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지?]

유진은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묻는 남자의 목소리가 역겨웠다.

“당장 돈이 필요해.”

유진은 온몸으로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마지막 생명줄인양 휴대폰을 움켜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

“천만 원."

[담보는?]

담보라, 그런 것이 있었으면 마진명에게 전화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진은 이제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병원 복도에 쓰러지듯이 주저앉았다.

“내게, 내게는 천만 원을 대신할 담보물 따윈 없어. 그건 당신이 더 잘 알잖아. 다, 당신이 그렇게 만들었잖아."

[아니, 몰라.]

유진은 절망했다. 내일 아침까지 당장 천만 원 아니 오백만 원이라도 구하지 못하면 하늘아래 피붙이라고는 엄마밖에 없는데, 그런 엄마를 잃고 말 것이다. 지금도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너무나 힘들게 숨 쉬고 있는데. 유진은 심호흡을 하며 용기를 북돋았다.

“말장난 그만 해. 내게 바라는 게 뭐야. 뭔가 바라는 게 있으니깐 사람을 보냈을 것 아냐!"

[물론 바라는 게 한 가지 있긴 하지.]

뱀의 간사함보다 더 징그러운 그의 목소리가 느리게 들렸다. 그렇지만 그녀는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뭐야."

[널 사고 싶다.]

그녀의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온몸의 세포가 주뼛거리며 소름이 쫙 끼쳤다.

“날?"

[빙고. 단 조건이 있다. 내가 시키는 건 뭐든 다 해야 해. 그럼 일이 끝나는 대로 바로 현금으로 입금시켜 주지.]

“저, 정말이지?"

[이래봬도 이 바닥에서 신용하나로 버틴 몸이야. 거짓말은 안 해.]

유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입안이 바짝 타 들어가 침 한 방울 삼키기도 여의치 않을 만큼 긴장했다. 하지만 견뎌야만 한다. 엄마를 위해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불쌍한 엄마를 위해서.

[할건가?]

“할게. 뭐든 다 할게. 얼마 동안이나 당신 소유물로 있어야 하지?"

[엄밀히 말하자면 나의 소유물이라기보다 내가 앞으로 고객으로 모실 분의 소유물이 되는 거야. 그리고 기간은 글쎄, 하룻밤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한 달이 될 수도 있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고. 그건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지. 먼저 조건이 맞아야겠지만. 어때 구미가 당기지 않아?]
은근히 마음을 떠보는 느릿한 음성이 들리자 그의 역겨운 모습이 떠올라 유진은 인상을 구기면서 치를 떨었다.

“조건이나 말해. 시키는 대로 다 한다고 했잖아. 당신 믿을 수 없어. 반이라도 먼저 내 통장으로 입금시켜."

[좋아 그러지. 일단 산부인과에 가서 네가 처녀라는 진단서를 떼어 갖고 신라호텔 스카이 라운지로 두 시간 안에 와. 그럼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반을 주지.]

헉! 처녀임을 증명하는 진단서라니. 유진에게 충분히 치욕을 느끼게 하는 조건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알았어. 그럼 두 시간 후에 봐. 꼭 돈 갖고 나와야 해. 안 그럼 이 계약은 무효야."

유진은 시계를 보면서 시간을 확인했다.

[걱정 마. 내가 이런 장사 한두 번 하는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