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남자,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남자와 결혼한 그녀.

그리고 동생의 여자를 사랑한 가슴 아픈 첫사랑의 기억을 품고서 사랑 없는 결혼을 한 그.

마치 동거인처럼 1년 가까이 '부부'인 척 지내온 그 둘에게 조금씩 감정의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수필처럼, 잔잔하게 그려지는 한 부부의 모습과 그 부부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찬찬히 풀어낸 소설.

<여자는 시고, 남자는 쓰다> 입니다.







수연은 재미난 연애편지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들떠서 한 줄씩 읽어 내려갔다.




「일!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다.

이! 동거인 일뿐 친구도 남매도, 그 어떠한 관계도 형성하지 않는다.

삼! 방은 따로 쓰나 부엌과 거실, 베란다는 공유한다. (욕실이 두 개인 아파트를 살 것)

사! 집안일은 일주일 단위로 교대한다. 집안일에 대해 불만이 있을 시에는 상대방에게 불만을 토로할 수 있으며 불만 접수 시 실수 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번, 실수가 습관이 되지 않도록 그 후에는 벌금을 부여한다. (건당 일 만원)」

오! 결혼식은 최대한 간소하게 하나, 가족, 친지들의 마음 상하지 않도록 성심껏 준비하고 계획한 뒤, 결혼의 성스러움은 스스로 무력화 시킨다.

육! 각각의 취미활동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최대한 의식한다는 차원에서 한 달에 두 번, 영화감상, 미술관, 공연장, 동물원 등을 랜덤 순회한다. 또한 놀토 중 하루 시간 내서 같이 마트에 가 장을 본다. (단, 쇼핑은 따로 할 것)

랜덤 순회라니, 이게 뭐냐, 이게? 기가 막혀서…….

칠! 친구나 친척 방문을 대비해서 한 달에 두 번 취미 생활을 할 시 꼭 사진을 찍어 액자에 담아 거실에 걸어둔다.

팔! 가끔 집들이나 가족 행사 겸으로 공동 거실과 부엌을 사용 시 미리 양해를 구하도록 하며, 이는 한 달에 최대 한 회에 한한다. 지인의 갑작스런 방문에 대비해, 외출 시 각 방문은 잠그고 다니도록 하며, 자기 방은 각자가 청소, 관리한다. (방문을 열어보거나 들어오는 건 제 1조에 범하는 행위이며, 적발 시 10만원을 부과한다)

구! 남편은 아내에게 의무적으로 생활비 150만원을 내야하며, 그 돈은 오로지 생활비를 위해 써야 한다. 나머지는 저금을 하고, 필요한 가전제품이 있을 시 꺼내어 구입한다.

십! 빨래는 각자, 요리도 각자, 식사도 각자 알아서 해결하며, 시간이 맞아 식사준비를 같이 해야 할 경우 돌아가면서 한다. 그리고 한 명은 식탁에서, 한 명은 거실 테이블에서 식사 할 것. (그 때 그 때, ‘가위바위보’로 결정한다)

야! 야! 이건 좀 아니다. 어떻게 매번 혼자 밥 먹니?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가만 있어봐, 이건 또 뭐야.

십일! 각종 기념일은 챙겨줄 의무가 있으나, 받을 의사가 있을 시에만 같이 준비하고 같이 계획한다. 포스트잇을 이용한다?

십이! 제1조의 연장선상으로서 각자의 연애사업에는 참견하지 않으며 신경에 거슬릴 경우를 대비하여, 집에 초대하거나 남의 눈에 띄는 일은 없도록 한다. 혹, 곤란한 소문이 돌게 한 사람은 한 달 치 청소의 의무를 갖는다. 그 뿐이다. (시치미는 알아서 떼고 돌아다닐 것)

야! 나 더 이상 성질나서 못 읽겠다. 이게 무슨 부부냐?」



수연은 읽다 지쳤는지 A4 용지를 제멋대로 내팽겨 치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꿈꾸는 부부의 모습이야. 아름답지 않니?」



나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