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을 바라보고 너만을 사랑했다.
처음부터 내 사랑은 오직 차혜서, 너 하나였다.
그럼에도 네게 상처주고 더 아파하는 나.
뒤늦게 후회하는 나를 용서할 순 없겠니?
언제나 곁에 있었지만 마주 닿은 적은 없었던 사랑.
내내 곁에서 바라봐 온 단 한 명의 남자, 류준혁.
사랑받으면서도 외로워야만 했던 나.
시간이 흐른다면 과연 너를 용서할 수 있을까?
엇갈리고 뒤틀린 너와 나의 인연
그래도 끝내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사랑하는 마음이겠지.
<본문 중에서>
와락, 혜서가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쿵쿵 뛰는 그의 가슴에 폭 잠기듯 머리를 기댄 그녀. 준혁은 멀뚱히 선 채 힘껏 주먹 쥔 양손을 제 허벅지 옆에 꽉 붙였다.
골목길을 훑으며 불어 대던 차가운 바람이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해진 거리. 혜서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있는 그의 가슴으로 좀 더 강하게 기대어 왔다. 덕분에 당황스러울 정도로 두 몸이 깊게 밀착되었다. 겨울에 어울리지 않게 그녀에게선 은은한 봄꽃 향기가 풍겼다. 폐 깊숙하게 파고드는 그녀의 내음. 청아하면서도 성숙한 여자의 향기. 애써 다잡은 마음은 흐트러지고 정신은 몽롱해졌다.
“차혜서…… 나, 남자다.”
“…….”
“곧 입대를 앞두고 있어.”
“…….”
“게다가 지금, 취한 상태야.”
“…….”
“바보야, 무슨 소린지 몰라? 지금 너, 이거 아주 위험한 행동이란 소리야.”
준혁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하지만 그의 경고에도 혜서는 꼼짝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의 허리를 감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녀의 향기가 좀 더 짙어졌다. 혈액을 타고 흐르던 알코올 기운이 온몸을 사납게 휘감았다. 덕분에 아무렇지 않은 척 버티기 힘들 만큼 어지러웠다.
아…… 이래서 술을 마시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준혁은 불현듯 몸을 틀어 혜서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그녀를 대문 쪽으로 밀어붙였다.
“윽!”
혜서는 작은 비명을 질렀다. 꽝꽝 얼어붙은 철제 대문의 한기가 두툼한 옷감을 뚫고 후끈하게 데워진 등에 닿았다. 촉촉하게 젖은 그녀의 눈이 갑작스런 준혁의 행동에 놀라 커다래졌다. 코끝이 닿을 만큼 가깝게 얼굴을 들이민 눈동자가 그의 말처럼 위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위험한 눈길이 그녀의 코 아래, 입술로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로 그의 얼굴이 조금 더 다가오자 혜서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뱉어 내는 거친 숨결이 하얗게 부서져 얼굴 위로 흩어졌다. 그래도 그녀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리지 않고 버텼다. 도톰하고 붉은 그녀의 입술이 긴장으로 움찔거렸다.
차혜서…….
꼭 감겨 있는 긴 속눈썹. 그리고 그녀의 붉은 입술. 입……술…….
다시 한 번 훔치고 싶을 만큼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그에겐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핵폭탄 급의 유혹. 하지만 준혁은 입을 맞추는 대신 살짝 고개를 틀어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 집은 비어 있고, 난 지금 저 안으로 널 끌고 들어갈 수도 있어.”
그러니까 도망가! 당장!
악다문 입술 사이로 음산하게 흘러나오는 그의 음성에 꼭 감겨 있던 혜서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천천히 두 눈을 뜬 채 자신을 노려보는 새까만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그녀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말을 뱉었다.
“끌고 들어갈 필요 없어. 내가, 기꺼이 따라 들어갈 테니까.”
혜서의 도발적인 말에 그녀의 어깨를 움켜쥔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이 바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녀는 어깨가 아픈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찌를 듯 강렬한 그의 눈빛을 피하거나 밀어내지 않았다.
“……너, 그게 무슨 뜻인 줄 알고 하는 말이야?”
“…….”
“어렸을 때처럼 둘이 앉아서 소꿉놀이를 하자는 얘기가 아니야!”
“알아.”
단호한 그녀의 대답에 충격을 받은 준혁이 딱딱하게 얼굴을 굳힌 채 입을 다물었다.
“그래, 알아. 안다구! 너, 남자야! 입대를 앞두고 있지! 취하기도 했어! 지금 네가 원하는 것이 소꿉놀이가 아니라는 것도 알아! 그리고 그걸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난!”
혜서의 까만 눈망울이 흔들림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입술이 열렸다.
“……널 원해.”
혜서는 더 이상 말을 계속할 수 없었다. 준혁의 거친 손길이 그녀를 어두컴컴한 대문 안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뿐하게 끌려 들어온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아 품에 가뒀다. 그리고 탈 것처럼 뜨거운 입술을 겹쳤다. 뺏기고 싶지 않은 다디단 사탕을 욕심내듯 그녀의 숨결을 훔쳤다. 입술 안쪽 여린 살이 얼얼하도록 강하게 휘저었다. 뺏고 또 빼앗아도 부족한 그녀의 입술. 그녀의 숨결. 가녀린 팔로 자신의 허리를 꼭 감은 채 힘겹게 쫓아오는 혜서의 서툰 입맞춤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화끈거렸다.
Teen(은여경)
은여경
첫눈 속을 걷다. 로망띠끄.
출간작
「사랑내음」 (종이책)
「End, And... 1, 2」 (종이책)
「봄이 내게로 왔다」 (종이책)
「가을 소나기를 맞다」 (종이책)
「첫눈 속을 걷다」 (종이책)
「그녀, 차혜서」 (종이책)
「끝내, 사랑하다 1, 2」 (전자책)
「End, And... 1, 2」 (전자책)
「시작은 뜨겁게, 연애는 은근하게」(전자책)
「사랑愛 타다」(전자책)
「엎친 데 덮친 남녀」(전자책)
「통제 불능 남녀」(전자책)
「눈길이 머무는 곳에, 그대」(전자책)
「달콤한 금단」 (전자책)
「엇갈림 속 愛」 (전자책)
「뜨거운 타인」 (전자책)
「네버더레스」 (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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