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수를 섭외하라

“아 진짜, 도대체 모르겠네. 왜 다들 안 하겠다는 거야?”

경은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다 내며 자작을 하다가, 술이 다 떨어진 걸 알고 조용히 욕을 중얼거리며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함께 술 상대를 하고 있던 작가 몇 명이 한숨을 푹 쉬고 경의 새하얀 얼굴을 바라보았다. 경은 술을 마실 때 아무리 취해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욕설을 중얼거리기 시작한 걸 보니 진짜 취하긴 취한 듯했다. 어차피 내일 기억 못 할 것이 뻔하므로 작가 중 하나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걸 진짜로 모르시는 거예요?”

“어, 진짜 몰라!”

“경PD님 때문이잖아요. 그러니까 성질 좀 작작 부리시지.”

“야, 내가 성격이 좋지 않다는 건 인정하겠어. 근데 이 바닥에서 오래 구르면 구를수록 성질머리 나빠지는 건 당연한 거 아니니?”

“근데 경PD님은 좀 심하니까 그러죠. 예능국 사람들한테도 개차반이고, 연예인들한테도 함부로 대하잖아요.”

“연예인은 무슨 사람 아니니? 그럼 연예인들한테 내가 벌벌 기어야 돼? 어차피 다 같이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래도 제가 연예인이라면 말이에요.”

막내 작가가 소주를 한가득 경에게 따라주며 말했다.

“경PD님이랑 일 안 해요.”

“야!”

SBC 예능국의 젊은 여자PD, 제갈경은 할 말 다 하고 자기주장이 특히 셌기 때문에 그다지 인망이 있지는 못했다. 외자 이름이라 여기저기서 경PD로 통하는 그녀는 유들유들하게 사람들과 잘 지내는 예능PD들 중 유별날 정도로 성깔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술자리에서의 대화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굉장한 장점이 있었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술자리를 빙자해 온갖 불평불만을 털어내곤 했다. 경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막내 작가에게 손가락질을 했지만 막내 작가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을 이었다.

“뭐, 시청률이 그렇게 보증된 PD도 아니시고, 편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시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 상황이면 신인들로 채워야 될 것 같은데요.”

“다 신인들 데려다 쓰면 시청률 절대 안 나온다고. 신인들을 좀 끼운다고 해도 몇 명은 보증된 사람들이 있어야 할 것 아니야…… 근데 왜 그 몇 명이 안 나오는 거야? 왜 다 안 하겠대?”

“그 보증된 몇 명은 경PD님이랑 같이 일할 이유가 없다니까요!”

다른 작가 중 한 명이 술잔을 들었다. 경은 비틀거리며 막내 작가를 노려보다가 털썩 주저앉아 술잔을 비웠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것도 그렇고…….”

작가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경PD님은 적이 많잖아요. 입바른 말 하는 건 좋지만 그러다 보니까 경PD님 골탕 먹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요. 처신 좀 잘 하세요. 진짜로 나쁜 사람은 아닌데 왜 그렇게 사람들 등을 지고 다녀요? 저희야 AD시절부터 오랫동안 경PD님을 알아온 사람이니까 이번에 함께하기로 했지만, 다른 작가들한테 경PD님 기피 1순위예요. 어설픈 작가 경력으로 기분 나쁘게 한다고.”

경이 이번에 새롭게 기획하려고 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섭외가 좀처럼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막상 여기저기서 거절만 받다 보니 경은 속상해서 매일 술을 마시기 일쑤였다. 오랜만에 메인PD로 프로그램 하나 해 보려고 했더니 제작팀 꾸리는 것도 쉽지 않았고, 그 사이에 경에 대한 안 좋은 소식이 퍼졌는지 연락하는 연예인들마다 출연을 고사했다.

“야…… 그래도…….”

경이 코를 훌쩍이며 중얼거렸다.

“난 다 좋은 프로그램을 위해서 그런 거라고…….”

그녀의 술잔이 또 빠르게 비워졌다.

“시청률 보장은 아니지만, 사실 내가 해서 말아 먹은 프로그램은 없단 말이야…… 다 그냥 평균은 했어. 그 평균 하려고 몇 날 며칠 밤을 새는 줄 아니?”

그 말에 반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작가들은 서로를 바라보다 한숨을 푹 쉬었다.

“물론 알죠. 경PD님 열정이야 당연히 알죠. 프로그램도 다 뭐, 나쁘지는 않아요. 섭외가 안 되는 게, 프로그램이나 뭐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그 뭐냐, 경PD님에 대한 불매운동 비슷한 거라고요. 그러니까…… 경PD님 언행만 좀 조심하시면 안 될까요?”

“맞아요. 좀 더 부드럽게 말씀을 하시고, 신경질 좀 덜 내시고, 듣는 사람의 기분을 좀 생각해가면서…… 연예인들에게 섭외 고사하라고 다른 PD님들이 대놓고 말했대요. 지금 경PD님 국장님한테도 찍혀서 도움도 하나도 못 받고 있잖아요.”

경은 채워지는 족족 술잔을 비우며 푸념했다.

“야, 그게 되면 내가 이러고 있겠어?”

그녀는 짧은 커트 머리를 헤집으며 중얼거렸다.

“나도 이런 내가 마냥 좋은 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