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남의 집에 처음 갈 땐 빈 손으로 가는 거 아니잖아요. 그쵸.”
간신히 서두를 떼는데 레도가 은을 돌아보았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레도의 눈길을 받으니 가슴만 콩닥콩닥 뛰고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래서?”
“아……그러니까……내가요. 오늘 레도 오빠네 집에 오게 될 줄 알고 그런 건 절대 아닌데요.”
“그런데?”
“그런데가 아니라 정말 그렇단 말이에요.”
“누가 뭐래?”
“음.”
은은 헛기침을 한 다음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래서요. 내가 레도 오빠 주려고 뭘 하나 샀거든요?”
“그래?”
레도의 입가에 매력적인 미소가 번졌다. 나 자꾸 착각하게 되니까 그렇게 좀 웃지 말란 말이에요! 소리라도 질러주고 싶은 걸 꾹 참으며 은은 배시시 웃었다. 레도가 손을 내밀었다.
“뭔데? 내놔 봐.”
“집에 들어가서 줄게요.”
“지금 줘.”
“들어가서 준다니까요.”
“난 궁금한 건 못 참아. 내놔, 얼른.”
“참 내, 맡겨놨어요? 내놓으라니.”
“어차피 줄 거 뭘 뜸을 들여? 빨리 줘.”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은은 날름 내려섰다. 레도도 내렸다. 문 앞까지 걸어가더니 레도가 다시 손을 펴 내밀었다. 은은 보지도 않은 채 딴청을 피우듯 서서는 손만 딱 올려 내민 모양이 마치 악동 같다. 은은 풋 웃었다.
“안 주면 못 들어가.”
은은 백에서 포장된 상자를 꺼내 레도의 손 위에 얹었다. 그제야 레도의 눈길이 은에게로 돌아왔다.
“맘에 안 들지도 몰라요. 그래도 난 책임 못 져. 현우백화점 가서 산 거니까 다른 걸로 바꾸든 어쩌든 그건 레도 오빠가 알아서 해요.”
레도가 상자를 열었다. 이번엔 은이 레도를 외면하고 서선 앞만 바라보았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라이터잖아? 어쩌지? 나 담배 끊으려고 하는 중인데.”
볼이 확 달아오른다. 은은 레도를 돌아보았다. 방금 진지한 어투도 그랬지만 표정을 보니 정말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우연히 마주친 그 첫날 이후로는 지난 며칠간 담배 피우는 걸 본 적이 없다.
“그, 그런 줄 몰랐어요. 며칠 전에 우리 집 뜰에서 라이터 떨어뜨리고 깨졌던 거 생각나서, 괜히 미안해서 산 건데. 그럼 그냥 주세요.”
라이터를 되가져오려는 은의 손을 피해 레도가 라이터 쥔 손을 위로 휙 들어올렸다. 은을 보며 레도는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달라니까요.”
“싫어.”
“왜 싫어요? 담배 끊는다면서요?”
“끊으려고 한다고 했지, 끊었다고 했어?”
은은 레도를 새치름하게 노려보았다. 입술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레도는 은에게도 보이도록 도어락의 번호를 천천히 짚어 누른 다음, 은의 귓가에다 대고 낮게 말했다.
“고마워.”
김지운
봄을 좋아한다.
쓰는 즐거움으로 행복해지길 바라며
다양한 빛깔의 삶과 사랑과 사람을 그리고 싶다.
* 종이책 & 전자책 출간작
푸른 속눈썹. 오르골. 햇빛 아래 그가 있다.
계절사랑 시리즈 / 겨울사랑(2권). 여름사랑. 봄사랑. 가을사랑
연지. 올 오아 낫씽(2권). 풀잎연가. 이끌림. 느낌. 귀엣말.
열대의 시간. 타임. 포옹. 당신의 숲. 가장 투명한 빨강.
파문이 나를 새길 때. 곰곰, 하는 중입니까?
* 전자책 출간작
동그라미. 눈사람에게. 약속. 이안류.
* 장편동화 <엄지>와 동화집 <나의 철부지 아빠(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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