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네 전부를 주게 될 거야. 피도 살도 마음도. 네가 가진 그 무엇 하나 상대에게 주지 못해 안달 나게 될 거야. 그렇게, 내어주는 만큼 너는 상대의 모든 걸 취하고 싶어지겠지.”

‘평생에 걸쳐 단 한 사람만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은 리온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홉 살의 어린 그가 이젤디아를 만난 후, 그 말은 곧 그의 삶이 되었다. 그녀는 그에게 그저 운명이었다.

“가지 마, 이젤디아. 내 곁에 있어줘. 여기서 나와 함께 있어. 사랑해. 내 앞으로의 인생은 네 옆에서 너와 함께 지내고 싶어.”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었다. 왜……, 언제부터?

아니, 이건 다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고백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상대는 귀족에 어린아이에 내 의뢰인이니까!

“원한다면 내 전부를 줄게. 옆에만 있어준다면, 날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아.”

젠장, 내 첫 고백은 이 어린 꼬마한테 받은 게 되는 건가?

2. 작가 소개

리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K575

▣ 출간작

벽의 꽃은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

3. 차례

#Chapter 8. Shall We?

#Chapter 9. End Roll

#Epilogue

#Side Story 1: Unexpected Encounter

#Side Story 2: Farewell

#Side Story 3: May Bloom

4. 미리 보기

“이젤디아.”

“리온?”

방에서 머리만 살짝 내민 그가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내게 손짓했다. 왈츠를 출 때 주의사항이 적힌 부분을 읽고 있던 나는 그 부분에 책갈피를 끼운 후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하트하르스 저택에 있는 수많은 응접실들 중 하나인 모양인지 방 안엔 단출한 테이블과 소파, 그리고 최소한의 장식들만이 갖춰져 있었다. 구석에 먼지도 좀 쌓여 있고 커튼도 색이 바라져 있는 게 잘 쓰지 않아 방치된 방들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이젤디아, 머리에 그건 뭐예요?”

문을 닫자마자 그가 내 머리 위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가 빠져 낡은, 빈 찻잔이 그의 긴 손가락 사이에서 달랑거렸다.

“아까 너희 시종장이 시키던데. 다른 귀족들은 다 머리에 이걸 올리고 걷는다면서.”

“처음엔 찻잔이 아니라 책부터 시작하지 않나요?”

“그랬어. 그런데 너무 쉬워서 찻잔을 올려봤는데 그것도 잘되더라.”

“…….”

리온의 입이 벌어졌다 닫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는데 왠지 참는 눈치였다. 내 균형 감각이 그렇게 놀랄 정도인가? 무슨 일로 부른 건가 싶어 빤히 쳐다보고 있자니 잠시 헛기침을 한 리온이 내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요즘 고생하고 있다 들었어요.”

둥글게 솟아 있는 고급스런 보라색 천을 살짝 걷어내자 새하얀 접시 위로 붉은 기가 살짝 도는 스테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

물에 젖은 채소 냄새만 맡던 코에 들어온 고기의 향은 강렬했다. 고기를 맛본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건만 지금만큼 이 향이 반가웠던 적이 없었다.

“미안해요, 어머니가 멋대로 밀어붙인 일 때문에 제대로 식사도 못 하고 있죠? 한 접시 더 가져왔으니 마음껏 먹어요.”

세상에.

리온이 제 뒤에 있는 바구니에서 또 다른 스테이크와 생크림으로 매끈하게 코팅된 커다란 케이크를 꺼내 보여주었다. 막 구운 모양인지 스테이크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나고 있었고 케이크에는 이 계절에는 보기 힘든 딸기가 아낌없이 올라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비밀로 해드릴게요.”

“리온…….”

“마음에 들어요?”

리온의 얼굴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이걸 싫어할 리 없지.’라는 강한 자신감이 섞여 있었다. 콧대를 세우면서도 그걸 티내지 않으려 하는 게 귀엽기도 하고 나를 생각해 이런 걸 준비해준 게 너무나도 기뻤기에 순간 나도 모르게 강한 애정이 혀를 타고 흘러나왔다. 말로 하지 않곤 견딜 수 없었다.

“너무 좋아. 고마워. 사랑해, 리온.”

“…….”

바구니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꺼내던 리온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참지 못하고 스테이크 옆에 가니쉬로 나온 버섯을 손가락으로 몰래 집어 먹었을 때였다. 버섯 특유의 식감과 묻어나온 고기 향에 눈을 빛내고 있는데 리온의 손가락이 접시를 향해 손을 뻗는 내 손목을 붙들었다.

“다시.”

“응?”

“다시 말해줘요.”

뭘? 이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리온이 나를 끌어당겼다. 긴 금빛 속눈썹과 그 아래 흔들리는 연한 녹색 눈동자가 바로 코앞에 들이밀어지자 깜짝 놀라 접시를 든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방금 했던 말, 다시 해줘요.”

‘내가 방금 무슨 말을 했더라?’

고기 냄새에 정신을 못 차리고 내뱉은 말을 떠올려보다 이내 입을 딱 벌렸다. 내가 방금 무슨 말을 한 거람!

“어…… 리온, 방금 그건…….”

“알아요.”

고개 숙인 그의 이마가 내 어깨에 무게를 가했다. 금실마냥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내 볼을 간질였다.

“그런 의미로 사용한 게 아니란 걸 알아요. 그래도…… 그래도 듣고 싶어요.”

작게 속삭이는 리온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언제나 들어왔던 어딘가 매달리는 듯한 절박함을 담은 소리였다.

“이상하죠. 옛날엔 그저 당신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세상 전부를 가진 것 같았는데……. 이제는, 벌써부터 말만이라도 좋으니 사랑한다고 듣고 싶어요.”

“…….”

“안 될까요?”

그런 얼굴을 눈앞에 두고, 그런 목소리를 듣고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입술을 벌렸다.

“사랑해.”

입 밖으로 내기 전까진 머릿속으로 수없이 많은 생각이 오고 갔지만 처음만 어려웠을 뿐이지 막상 소리를 내자 그것만큼 말하기 쉬운 단어도 없었다.

“……사랑해, 리온.”

“아아, 저도요.”

깃털보다도 가벼운, 진심 한 점 담겨 있지 않은 말은 허무하고 공허하기 그지없었다. 타의에 의해 나왔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가 가진 진심이 그것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인가? 평소 그를 생각하던 감정이 한 조각도 제대로 담겨 있는 것 같지 않아 어쩐지 속상하기까지 했다.

“저도 사랑해요.”

하지만 고작 그것만으로도 고개를 든 리온의 얼굴이 너무나도 환해서. 그 자체로 빛이라도 날 것마냥 빛나고 있어서. 그렇게나 기뻐해서.

“제 온 마음을 바쳐,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이젤디아.

그의 손끝이 닿는 부분마다 퍼지는 온기에 난생처음으로 그 말에 제대로 대답해주고 싶어졌다. 밖으로 나왔을 때 연기처럼 사라지는 말이 아닌, 평생토록 기억에 남을 그런 감정을 전해주고 싶었다.

“…….”

벌어진 입술이 그대로 열렸다 소리 없이 닫혔다. 나는 자유로운 한 팔로 리온을 마주 끌어안아주었다. 힘을 주어 끌어당기자 리온은 순순히 다시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었다.

내 체온보다 서늘한 게 사람의 온기이건만 품에 안긴 리온은 불덩이처럼 뜨겁게 느껴져 데일까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내가 그 열을 꺼트릴까 무서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손길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내가 손을 뗄 때까지 리온 역시 그대로 서서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