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 바닷가. 그곳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그의 목에 둘러준 회색빛 머플러는 그에게 전하는 그녀의 따스한 마음이었다.

- 본문 중에서 -

“자세한 얘기는 조금 있다가 하기로 하고 우선 다인 씨의 연주를 들어보도록 할까요?”
“네.”
다인은 피아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의자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은 다인은 피아노 건반 위로 손을 가져갔다. 그녀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음들이 부드럽게 여울져 넓은 공간에 울려 퍼졌다.
은은한 울림으로 공명되어 오는 음들,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곡의 느낌이 달라지는 법이다. 화려한 기교는 없었지만 연주자의 따스한 마음이 그대로 스며든 연주에 희정의 입가가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레스토랑에 들어선 강준은 2층으로 올라가려다 귓가에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몸의 방향을 틀어 다인과 희정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희정은 강준이 자신의 옆에 서 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님.”
강준은 그녀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희정이 자리에 앉자 강준은 2번째 곡을 연주하고 있는 다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그녀의 연주를 감상하던 강준은 몸을 돌렸다. 그 순간 그의 귓가에 그 곡이 울려 퍼졌다.
Le Jardin.
거꾸로 흐르는 시간, 되살아나는 아련한 기억들.
강준은 뻣뻣하게 굳은 몸을 천천히 돌렸다. 느리고 익숙한 선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아련한 빛을 띠고 있는 그의 눈동자에 다인의 모습이 콕 박혔다. 유리창을 비집고 들어온 오후의 햇살이 그녀의 곁에 머물러 있었다.
연주가 끝나자 다인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시선을 들어 강준의 눈빛과 마주한 그녀는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자신이 바닷가에서 머플러를 둘러주었던 그 남자라는 것을.
다인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를 눈동자에 담았다. 깨끗하고 차분하고 고요한 느낌의 남자를. 눈빛으로 보아, 그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Thanksgiving.
문득 그 곡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지금 서 있는 이곳이 그 겨울의 바닷가가 아니고, 따스한 빛이 스미는 곳이기 때문일까. 그의 눈동자에는 우울한 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따스한 빛은 그의 어깨에 드리워진 외로움의 그림자는 가려줄 수 없었나 보다. 여전히 그는 외로워 보였으니까.
얼마간 다인을 보고 있던 강준이 굳게 다문 입술을 열었다.
“좋은 연주군.”
다인은 그의 목소리를 처음 들을 수 있었다. 낮으면서도 부드러운 음색의,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은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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