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태동(胎動)

“어떤가, 문경. 보름쯤 잡고 다녀오는 건.”

활을 고쳐 쥐며 혼이 내뱉은 말에 문경은 길게 고민하지 않고 “예!” 하고 대답했다.

“기후만 순조롭다면 열흘도 문제없습니다. 하오나 이삼 일 더 말미를 주시면 그쪽 상황을 더 세세히 살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주 욕심을 내자면 스무 날은 주셨으면 하옵니다. 작더라도 성과라 할 만한 것을 내어보고 싶사옵니다.”

“……스무 날이라.”

혼은 나직이 중얼거리며 오래 겨누던 화살을 시위에서 떠나보냈다. 마지막에 흔들렸음인가 화살은 아슬아슬하게 과녁 속 호랑이의 귀에 가서 맞았다. 실수에 개의치 않고 그는 두 번째 화살을 시위에 재어 이번엔 지체 없이 살을 쏘았다. 기세 좋게 날아간 화살이 호랑이의 콧잔등을 꿰뚫는 것을 보며 문경이 그럼 그렇지 하듯이 씩 웃었다. 정작 혼은 변함없이 무덤덤한 얼굴로 세 번째 화살깃을 고르며 말했다.

“보름도 길다 여겼는데. 하기야 보름이나 스무 날이나 일단 떠나 버리면 큰 차이가 없을까. 자네 말대로 뭐가 좀 되는 꼴을 내 눈으로 확인하는 것도 옳다 싶군.”

“예, 꼭 못 믿어서가 아니라 제 눈으로 그 경과를 확인한다는 의미에서……. 방금 뭐라 하셨나이까, 폐하?”

맞장구치던 문경은 불현듯 석연치 않은 점을 깨닫고 황제를 돌아보았다. 혼이 유유히 쏜 세 번째 살이 과녁에 맞으며 “관중이오!” 하고 외치는 소리가 물결 되어 밀려왔다. 혼이 슥 턱짓하며 문경의 차례임을 알렸다. 문경은 활을 들긴 했지만 아직 듣지 못한 대답을 기다리느라 과녁을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리 첫 번째 살을 쏘았으나 일도 아니란 듯이 목표에 명중했다.

“폐하, 좀 전에 말씀하시길, ‘내 눈으로’라고…….”

“음, 그리 말했네만 그게 왜?”

꿈쩍 놀란 상태로 시위를 튕겼어도 관중.

“무엇을 확인하시겠다는 말씀이신지. 소신이 뭔가 놓친 대목이 있었나이까? 분명히 직전까지 소양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만, 설마 소양에 몸소 가시겠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은 아니실 테고.”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혼에게 어름대며 묻는 중에도 문경은 옆에서 궁정이 건네는 화살을 받아 활에 걸어 쏘았다. 빈말로도 집중하고는 전혀 먼 상황이었는데 과녁에 꽂힌 화살은 여지없는 관중이었다. 멀거니 과녁을 바라보며 혼이 복잡한 눈빛을 지었다.

“이래서야 단련의 의미가 없군. 사대를 다른 장소로 옮겨야 할 모양일세.”

“아무래도 너무 익숙해진 감이 좀 있지요.”

민숭민숭한 턱을 긁적이며 문경도 동의했다. 그러곤 다시 잔뜩 심각해진 얼굴로 혼에게 제 질문에 대한 시원한 답을 요청했다. 혼이 피식 웃었다.

“몇 번을 확인해야 성이 풀리겠나. 내가 다녀오겠다는 뜻일세. 그래서 자네에게 보름쯤 다녀와도 되겠느냐고 물은 게 아닌가.”

“그것이, 신은 제게 다녀올 수 있겠느냐고 물으신 줄로만 알았사옵니다. 아무렴 날도 더워지는 이때에 잠행을 나가신다손 그리 먼 곳이 가당키나 하겠나이까. 날수도 날수려니와 행선지도 영…….”

문경이 고집스레 반대 의견을 내세우기 전에 혼이 재빨리 몇 마디 암시를 주었다.

“비단 소양이 목표는 아닐세. 기왕이면 일석이조를 꾀하겠다는 것이지.”

“하오시면 또 무슨 연유가 있어?”

혼은 바로 대답하는 대신 잠시 목덜미를 쓰다듬고만 있었다. 내리깐 눈이 조금 빠르게 깜박이는 것을 바라보던 문경은 이윽고 무언가를 알아채고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황제가 곤혹스러워한다. 그런 것에 비해 얼굴이 묘하게 상기되어 있지만. 뭐지? 뭣 때문에 저러지? 하고 분주히 돌아가던 문경의 머릿속에서 순간 찰칵하며 자물쇠통 열리는 소리 같은 게 났다.

“그 일석이조 중 하나가 사 낭랑이옵니까?”

이거다 싶은 순간 바로 말로 꺼내 버리는 점에서 문경은 천생 무인이었다. 흘기듯 쳐다보는 혼의 눈길에 너무 직설적이었구나 하고 후회해 봤자 이미 쏟아 버린 물. 기왕지사 문경은 뻗대듯 뻔뻔하게 나갔다.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이십조여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옵니다. 날이 확 더워지기 전의 지금 같은 때가 도리어 음식으로 인한 해를 입기 쉬운 때임은 폐하께서도 주지하고 계실 테니 긴 말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하물며 여인이 낀 여행길이라니요.”

“음식이야 당연히 주의를 기울일 것이고. 여행길에 여인이 끼면 안 된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로군.”

“여인도 여인 나름이어야 말이지요.”

무뚝뚝한 문경의 말에 혼의 눈이 확연히 가늘어졌다. 문경은 문제의 여인이 또다시 일으킬지 모르는 분란을 우려하는 것이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군. 전과는 상황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