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고양이가 생각에 잠기면

“나비야 우리 내가 다니는 하교 가볼래?”

“학교? 갑자기 뭐 하러 가냐?”

나비는 감자 칩을 먹으며 하루 종일 TV만 보는데도 살이 안찌는 거 보면 신기할 정도이다. 나비가 밖에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건 순전히 귀찮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 우리를 노리는 다른 적들이 나타날 지도 모르고, 괜히 자신 때문에 내가 피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미안함 때문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

“가끔 고양이들 산책도 하고 바깥바람도 쐬면서 기분전환도 하고 그러잖아?”

내가 억지로 나비의 팔을 잡아당기자, 녀석 싫지는 않은 듯 피식 웃고 있다. 여태까지 우리에게는 수없이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모처럼 서로에 대해 조금은 잘 알게 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면 좋을 것 같으니까.

밖으로 나가자 빗자루로 나뭇잎을 치우고는 있는 관리소장이 보였다.

“106호 학생이로군? 저 여자는 그때!!”

“윽, 아 그게 좀 일이 있어서요!! 다음에 뵐게요!!”

생각해보니 관리소장과 나비는 엄청난 원수와도 같은 사이인데, 쌈빡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관리소장 눈에 걸리지 않도록 나비를 잘 숨기던가 해야지, 방금 전 관리소장이 나비를 바라본 표정은 정말 무서웠다.

(나비)

인간은 학교에 다닌다고 한다. 학교를 통해 성숙한 사람으로의 인격을 갖추고 우수한 인재를 뽑아 또다시 대학이라는 커다란 기관으로 입문하게 된다는데, 어쩌면 인간보다 고양이가 이런 점에서는 더 자유로운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 같으면서도, 이렇게 학교라는 제도를 통해 사람들을 효율적이고 하나의 취향으로 통일하려 하니까. 적어도 고양이는 하늘을 날 수는 없어도 가고 싶은 곳 어디든지 아무 때나 갈 수 있으니 답답하지는 않다.

사람들은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을 보며 냉소와 조소를 내비추지만, 정말 우리 안에 갇힌 것은 우리가 아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본인들은 모르고 있으니 이보다 웃긴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여기가 네가 다니는 학교니?”

“응, 방학시즌이라 사람이 많이 없기는 하지만 축제 때는 엄청 인파가 붐벼! 다음에 또 같이 올래?”

“다음이라? 그래, 기회가 된다면…….”

이제 12지신의 재 선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말은 내가 사람의 모습으로 거리를 배회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 시율이에게 겉으로는 말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다. 시율이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나는 신의 자리를 노리는 독 오른 고양이일 뿐이니까.

너무나 과분한 대접을 받았고 즐거운 추억도 많이 만들었다. 비록 진정한 목적을 이루기전까지는 추억 따위를 회생할 시간은 없지만, 적어도 후회 같은 건 안 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 행복하다.

마음을 열어서도, 기뻐해서도 안 된다. 나에게는 엄청난 수의 고양이들이 나의 선전을 바라만 보며 오늘도 쓰레기봉투를 헤집고 있을 텐데, 이렇게 나 혼자서 어떻게 웃을 수 있단 말인가?

“나비야? 나비야!!”

“아 미안!”

“왜 이렇게 생각에 잠겨있는 거야?”

“미안, 뭐라고 그랬니?”

“여기가 내가 전공수업을 듣는 건물이야, 멋있지?”

지어진지 얼마 안 되는 건물이구나, 화창한 날씨에 시큼한 꽃향기가 코를 아련하게 만들었고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가 기분이 좋아졌다. 영원히 시율이와 이런 하늘 아래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고양이의 대표자로서의 자격상실이겠지?

야오옹~ 야오옹~

“고양이가 있네? 혹시 아는 친구니?”

“내 친구는 아닌데?”

정말 고양이잖아? 내 발을 툭툭 치는 걸로 보아 무슨 할 말이 있는 듯 했다. 내가 고양이를 안자, 녀석은 꼬리를 파닥거리며 몸부림을 치는 게 아닌가?

“잠깐 다녀올게.”

하는 수 없이 고양이를 놓아주자 녀석은 나보고 따라오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 번 고개를 흠칫거리고는 어디론가 달려갔다.

“나비야 금방 올 거지?”

“걱정 마, 금방 올게.”

내가 어린아이인가, 녀석 엄청 걱정하는 표정이네. 뭔가 심상치 않다는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리스크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낯선 캠퍼스를 고양이를 따라 한참 쫓아가다보니, 몸에서 땀이 나고 지쳐가기 시작했다. 시율이한테 금방 돌아온다고 이야기했는데…….

“어딜 그렇게 가는 거니, 야옹아!”

거의 다 왔다는 듯 녀석의 걸음걸이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