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브래들리 - 기다리겠다고 했다. 돌아오라 했지,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다른 안식처를 찾으라 한 적은 없단 말이다. 내가 찾아가게 만들지 마라, 재희야. 내 발로 너를 찾아가면 너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제발 네가 먼저 돌아와. 사랑해 달라 조르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돌아만 와.

이재희 - 나를 잊고 너만의 삶을 살아, 너를 그리워하는 건 나 하나로 족하니까. 너에게 한번이라도 사랑한다 말했다면 좋았을 것을. 이 마음 한번이라도 전했다면 좋았을 것을.

<본문 중에서>
재희의 따끔한 말에 자리에 앉은 제이슨은 그녀가 그렇게 하고 싶었다는 지하철 데이트니 만큼 자신도 즐겨보려 노력했지만 도대체 뭐가 좋다는 건지를 알 수가 없었다. 분위기를 잡을 수도 없고, 그녀를 쳐다보는 남자들의 시선도 짜증나고. 도대체 언제까지 이 지하철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건가 고민하고 있는데 그녀의 몸이 휘청댔다. 초저녁부터 술에 취한 인간이 흔들거리며 걷다 그녀에게 부딪힌 것이다.
“그러게 내가 앉으라니까!”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며 제이슨이 화를 냈지만, 재희는 별일도 아닌 일에 과민반응이라는 듯 오히려 큰소리였다.
“그냥 조금 부딪힌 거야.”
더 이상 앉으라고 해봤자 말 안들을 그녀라는 것을 알기에 그는 홱 주위를 둘러보더니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그분을 부축해 자리에 앉혀 드리고, 그녀를 문 쪽으로 데리고 갔다. 자신의 몸으로 보호하듯 재희의 몸을 안은 제이슨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투덜댔다.
“다시는 안 타. 그러니 오늘 원 없이 즐겨둬.”
분명 맘에 안 드는 것투성이일 텐데, 당장 내리자며 화낼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있던 재희는 그래도 끝까지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려 노력하는 제이슨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비록 입을 불퉁하게 내밀고 불만이라는 표시를 끊임없이 내고 있긴 했지만. 그녀는 그와의 사이에 끼어 있던 손 하나를 끄집어내어 그의 어깨 위에 올려놓고 발끝을 들었다.
“고마워, 상이야.”
꿈처럼 살포시 닿았다가 떨어지는 입술의 감촉에 눈만 깜박거리고 있던 제이슨은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고개를 수그려 그녀의 이마에 이마를 댄 채로 속삭였다.
“부모님이 뽀뽀했다고 그러시든, 키스가 아니고?”
“그런 것까지 말하는 부모가 어디 있어? 그냥 첫 키스랬어.”
재희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제이슨을 조금 밀어내려 하자 그녀를 더욱 당기며 웃고 있던 그의 입술이 다가와 그녀의 입술로 내려앉았다. 그 따뜻한 감각에 그녀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보고 있는지 확인할 정신 같은 건 있지 않았다. 눈이 저절로 감기고 입술로만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다. 혀도 들이밀지 않고 입술만으로도 그는 그녀의 정신을 쏙 빼놓고 있었다.
“이 정도는 하셨을 거야.”
이제야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는 몇몇 사람들의 시선을 확인한 재희가 제이슨을 흘겨봤지만 그는 아랑곳없이 그녀의 귓가로 얼굴을 숙였다.
“아님 세월도 지났겠다. 우린 우리만의 역사를 따로 쓸까, 진하게.”
마지막 단어를 발음하는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일을 낼 것 같은 분위기였다. 듣고 있는 자신의 등줄기로 전율이 일 정도로. 그녀가 불안한 몸짓으로 그를 밀어내려 하자 그는 귀에서 입술을 떼고 그녀를 꼭 안은 채 미소 지었다.
“걱정 마, 농담이야. 사람들 앞에서 그런 거 보여주고 싶은 생각 없어. 나만 봐야 돼. 네 그런 모습은.”
재희는 그의 눈빛 속에 갇혀 한 가지 생각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사랑해, 제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