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걱정 마세요! 심장이식센터, 꼭 따낼 테니까요!”
심장을 주무르는 신의 손, 한국대 수석졸업에 빛나는 흉부외과의 샛별 윤해준.
심장이식센터라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고 제일병원으로 부임했건만 마주한 현실은 소녀가장 타이틀뿐.
위로는 무기력한 식물 교수들과 아래로는 저만 바라보는 파릇파릇한 새싹들.
책임감 하나로 버티면서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그녀에게 날아든 또 하나의 비보!
“그 환자 도망쳤어요! 어, 어떡해요 교수님!”
사람 살리겠단 마음 하나로 수술을 진행했던 환자가 사라져버렸다!
병원비만 칠천팔백, 이래서는 심장이식센터는 물 건너갔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맹수에게 납작 고개를 조아렸다.
“돈 갚을게요. 어떻게든 갚을게요.”
“……무슨 수로?”
서문그룹 후계자이자 제일병원의 이사장, 서이한.
가진 것이라면 돈, 혹은 막대한 돈뿐인 그에게 아쉬운 것이라면 단 하나.
어머니의 성화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해줄 ‘없는 애인’뿐.
마침 제 앞에 굴러떨어진 뻔뻔한 초식동물의 목덜미를 덥석 물어버렸다.
“한 번에 천만 원 어떻습니까?”
“……이, 이사장님과 만나면요?”
“‘만나는 척’이겠죠.”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남의 심장 들여다보는 처지에 그런 부끄러운 짓은 못 한다 큰소리쳐야 하건만…….
그러기엔 딸린 식구가 너무 많다.
“……특별수당은 주는 거죠?”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했지만, 윤해준 사전에 대충은 없다.
최선을 다해 ‘완벽한 애인’이 되겠다는 그녀에게 분명 흐뭇해야 하는데…….
왜 갈수록 ‘가짜인 그녀’가 거슬리는 걸까.
“의사라면서. 남의 심장 그렇게 멋대로 쥐었다 폈다 하면 좋습니까?”
철두철미한 맹수와 더 철두철미한 초식동물의 계약연애.
우리, 끝까지 완벽할 수 있을까.
2. 작가 소개
최수현
필명은 연하늘빛.
다시 생각나고, 또 읽고 싶어지는
그런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m.blog.naver.com/sparklingcho
▣출간작
기다려줄래
그 여름, 나는(2016 리디북스 로맨스 대상 수상)
당신의 자리
취향의 문제
겨울, 또다시
기억하나요
그곳에, 네가
비 내리는 밤
베이비 키스
애인의 조건
현실의 그대
가을, 만나다
결혼할까요?
하트 크러시
라이언 하트
처음 같은 너
디어 레이디
나의 기쁜 숲
3. 차례
#6
#7
#8
#9
#10
#에필로그
4. 미리 보기
“으응.”
양쪽 어깨를 들어올린 해준이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흔들었다. 뒤통수에 닿은 있는 푹신함이 낯설면서도, 너무나도 포근해 머리를 떼어내고 싶지가 않았다.
마치 어젯밤의 꿈처럼.
“…….”
흠칫, 돌연 해준의 눈꺼풀이 티 나게 꿈틀거렸다. 꿈이 좋으면 좋을수록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이 길고 어색할 뿐이다. 그제야 이곳이 어디인지 확실히 깨달은 해준이 비명이 새어나오는 입술을 억지로 다물었다.
“일어나십시오. 어차피 일어난 김에.”
“아…… 진짜.”
웃음을 참는 듯한 그의 음성에 해준은 어쩔 수 없이 눈을 떴다. 살아오며 온갖 상황을 다 겪어봤다지만 이런 순간에 아무렇지 않은 척 웃는 법은 모르겠다. 몸을 일으켜보려던 그녀가 제 목 끝까지 꼭 덮여 있는 그의 코트를 보고 놀라 황급히 이한을 바라보았다.
“이, 이거 이한 씨 코트잖아요.”
“드디어 얼굴 한번 보는군요.”
“…….”
“왜. 내 코트는 알아보면서 나는 못 알아보겠습니까?”
뼈가 있는 그의 느긋한 웃음이 운전석에 기대어 있는 자세만큼이나 삐딱했다. 하지만 해준이 급작스레 풀이 죽어버리자 이한은 곧장 시트를 세워주었다. 불쑥 그의 팔이 제 몸을 가로지른 순간, 저도 모르게 움츠리던 그녀는 뒤늦게 억울한 듯 입을 떼어냈다.
“자, 잠시만 눈 붙이다 올라갈 거라고 말씀드렸는데 이러면 어떡해요. 사람들 다니는 덴데.”
“이제 우리 그런 거 걱정하기엔 좀 늦지 않았습니까?”
“…….”
그럼에도 사람 하나 없는 이곳을 굳이 설명할 마음이 없는 이한이 그녀를 뜯어보듯 내려다보았다. 어디 어쩌나 보자. 아침에 더욱 말갛기만 한 해준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자 해준이 따끔한 시선을 피하듯 뺨을 문질렀다.
“……그래도 어제 약속했잖아요. 삼십 분만 있다가 깨워주신다고.”
“룰을 어긴 건 해준 씨가 먼저지 않습니까.”
“룰이라니요? 제가 언제.”
“바쁜 척 사람 피할 요량이라면 자기 몸 관리부터 제대로 했어야지. 제대로 먹고 잠이라도 잤다면 나도 가능한 한 그 장단에 맞춰줬을 텐데.”
“…….”
물론 나 없이 제대로 먹고 잤다면 그건 그거대로 열 받겠지만.
핸들에 걸친 그의 손가락이 책상을 두드리듯 툭툭, 소리를 냈다. 꼭 사람을 속속들이 가늠하는 듯한 이한의 집요한 눈빛에 그녀의 가슴이 눈에 띄게 오르내렸다.
“저 바쁜 척한 거 아니에요. 진짜 바빴어요.”
“아아. 그래서 그렇게 옷 하나 제대로 못 걸치고 여기까지 내려온 겁니까? 너무 바빠서? 아니면 내가 너무…….”
“정말 왜 그러세요!”
와락, 그녀가 이한을 향해 숨을 터트렸다. 제가 그를 피해 다녔다는 것을 알아챈 것만으로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데, 저를 몰아치는 이한이 얄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제가 괜히 그런 줄 아세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면서.”
“내가 뭘 모르는데?”
“…….”
거기다 조금 얄밉다 싶으면, 기다렸다는 듯 이를 드러낸다. 어느새 제 목덜미에 닿아 있는 듯한 이한의 뜨거운 숨결에 해준의 울컥하던 숨이 저절로 멎어버렸다.
“왜. 묻잖아.”
“……이한 씨.”
“다른 거 다 안 묻고 지금까지 잘 참았습니다. 멀쩡히 사람 봤는데도 뒤돌아 가버려도 그러려니 했고, 뻔히 열려 있는 엘리베이터 못 본 척 돌아서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윤해준 당신은 의사고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어딜 둘러봐도 환자 하나 안 보이는데, 내 눈에만 그런 겁니까?”
대체 내가 어디까지 양보를 해야겠냐며, 불 꺼진 주차장을 훑는 이한이 으르렁거렸다.
“뭐든 말해보란 말입니다.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
“……혹시 오늘이 우리가 몇 번째 만나는 건지 아세요?”
“…….”
“이렇게 둘이서 만나는 거 말이에요.”
해준은 귀 끝까지 달아올라 입을 뗐다. 풍성한 갈색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서야 저도 모르게 거칠어졌던 이한도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이건 또 무슨. 느닷없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도 울적함 가득한 그녀의 눈가에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다 세어봤는데,”
“설마, 도장 찍어달라고?”
“아니에요!”
“그러게. 그건 안 된다고 말했을 텐데. 서로가 좋아서 만나는 건 제외라고.”
“…….”
꿈 깨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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