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라가 신조인 남자 강준휘.
나의 귀여운 병아리 경차가 이 남자의 차를 들이박는 순간 운명은 시작되었다.
crash? no! having a crush.
보험 사기꾼인줄 알았더니 그가 우리 문화센터의 새로운 센터장일 줄이야.
문화센터 아주머니들에게 재즈댄스를 가르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하루살이 같은 나에게
이 남자와의 인연은 악몽 그 자체.
제발 내일은 무사히!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그렇게 기도한다.
이 까칠 대마왕을 어떻게 길들여야 할까. 누가 좀 가르쳐 줘요! 연애 쌩 초보 은설하의
왕자님 길들이기 대작전!




- 본문 중에서

“나한테도 한잔 따라주지.”
‘뭐야. 내가 술집 작부야? 왜 자꾸 나한테 술을 따라라 마라야?’
설하가 고개를 휙 돌려 소리 나는 쪽을 보았다. 검은 슈트를 입고 팔짱을 낀 채 앉아있는 남자의 얼굴에 알 수없는 노기가 서려있었다. 저 남자……. 저 남자……. 목소리를 들으니 기억이 났다. 벤츠! 낮에 설하가 일으킨 접촉사고의 그 싸가지! 역시 싸가지 없는 놈 노는 것도 이따위구나.
“너 나 알지?”
“모르겠는데요!”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아까 네가 내 차 박았잖아.”
순간 룸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 사람들의 시선이 준휘와 설하, 두 사람에게 쏠렸다.
“헉, 뭐야 아까 그 추리닝이야? 그런데 왜 이렇게 달라졌어?”
옆에 있던 경준이 눈을 가늘게 뜨고 설하의 위아래를 살피기 시작했다. 슬리퍼에 구질구질한 추리닝 차림이었는데 몇 시간도 안 돼 미니 원피스에 퍼를 입고 화장까지 했으니 몰라 볼 만도 했다. 잠시 설하와 준휘의 눈이 허공에서 맞부딪히며 불꽃을 튀겼다.
준휘는 빈 잔을 설하의 코앞으로 들이밀었고 그녀가 술을 따라줄 때까지 버틸 기세였다. 술병을 잡은 설하의 손이 덜덜 떨려왔다. 이 술병을 저 놈 얼굴에 패대기를 쳐? 말어? 죽느냐 사느냐 햄릿도 아니고. 쳐! 말어! 두 가지 고민에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저려왔다. 결국 늘 그렇듯 약한 자는 그녀였다. 돈 없고 빽 없어 남한테 잘 보여야 하는 건 늘 자신이어서 설하는 입술을 깨물며 얌전히 술을 따랐다.
‘어쩜 나는 이렇게 강단이 없는지……. 어쩜 이렇게 비굴한지…….’
속으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설하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차사고만 아니었어도 아니, 지현이의 방송입문만 아니었어도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텐데……. 술을 받아 든 준휘의 얼굴에 무슨 의미인지 모를 조소가 깃들었다.
“너 이렇게 노는 애구나?”
남자의 한마디에 설하의 눈에 백만 볼트의 전류가 스파크를 일으켰다.
“뭐?”
“이런데 연예인 따라다니면서 술 따라주고 몸도 주고 그런 애!”
설하는 부들부들 몸을 떨더니 옆에 있던 맥주잔의 맥주를 남자의 얼굴에 확 쏟아 부었다.
“그래, 나 이렇게 논다 왜? 쓰레기처럼 노는 건 너네도 마찬가지잖아. 돈 좀 있다고 사람이 우습니? 부모덕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이…이… 개뼈다귀 같은 쉐끼들아!”
설하는 태어나서 이렇게 거친 말을 해보긴 처음이었다. 배설의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저 하찮은 아메바에게도……. 지금껏 욕이란 건 입 건 아줌마나 날라리들만 하는 건 줄 알았다. 금기를 깨뜨린 쾌감은 사지를 덜덜 떨리게 만들고 어떤 마사지나 사우나보다 시원했다.
“나가자 지현아.”
설하는 벙 쪄있는 남자들을 헤치고 지현의 손을 잡았다. 지현은 끌려나오면서 여차하면 집어던지려 했던 녹차 캔을 한승민에게 냅다 집어던지고 따라 나왔다. 소심하기로 치자면 따라올 사람이 없는 둘은 클럽을 도망치듯 나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혹시 둘을 잡겠다고 노발대발한 놈들이 쫓아오면 큰일이라 태어나 100여 미터를 이렇게 전속력으로 뛰어본 것도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