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크 게르하드센은 말에서 내려, 강 아래 길로 내려가 잡목들을 헤치며 금발의 소녀가 멈춰서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금발의 소녀 ‘크리스텐 하드래드’는 더크의 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이 한 번 뒤를 힐끔 돌아보더니 말의 고삐를 잡고는 물가로 곧장 내려갔다. 왼쪽으로 ‘호르텐 피오르드’ 협만(峡灣)이 빠른 물살로 흘렀다. 그러나 여기 강어귀에의 끊임없는 흐름에 옥돌에 물방울이 부서질 뿐, 물살은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하고 부드러웠다.
더크는 과거의 경험으로 미루어, 이렇듯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에는 크리스텐이 유혹에 못 이겨 그 물가를 찾으리라고 이미 짐작한 터였다. ‘휴’ 삼촌 집에 남아 있던 크리스텐이 이쪽으로 말을 타고 오는 모습을 본 순간, 그녀가 이 강가로 오리라는 걸 훤히 꿰뚫었다. 어렸을 적에,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적에, 두 사람은 크리스텐의 오빠나 사촌들과 함께 이곳에서 헤엄을 치곤 했지.
크리스텐의 가족은 대가족이었다. 바로 위의 오빠와 밑으로 두 명의 남동생, 그리고 이곳 ‘피오르드(바다의 일부가 내륙으로 쑥 들어간 좁고 길다란 부분, 협만)’ 지역의 족장(族長, 북유럽에선 왕 다음 가는 지위) 삼촌과 아버지 쪽의 친척인 열두 명의 사촌이 함께 살고 있었다. 가족들은 유일한 여자 혈육인 그녀를 해와 달처럼 무척 소중하게 생각했다.
최근까지 더크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는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많은 남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크리스텐에게 청혼을 했다. 그러나 크리스텐은 청혼을 정중하게 거절했고, 더크는 어쩔 수 없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긴 했으나 그래도 그녀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크리스텐이 눈에 띄게 키가 자라면서 말괄량이 아이에서 당당하고 멋진 숙녀의 모습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더크는 죽 지켜보았다. 세월을 거듭할수록 크리스텐을 자신의 여자로 삼는 일 외에, 더크에게 이보다 강렬한 소망은 없었다.
크리스텐이 린네르 드레스를 벗기 시작하자 더크는 숨을 죽였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그가 뒤쫓아온 이유도 거기에 있었고 ―오딘(예술. 문화. 전쟁의 신) 신이 그를 도와―마침내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길고 미끈한 다리, 엉덩이의 부드러운 곡선, 황갈색의 도톰하게 땋은 머리채가 출렁거리는 가냘프고 곧은 등……. 크리스텐의 그런 모습을 도저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 같았다. 바로 2주 전에 그는 피가 끓어올래 주체를 못해, 그 도톰하게 땋은 머리채를 손에 단단히 움켜쥐고 그녀의 입술에다 강제로 키스를 했다. 크리스텐은 그의 야수 같은 행동에 씩씩거리며 그의 뺨을 찰싹 때리자, 그는 그 충격으로 휘청거렸다. 크리스텐은 이제 더는, 자그마한 키에 팔다리의 힘이 나약한 소녀가 아니었다. 사실 그녀는 182센티미터인 더크의 키보다 단지 5센티미터밖에 작지 않았다. 뺨을 맞긴 했지만, 더크는 위축되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만약 크리스텐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그는 정말로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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