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귀소(歸巢)

1. 지나가는 비

수주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고 처음으로 그토록 많은 병사들을 보았다. 병사들은 밤낮으로 강을 수색하며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그리하여 닷새 만에 익사체 한 구를 건진 후에도 수색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비가 한차례 오고, 강물의 지류가 흘러드는 한 저수지에서 또 다른 익사체가 떠올랐다. 수색에서 누락된 장소였으나 익사체가 나왔다는 이야기에 병사들이 보러 왔다. 이번에야말로 찾던 사람일까, 온 강에 걸친 수색은 일시에 정지되고 저수지 주변으로 삼엄한 경계망이 펼쳐졌다.

그래도 기어코 근처의 언덕에라도 올라가 구경하는 마을 개구쟁이들은 꼭 있는 법이다.

아직 전날에 이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정오 나절에 귀인이 타는 호사스러운 수레와 그를 호종하는 몇 필의 말이 달려왔다. 수레에서 내린 귀인은 주변의 부축을 뿌리치고 달려가 익사체를 덮은 천을 들췄다. ‘너무너무 끔찍해서 도저히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고 개구쟁이들은 나중에 자랑스레 늘어놓았다.

그런 것을, 역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귀인이 끌어안고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목이 쉬도록 울다가 시신을 끌어안은 채로 혼절하여 쓰러진 것을 옆에서 떼어 놓는데 몇 사람이 들러붙어서도 한참 애를 먹었단다.

“그렇게 대단하신 분들도 슬플 일이 있나 보지.”

“아무리 대단해도 사람은 사람이잖아. 엄마랑 아빠가 죽으면 슬프긴 슬플 거야.”

“여자 옷을 입고 있었지? 그럼 엄마였을까?”

“엄마가 분명해. 안 그럼 그 흉한 걸 어떻게 얼싸안아?”

장난꾸러기들은 저수지 앞이 고요해진 후에도 한동안 언덕을 떠나지 못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도록 가는 곳마다 그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끔찍한 몰골의 익사체를 붙들고 운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아름다운 귀인. 대체 그이는 누구고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그렇게 말 좋아하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만한 이야깃거리가 되어 한동안 수주 거리에 회자되었다.

“오늘은 무어라도?”

문경의 물음에 추인은 시름에 겨운 얼굴로 고개만 저었다. 이를 앙다문 문경의 얼굴에 무섭게 핏대가 솟았다.

“미음이든 죽이든 준비해 보시오. 오늘은 내 기필코 저 입에 무어라도 밀어 넣고 말 테니.”

“너무…….”

“너무, 무어요?”

문경의 언성이 높아지매 추인의 전신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며칠 끼니를 소홀히 한 것이 그새 쇠약의 징후를 드러내어 문경이 발하는 강한 기운조차 감당키 어렵게 했다.

“너무 몰아세우진 마십시오, 가뜩이나 비감에 젖어 계신 분을.”

“글쎄 그 비감도 정도가 있지! 그래서 지금 침소에 계시오?”

“아까부터 뜰에 나와 계십니다.”

“그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잠깐, 뜰이라면 혹시 또?”

문경이 야단치듯 묻자 추인은 힘없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의 잘못이 아닌 줄 어찌 모를까마는 문경은 궁정장을 밀치듯 지나쳐 중문 안으로 발을 디뎠다. 씩씩거리며 성큼성큼 활보하니 장천궁 뜰이 다 비좁다. 그 기세는 비자나무 그늘에서 수구화를 넋을 놓고 보고 있는 혼을 보고 더욱 뻗쳐올랐다.

“신이 오늘 그 풀 쪼가리를 아예 없이해야겠습니다, 참으로!”

천천히 혼이 눈길을 들어 문경을 보고 엷게 미소했다. 바람에 먼지처럼 스러져 내려도 이상치 않을 공허한 미소. 사람이 아니라 혼의 형상을 한 허깨비가 서 있다고 해도 이보다는 더 생생하리라.

“웃자고 드리는 말씀 같은 게 아닙니다, 도끼고 뭐고 필요 없이 이 손으로 쭈욱 잡아당기면 뿌리까지 우수수 딸려 나오겠지요. 되나 안 되나 내기해 보시겠사옵니까?”

“……되겠지. 자네라면 여기 이 비자나무도 뽑을 수 있을 게야. 산인들 못 뽑을까.”

부드러운 목소리는 벌써 열흘 가까이 곡기를 멀리한 사람답지 않게 또렷했다. 다만 좀 느리긴 해도.

문경이 욱하여 남은 거리를 얼른 좁히고는 곰발 같은 손을 펼쳐 들었다.

“그럼 실제로 하옵니다? 지금 당장 이것을 뽑아서 아주 갖다 버리라고 하겠단 말이옵니다.”

“내 대답은 ‘아니 되네’일세.”

덤덤히 말하고 깜박 잊었다는 듯이 덧붙인다.

“내 눈이 미치지 않을 때에 할 거라면 한 가지 각오는 해두게. 내 아끼는 꽃을 지키지 못한 죄를 물어 궁정들을 뜰에 꿇리고 눈알을 뽑을 걸세. 눈뜬장님들이니 그런 건 달고 있어 뭐하겠나?”

혼이 싱긋 웃었다. 여전히 허깨비의 웃음이다. 그러나 요 며칠 익숙해진 허깨비가 아닌 보다 오래전의 허깨비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