한 몸, 한데 묶어서 허리까지 내린 검은색의 결 좋은 머리카락, 신비로운 보랏빛 눈동자를 가진 칼하트는 대단한 미남이었다.
외모만 훌륭한 게 아니었다. 마검사로서도, 통치자로서도 완벽했다.
언제나 냉혹한 기운을 내뿜어 접근하기 어려운 게 옥에 티였으나 올리비아는 그저 주군을 경애했다.
“부단장.”
칼하트가 부르자 올리비아는 더 빠르게 다가가며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때였다.
굳건하게 서 있던 칼하트가 갑자기 심장 부근에 손을 올리더니 휘청거렸다.
“폐하!”
“정신 차리십시오!”
“당장 치료장님을 불러라!”
주변에 있던 이들이 전부 경악해서 칼하트를 조심스럽게 부축해 바닥에 앉혔다.
기겁한 올리비아는 황급히 달려가 물었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아아……. 괜찮다, 부단장.”
답하는 칼하트는 얼굴색이 대단히 창백했다.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올리비아는 걱정이 되어 칼하트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이 어깨에 닿는 순간, 칼하트가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다시금 심장 위의 옷을 움켜쥐었다.
“폐하!”
“어서 치료장님을!”
칼하트의 눈이 감기고 몸이 축 늘어지자 올리비아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은 더욱 경악했다.
칼하트가 황제의 침실로 옮겨지자마자 치료장이 서둘러 달려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치료장은 70대의 할머니인지라 행동이 느리지만, 사람의 병과 상처를 진단하고 치유하는 신성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먼저, 진단하겠습니다.”
치료장은 침대 앞으로 와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칼하트의 손을 잡고 황금색의 신성한 빛, 신성력을 뿜었다.
빛은 칼하트의 몸 전체를 부드럽게 감쌌다.
곧 치료장은 안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휴, 다행입니다. 이상은 감지되지 않습니다. 건강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올리비아도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쉴 때, 조용히 누워 있던 칼하트가 눈을 떴다.
칼하트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는 주변에 서 있는 올리비아와 다른 몇몇 이들을 보다가 치료장에게 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갑자기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기억 안 나십니까?”
“아, 갑자기 심장에 통증이 일어났었다.”
치료장은 다시 신성력으로 칼하트의 몸을 감쌌다.
“음, 심장에도 이상이 없습니다.”
“다행이로군. 그런데 왜 쓰러진 거지?”
“송구하오나 그건 저도 알 수 없습니다. 폐하, 쓰러지실 당시 상황이 어땠습니까? 특별한 점이 있었습니까?”
“평소와 다른 게 없다. 집무실로 가다가 기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막 부단장이 나타나서 인사하려고 할 때, 갑자기 심장에서 두 번이나 통증이 일더니 시야가 어두워지더군.”
치료장은 신성력으로 다시금 칼하트의 몸을 탐색했다.
“심장은 물론 몸 전체가 지극히 건강하십니다. 그런데 통증이 두 번이나……. 이상하군요.”
치료장은 칼하트의 친우이자 근위 기사단의 단장인 마르텐에게 물었다.
“단장님, 근래 폐하께 뭔가 다른 일이 있었습니까?”
마르텐은 신중하게 생각해보았다.
“아니요. 없었습니다. 평소처럼 황제로서 집무만 수행하셨습니다.”
“으음, 짐작이 가는 게 있는데……. 단장님, 폐하의 평소 집무 수행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수면시간은요?”
“집무 수행시간은 하루 스물네 시간 중 평균적으로 열다섯 시간 정도입니다. 수면시간은 하루에 길어야 다섯 시간이고요.”
“매일 한 시간씩 훈련을 하시니, 식사와 목욕 등을 나머지 세 시간 내에 하시는 거로군요. 휴식은 취하십니까?”
“휴식 같은 건 전혀 모르십니다.”
치료장은 결론을 내렸다.
“아무래도 지나친 집무 수행에 따른 피로 누적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칼하트가 입을 열었지만 곧 닫았다.
“폐하,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치료장의 질문에 칼하트는 올리비아를 슬쩍 쳐다보았다가 다시 치료장을 응시했다.
“아니다. 앞으로 일을 줄이겠다.”
“그 정도로 안 됩니다. 수면은 일곱 시간으로 늘리고, 휴식은 30분 이상 가지셔야 합니다.”
“그건.”
“제 말을 들으셔야 합니다.”
치료장의 권고에 칼하트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쉬십시오. 전 옆 대기실에 있을 테니 혹시 또 통증이 일어나면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치료장이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한 뒤 느릿하게 걸어나갔다.
“저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폐하.”
다른 사람들처럼 올리비아도 인사했다.
막 올리비아가 등을 돌렸을 때였다.
“잠깐, 부단장.”
“네.”
올리비아는 기다렸으나 칼하트는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볼 뿐이었다.
미리보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