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다…….’
필립은 향기의 주인이 그 여자라는 것을 즉각 알아차렸다. 그 여자의 체취, 짙은 체취.
‘나를 미치게 했던 여자의 냄새…….’
필립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향기가 실려 오는 방향으로 소리도 없이 걸음을 떼어 놓기 시작했다.
얼마만일까, 또다시 그때의 향기가 맡아졌다.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의 향기, 냄새, 체취.
코끝에 향기가 스치는 순간 마치 하등 동물의 돌기처럼 전신에 퍼져 있는 촉각이 일제히 곤두서며 한 세기가 지나는 동안 기다리고 고대했던 메시아를 맞이하는 듯 열광적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여자의 향기. 미칠 것 같은 암컷의 향기. 믿어지지 않게도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는 바로 그 향기!
필립은 흐드러지게 만개한 매실나무와 벚나무가 빽빽하게 자리한 넓은 정원을 가로질러 향기의 근원지를 따라갔다. 먹잇감을 발견한 승냥이의 그것처럼 소리도 없이 그림자마저도 숨긴 채 향기의 주인을 찾아 한 걸음씩 쫓아갔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향기는 더욱 짙어졌고, 향기가 짙어질수록 필립의 몸에서 뻗어 나온 보이지 않은 촉수들이 경련을 일으키듯 발광했다. 심장박동 또한 견딜 수 없을 지경으로 점점 더 격해졌다.
‘그럴 리가 없어. 그때의 향기가 여기에서, 내 정원에서 맡아질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었다. 석 달? 넉 달?
그 후로 두 번 다시는 찾아가지 않았던 가회동 한옥촌 ‘시루’라는 카페에서 맡았던 그 향기가 지금 필립의 정원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음에 심장은 터질 듯 격동하고 있었다.
“사랑이 아니다. 너의 사랑이 아니야! 너의 사랑은…… 때가 되면 찾아올 거야. 때가 되면…….”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사랑을 잃어서, 강제로 잃어버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필립에게 아버지는 얼음처럼 단호했었다.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도 잊고 짐승의 본성을 드러내며 덤벼들었을 만큼 이성을 잃은 필립에게 아버지는 다시 한 번 매몰차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단언했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말했던 때가 지금일까?
모르겠다. 지금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도 필립은 향기의 주인을 놓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확신하며 냄새를 쫓아 바람처럼 움직였다.
전시매장이 가까워질 때쯤 우뚝 멈춰선 필립은 재빨리 벚나무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드디어 찾아냈다. 향기의 근원, 향기의 주인, 미치게 하는 여자!
그녀였다, 그녀!
그녀는 맑은 오렌지색으로 염색하고 부드럽게 가공한 순면으로 만든 긴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 길이는 발끝까지 닿을 정도였고 그 위에 화이트 컬러의 얇은 긴팔 캐시미어 카디건을 걸쳐 입어 봄날만큼 산뜻하고, 무척 여성스러우면서도 멋스러웠다.
여자는 전시매장의 열린 뒷문으로 나와 세 개짜리 돌계단을 밟으며 정원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찰랑찰랑 새까만 긴 머리, 하얀 피부, 머리카락만큼이나 새까만 눈썹 아래에서 그늘을 드리운 긴 속눈썹. 투명하고 반짝이는 피부, 오뚝한 콧날과 도톰한 입술. 상냥한 듯하지만 순간 차가워 보이고, 차가운 듯하면서도 금방 다정해 보이는 인상. 긴 치맛자락을 살짝 올려 잡은 길고 가는 손가락.
먼발치였지만 필립은 여자의 생김새를 또렷하게 두 눈에 새겨 넣으며 그때 가회동에서 훔쳐보았던 그녀가 틀림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세 개의 계단을 모두 내려온 여자는 황홀하게 꽃을 피운 나무들을 올려다보며 아주 천천히 정원 한가운데를 향해 걸어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여자가 정원 가까이 다가올수록 여자의 향기는 점점 더 강해졌다.
매실꽃과 벚꽃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가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필립은 정신을 잃을 정도로 강한 꽃향기 사이에서도 여자의 향기를 정확하게 구분해 미친 듯이 삼키고 또 삼켰다.
‘저 여자, 갖고 싶다…….’
필립은 그제야 깨달았다. 여자의 향기에 가슴이 요동치는 이유를. 명치끝에서 격발해 치밀어 오르는 응감의 정체를.
그날, 가회동 한옥촌 골목에서부터 가슴을 술렁이게 만들고 급기야 카페 안에서는 여러 가지 색깔로 변화무쌍하게 뒤섞이고 치대져 순간순간 둔갑해 대던 온갖 감정들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성욕이었다!
지독하고 악랄한 성욕. 치명적일 만큼 파괴적인 성욕.
지금은 너무도 선명하게, 무섭도록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김랑
농염한 서른네 살. 두 아이의 엄마
죽을 때까지 남편에게 섹시한 여자로 남고 싶은
괴상한 아줌마.
현재 다음카페 수지똥누나의 발전소에서 연재 중
출간작
시크릿 다이어리
사랑한다면 그들처럼 전 2권
월든가 형제들의 사랑 1,2,3부
막을 수 없는 사랑
콜라 전 2권
클럽 맨해튼 전 2권
전자책
씩씩한 강이 전 3권
10월 둘째 주 수요일 새벽 2시
남자의 눈물
지상에서 가장 황홀한 키스
가슴 가득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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