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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저 창공 너머 아득한 어딘가를……

그리고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을 때는 그 또한 지금의 자리가 아닌 다른 차원에 존재하고 있었다.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 소중하지만 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 머리카락 한 올,

작은 손톱 하나 마저도 사랑스러운 그런 사람이 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릿한 아픔을 주는 사람,

내 심장에 그 사람의 이름 석자가 새겨져 매순간 기억나는 사람,

나를 살아있게 하는 사람……아름다운 사람,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이……내게도 그리운 꽃이 있다.”

그의 짧은 말속에는 그녀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반드시 그녀에게 돌아가려는 그의 강한 의지가 숨어있었다.

‘전장의 늑대’ 최강욱 대위는 살아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본문 중에서-

“우리 뽀뽀 한번 하자.”
“뭐?”

준희는 갑자기 얼굴을 굳히는 그를 쳐다보며 왠지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 요거 봐라. 천하의 최강욱께서 지금 부끄럼 타는 거야?

“뽀뽀 한번 하자고. 서로 좋아하는데 어때? 그리고 우리 사이엔 너무 스킨십이 없어. 이러다간 우린 영원히 오누이처럼 그런 관계에서 끝날 거야. 뽀뽀 한번 해보고 너하고 나하고 전기가 짜르르 흐르면 우린 연인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거고 아니면 그냥 이대로 오누이처럼 사는 거야. 어때?”

준희는 자신이 있었다. 언젠가 오래 전 버스 안에서 둘이 딱 붙어있을 때 느꼈던 강욱의 체취와 그 때 느꼈던 심장의 두근거림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그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긴장감도 있었지만 애써 무시하며 살아왔었다. 지금 그와 뽀뽀라도 한다면 분명 그와 자신의 몸에 짜릿한 전기가 흐를 것이 분명했다. 전기뿐이랴, 너무나 강력한 전력이 흘러 뽀뽀하다 죽은 최초의 해군사관생도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것도 둘씩이나. 그리고 친구들이 말하던 그 발가락 저리는 감정도 느껴보고 싶었다. 20살이 넘은 지가 언젠데 이렇게 가다간 그녀는 강욱만 바라보다 키스 한번 못해보고 늙어 죽을 게 분명했다.

준희는 무릎걸음으로 그가 앉아 있는 앞으로 바싹 다가갔다. 그녀가 성큼 앞으로 당겨 앉았지만 강욱은 여전히 얼굴을 굳힌 채 미동도 없었다. 으, 심장 떨려.

“부끄러워? 좋아. 그러면 내가 할게. 넌 가만있어.”

그녀의 말에 강욱의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가며 미소 비슷한 것이 생기는 걸 보았다. 그 미소를 보자 준희는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물론 그녀도 떨렸지만 그녀가 하지 않으면 강욱은 시도조차 하지 않으니 그녀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준희는 석상처럼 굳은 채 아무 움직임도 없는 그의 얼굴로 입술을 가져갔다. 그의 입술 가까이 얼굴을 가져가는 순간 코끝에 은은하게 느껴지는 그의 체취가 벌써부터 그녀의 심장을 방망이질 치게 만들고 있었다. 준희는 갑자기 이 순간이 못 견딜 만큼 떨리기 시작했다. 분명 그의 얼굴로 입술을 가져갈 때만 해도 그녀는 웃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도 그녀도 몹시 굳은 채 장난처럼 시작된 이 순간이 어색한 침묵만이 흐르는 진지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관둬? 아, 이렇게까지 떨릴 줄 몰랐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이왕 시작한 거 입술이라도 부딪혀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준희는 더욱 입술을 가까이 가져가 그의 따뜻한 입술에 그녀의 입술을 겹쳤다. 겨우 입술과 입술이 닿을락 말락할 정도로 만난 입술이었지만 두 입술이 만나는 순간 준희의 심장에서 시작된 짜릿한 전류는 순식간에 그녀의 몸 구석구석으로 전달되었고 그녀는 마치 번개라도 맞은 듯 몽롱함에 빠졌다.

뜨거웠다. 마치 몸은 얼음바다 위에 떠있는데 입술만은 뜨거운 불꽃 속에 들어있는 듯 뜨거웠다. 준희는 이대로 더 있다간 입술에서 시작된 불길이 온몸으로 번질 것 같아 두려웠다. 겨우 찰나간의 입맞춤인데도 영원이라는 시간이 지난 듯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