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여경.
여류 소설가이자 방송 작가인 그녀.
남다른 출생과 가정환경 때문에 사랑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고집 세고 외로운 여자.
사랑하기 때문에 한 남자를 보내고 아파하는 그녀에게 또 다른 사람이 다가온다.
그녀는 오래된 상처를 극복하고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동우.
스물여덟 살의 늦깎이 연기자.
다정하고 따뜻하고 배려심 많은 그가 우연히 목격하게 된 두 남녀의 뜨겁고도 이상한 이별 장면.
뜻밖에 다시 만나게 된 여자에게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시선이 간다. 이런 마음이 사랑인 걸까?
그녀가 사랑을 거부한다면, 친구부터 시작해보자!

도연준.
스물일곱 살의 아역 출신 연기자.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대로 너를 놓아야 하다니……가슴이 너무 아파.
정말 다시 돌아올 순 없는 거야?



- 본문 중에서 -

원룸 형식의 오피스텔이라 여경의 동선이 소파에 앉아 있는 동우의 시선 안에 그대로 다 보였다.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오피스텔 내부는 깔끔하다는 인상 외에 단조로워 보일 만큼 꾸며진 것이 없었다. 여자가 사는 집이라기보다는 정리가 잘 되어 있는 하숙집 같은 느낌. 그 속에서 커피를 타느라 움직이는 여경의 모습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보였다.
“우리, 이제 사귀는 건가?”
건네주는 커피잔을 받으며 뜬금없이 묻는 동우의 말에 여경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건 무슨 썰렁한 농담?”
“아닌가? 그 친구한테 그랬잖아. 더 이상의 쓸데없는 걱정은 사양한다면서, 나한테 실례가 된다고…… 그거 그냥 한 말이었구나.”
“…….”
그녀가 연준에게 했던 말을 지적하면서도 비난의 느낌 없이 가볍게 말하면서 커피를 마시던 동우가 말투와 달리 짙게 가라앉은 눈을 들어 여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말을 내뱉었다.
“……사귈까, 우리?”
마주 바라보는 여경의 얼굴이 차츰 굳어졌다.

- 중 략 -

‘사귈까, 우리?’

작정하고 나온 말이 아니었음에도 그 말이 입 밖으로 내뱉어지는 순간, 자신이 내내 원했던 말이 그것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멋진 연인이 옆에 있다고 알고 있을 때에도 자꾸만 마음이 그녀에게로 흘러 당혹스러웠었다. 하물며 이젠 그녀가 혼자라는데 망설일 이유가 뭐가 있을까? 그녀에게로 달려가는 마음을 고민하며 접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쁘기까지 했다. 여자를 향한 이런 설렘은 정말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욕심이 나는 여자도 처음이었다.
그랬다. 남들과 친화력 있게 잘 지내는 편이긴 하였지만, 그건 그냥 주위에 적을 만들지 않고 둥글둥글 살고자 하는 자신의 그다지 모나지 않은 성격 때문이었지 누구에게나 맘을 열고 친절하게, 더구나 먼저 다가가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것도 여자에게. 우연한 만남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기긴 하였지만. 이미 다른 사람의 여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시선이 가고 관심이 가는 것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자신의 입에서 먼저 사귀자는 말이 나오다니,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벌게졌다. 갖춘 조건이 제법 훌륭한 까닭에 손 내밀기 전에 늘 넘쳐나는 것이 여자들이었다. 그것을 즐기긴 하였지만 그래도 함부로 놀아 본 적은 없었다. 남자라고 함부로 놀았다간 아버지나 형한테 불려가 죽지 않을 만큼 깨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집안 내력으로도 한 여자에게 집중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는 동우였다.
합의하에 입방아에 오르지 않을 만큼 가벼운 만남은 있었지만, 돌아서면 서로 쿨하게 잊을 만큼 무게감이 없었던 연애가 고작 두어 번. 아직 진지하게 만나고 싶을 만큼 그를 흔드는 여자를 만나본 경험은 전무였다.
이 여자, 은여경을 눈에 담기 전에는.
어느 틈에 눈길을 사로잡더니 맘까지 흔들어 놓는 여경 때문에 전에 없이 혼란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입에서 사귀자는 말이 나온 순간, 후회되기는커녕 여경의 입에서 나올 대답에 가슴 설레는 낯선 자신을 바라보며 그 순간이 참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카멜레온 같은 여자, 여경은 당황해서 굳은 얼굴로 동우를 한참 쳐다보았었다. 그녀의 눈길을 받아내며 긴장한 손끝이 떨리는 것을 주먹을 꼭 쥐며 이겨내었다. 그런데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나 뜻밖의 말이었다.

‘날, 사랑하지 않을 자신 있어?’

현대물 삼각관계 신파물 까칠남 순정남 다정남 소유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