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한 공기가 집 안을 침식해 들어왔다. 파도가 육지를 깎아내리는 것처럼 세경은 자신의 신경이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알았다. 얼굴에서, 그리고 이제 제법 부푼 배를 바라보는 시선은 거침이 없었다. 부러워하는 것인지 아니면…… 웃는 얼굴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질문을 던지는 것은 자신이 아닌, 운영이 먼저 해야 할 것 같아 기다리고 있었다.'“오빠하고 안 지 오래되었어요?”'10분이 지나서야 들려온 질문이었고 세경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안 것은 3년이 다 되었으니까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어떻게…….”'“클럽에서요.”'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보통의 사람들이 만난 것과는 달랐지만 그리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그렇군요. 결혼은 안 할 생각이세요?”'임신을 했으니 당연히 해야 한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세경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아이가 태어나면요.”'거짓말이었지만 그렇다고 그와 자신이 어떤 관계인지까지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눈이 가늘어지면서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운영의 시선에 담담하려 노력했다.'“오빠를 사랑해요?”'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게 되는 날이 오리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당황스러웠다. 대답을 못하자 운영의 눈빛이 날카롭게 반짝거렸다. 대답을 해줘야 하는데 정확히 답을 할 수 없었다.'“모르겠어요.”'말을 하고 나자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를 사랑하는 것도,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끌렸던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자신을 끌고 밖으로 나왔을 때 위험한 모험을 했던 것처럼 그는 자신에게 있어 끊임없이 도전해야 할 그런 존재인지도 몰랐다.'“사랑하지 않아요?”'“나도 내 마음을 몰라요. 그래서 뚜렷한 답변을 내릴 수 없어요.”'믿는 것처럼 보였지만 확신을 시켜 줄 순 없었다.'“영모 씨는요?”'질문을 제대로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흘렀다. 마치 새치기를 하는 것처럼 뛰어든 영모의 존재에 세경은 그녀의 질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요.”'“영모 씨 좋아하잖아요.”'“싫어할 이유가 없으니까요.”'세경은 운영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영모에 대한 자신의 감정은 순수했고 그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 왜 그런 질문을 하죠?”'“……그냥 궁금해서요. 두 분은 무척 친해 보이는 것 같아서요.”'“친구니까 당연한 것 아닐까요?”'자신의 답변에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혹시 운영이 잘못 알고 있나 싶었지만 자신과의 관계를 영모가 잘 말했을 거라 생각했다.'“잘하죠?”'“……네.”'자신이 없는 대답이었다. 영모가 사랑할 수 있는 여자는 운영 하나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학창 시절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그는 공공연하게 임자 있는 몸이라고 밝혔기에 그는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마음을 나눠 가질 수 없었다.'“영모 씨가 많이 걱정해요.”'“네?”'“언니를 많이 걱정한다고요.”'짜증난 듯하면서 날카로운 무언가가 잔뜩 섞여 있었다. 그게 무슨 대단한 것도 아니었기에 세경은 설명을 바라듯 운영을 보았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과 눈을 마주치기를 거부했다.'“설마…… 나하고 영모 사이를…….”'말하는 것 자체도 우스웠다. 웃으며 질문하는 자신을 보더니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당연하죠, 남편은 날 사랑해요.”'“알아요, 영모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기분 탓일까. 왠지 그 목소리가 이상하게 자신이 없게 느껴졌다. 대화가 끊어지고 세경은 말없이 앉아 있는 운영을 보며 갑자기 몹시 불편해졌다. 시선이 부딪치자 어렵게 말문을 여는 것처럼 그녀가 나직하게 물었다.'“언니가…… 안…….”'그러곤 말문을 끊었다.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가방을 챙겨 들었다.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급하게 집을 나섰고 혼자 남은 세경은 멍하지 않을 수 없었다.'운우와 운영, 두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평탄하기만 했던 인생이었다. 도대체 그녀의 질문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무엇을 묻고 싶어 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복잡하게 엉키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그때까지 세경은 자신이 어떤 식으로 이들과 엮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1장'2장'3장'4장'5장'6장'7장'8장'9장'10장'11장'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