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선우준
너의 모든 고통, 두려움, 분노, 번뇌, 죄의식...... 세상 모든 더러운 것들은 내가 상대한다. 넌 그저 내 안전한 그늘 안에서 나만 바라보면 돼.
죄책감...... 그 따위 것 개나 주라고 해. 내 인생에서 서우영을 제외하면 어차피 남는 것 없으니까.
그녀, 서우영
숨 막혀. 난 더 이상 오빠가 싸고돌아야 하는 약해빠진 어린애가 아니라고!
[본문 중에서]
뿌연 아침 햇살이 반투명 커튼을 뚫고 무겁게 가라앉은 어둠을 몰아내는 시각. 어지럽게 구겨진 하얀 시트 사이로 웅크린 가냘픈 등이 고르게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동틀 무렵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잠은 한밤중인 것처럼 깊고 깊다. 씩씩 내쉬는 숨소리나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뺨하며 그녀는 마치 온 힘을 다해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숙면, 혹은 격정적인 지난밤의 반증.
침대 발치를 타고 올라온 햇살이 마침내 그녀의 얼굴까지 침범하려고 하자 어느새 올라온 커다란 손이 햇빛 가리개 노릇을 하며 그녀의 작은 얼굴을 보호하듯 가린다. 킹사이즈 침대 가운데에 웅크리듯 엎드려 자는 그녀 뒤에는 베개에 한 팔로 머리를 괴고 누워 그녀를 지켜보는 그가 있다. 허리춤에 감긴 시트가 아슬아슬하게 아랫도리만을 가린 그 역시 나신이다. 가슴부터 배꼽 아래까지 꽉 짜인 근육하며 보호하듯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팔에 불뚝 솟아 있는 힘줄하며, 그도 그녀도 미동도 없고 신체 접촉도 없는 상태이지만 어쩐지 위험스러운 그림이다. 그의 피부가 특별히 까무잡잡한 편은 아니지만 흰 시트와 정성스레 구운 백자처럼 뽀얀 그녀의 등 때문에 그의 존재는 이 그림의 유일한 그림자가 된다. 웅크린 자그마한 그녀의 몸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둘러싼 그의 기다란 나신은 가녀린 짐승을 잡아먹기 직전의 맹수 같이 위험스럽기도 하고 동시에 몸 안의 진주를 온 힘을 다해 보호하려는 조개 입처럼 헌신적이기도 하다. 집착과 헌신, 그는 아니라고 하고 싶겠지만 그녀를 향한 그의 오랜 습성도 딱 그와 같다.
......
진부한 표현이지만,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속에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그녀, 서우영은 그에게 그런 존재다. 칠흑 같았던 그의 인생의 단 하나의 불꽃. 그의 소중한 불꽃이 지금 그의 보호 아래서 안전하게 잠들어 있다. 새삼스럽게 가슴이 벅차오른다.
완벽하게, 행복하다.
그래서,
완벽하게, 비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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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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