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면 머리, 얼굴이면 얼굴 빠지는 게 없는 그 남자 서인후에게 유일한 약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의 영원한 소꿉 친구이자 동기에서 이제는 직장동료까지 되어버린 바로 그 여자.
언제나 저돌적이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에 있어 주저함이 없지만 유독 은세의 앞에서만큼은 마음이 극도로 나약해지고 만다.
그가 누군고 하니, 그는 바로! 그 유명하다는 놀고 먹는 커플 매니저 서인후.
“이제 15년 인연의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된 거 같다”

사랑에 있어 조금은 솔직하지 못했던 그가 변하기 시작했다.
평소의 장난끼 가득한 눈빛도, 악마같던 비릿한 웃음도 사라졌다.
“사랑을 하는데 공식이 필요해?”
“잘 들어. 사랑은 이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거다.”

초,중,고 같은 학교를 나와 심지어 직업까지 같은 그들.
껌보다 찰싹 붙어버린 그들의 진득진득한 관계.
동성간의 우정보다 더욱 질긴 그와 그녀 사이에 이상기류가 흐른다?

미친 존재감 인후와 통통 튀는 은세의 간질간질 러브스토리




-본문 중에서-


시간이 정지된 듯, 은세의 두 눈이 인후에게 콕 박혀 떨어질 줄을 몰랐다. 뒤통수가 아픈 듯 인상을 구기고 있던 인후 역시 이내 은세의 눈빛을 바라보며 점점 표정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눈만 끔벅 입에 테이프이라도 붙여 둔 듯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서로의 입김이 닿을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인후의 눈이 은세의 눈에서 시작해 코, 입술 끝으로 내려가자 그와 함께 은세의 시선 역시 인후의 입술로 향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순간 낮의 일이 또 생각이 나고 말았다.
“아깐 짧아서 제대로 못했는데 이렇게 된 거 진하게 한 번 할까?”
인후의 말에 은세 자신의 놀란 눈이 그의 동공 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미, 미, 미쳤어!”
장난 서린 그의 목소리에 은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할 말 못할 말이 있지! 지금 인후의 태도는 정말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아니, 이해가 되도 이해 할 수가 없다. 그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그의 이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자신이 격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어떻게 주체를 할 수가 없다.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불에 데기라도 한 듯, 인후의 몸에 닿았던 모든 곳들이 화끈거린다.
곧 상체를 일으킨 인후가 아직도 뒤통수가 아픈지 두어 번 문지르다 은세를 바라보았다.
“은세야.”
“왜!”
“너 얼굴 빨개졌다.”
“뭐?”
은세는 자신의 볼을 감싸 쥐었다. 뜨겁긴 한데 보이지는 않으니 빨개졌는지 알 수가 있나. 인후가 한쪽 무릎을 굽어 올리며 팔을 턱 걸치고, 은세를 바라보았다.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열 받아서 그래. 니가 날 열 받게 하니까 화를 참지 못 하겠잖아.”
“진짜?”
“그래! 그러니까 그만 좀 놀리라고!”
“내가 놀리는 거라고 생각해?”
인후의 입 꼬리가 스윽 올라가며, 은세를 향해 그윽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자 결국 참다못한 은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연하지! 내가 이젠 속을 줄 아냐? 너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그게 내 첫 키스였거든? 어떻게 니가! 니가 내 첫 키스를 뺏어 가는데. 아 열 받아!”
은세가 악에 받친 듯 소리 지르자, 인후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게 첫 키스였어?”
자신도 좀 의외라는 듯 인후는 눈을 크게 뜨며 다시 은세에게 물었다. 그러나 아직도 입은 싱글벙글이었다.
“그래 자식아. 수많은 여자를 거친 너와는 다르게 여태껏 순결을 지켜온 난 그게 첫 키스였단 말이야.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얼마나 로맨틱하고 우아한 키스를 꿈꿔 왔는지 알아? 근데 니가 그걸 다 깨 버렸어 이 망할 자식아.”
“완전 영광이다, 송은세의 첫 키스 상대가 나였다니.”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동안의 울분을 다 토해낼 작정이었다. 안 그래도 인후 때문에 은세 연애 인생에 마가 끼어 있는 찰나였는데, 이참에 아주 톡톡히 다 일러 줄 생각이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지 만약 낮의 그 모습을 친구들 중 누구 하나가 보기라도 했다면 아마 평생 동안 놀림감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이제 막 시작 중인 연애 상대도 있는데 혹시 서준이 그 모습을 보기라도 했다면? 시작도 못해 보고 깨질 판이었다.
“잘 들어. 이참에 우리 관계를 확실히 해야겠어. 우린 볼 거 못 볼 거 다 보고 자란 사이야 그치?”
“그렇지, 근데?”
“그래서 우린 평생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서로 아껴 줄 수 있는 그야말로 베스트 프렌드가 될 사이란 거지. 그러니까 이런 야리꾸리한 행동은 삼가야 한다고!”
은세의 말에 인후가 계속 해보라는 듯 팔짱을 끼고,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왜 친구끼리는 야리꾸리한 행동을 하면 안 되는 건데?”
“그야 당연히 넌 남자고 난 여자니까! 아무리 친구래도 성 구분은 확실히 해야지. 남들이 보면 진짜 오해한다니까?”
“니 말대로 성 구분 확실히 해서 남자고, 여자니까 상관없는 거 아냐? 친구라는 게 뭐 대순가? 좋으면 상관없는 거지.”
“조, 좋다고?”
“그럼 넌 아까 그 키스가 싫었다고 말할 건 아니겠지?”
인후의 당연스럽다는 말투에 은세는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띵한 상태로 있어야만 했다. 이자식 이거 지금 진심인 건가? 순간 황당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거야 니 말대로 그 뭐냐, 프, 프로! 그래 난 프로니까 그냥 그런 거지.”
“오호라, 그래? 프로라서? 웃기지마. 너 당황했어. 당황했는데 내가 하는 걸 그대로 다 받아들이더라? 그 말은 너도 전혀 싫지가 않았다는 뜻이지. 아니 오히려 너 역시 그걸 즐겼던 거야 내 말이 틀려?”
한 걸음 가까이 걸어와 은세의 앞에 턱 서 버리는 인후를 바라보며 은세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이 자식 왜 이렇게 가까이 다가와? 삐뽀삐뽀 머릿속에서 위험신호가 울리고 있다. 콩닥콩닥 뛰는 가슴은 둘째치고, 생각해 보니 인후 말 틀린 거 하나 없다. 인정하고 싶진 않아도 기분이 꽤나 좋았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난 프로야! 프로라고!”
“그럼 다시 한 번 해볼까? 그럼 알 수 있을 거 아니야 기분이 좋을지 어떨지. 지금은 일하는 것도 아니잖아.”
인후가 또다시 한 걸음 다가오자 은세는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가 한 걸음 또 다가오자 뒤로 또 한 발자국 물러섰다. 두 발자국 뒤로 물러서고 나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딱딱한 벽의 차가운 촉감이 등 뒤로 느껴지며 등골을 따라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오싹하다 못해, 숨을 쉴 수 없게 만드는 긴장감. 오늘따라 인후의 얼굴이 악마같이 느껴지고 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그치?”
“뭐, 뭐야. 이런 식으로 또 날 놀릴 생각인가 본데. 이런 거 굉장히 곤란하다 너? 또 나한테 맞아 죽고 싶지 않으면 비키시지. 좋은 말 할 때?”
“멍청하기는. 아무래도 넌 여자고 난 남잔데 내가 너한테 쉽게 당해 줄 거 같아? 지금 상황에 대해 잘 판단을 하지 못하나 본데 송은세. 여긴 우리 집이고, 아무도 없다. 그리고 난 너보다 힘도 무지무지 세. 알지 난 한 번 시작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끝장을 보고 만다는 걸 말이야.”
어느덧 은세의 코앞까지 다가온 인후 때문에 은세 얼굴 위로 새까만 그림자가 졌다. 빛을 완전히 차단시켜 버리고 나자 이 공간에 오로지 둘만 존재하는 느낌이 든다. 숨소리도 들릴 만큼 또다시 거리가 가까워져 버렸다. 진심인지, 장난인지 판단은 둘째치고 이대로 진짜 가만히 있다간 일 쳐 버릴 듯한 불안한 예감이 든다. 이대로 정말 인후가 또다시 키스라도 해 버린다면 반항을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은 지금도 없으니까.
“이번 장난은 좀 심한 거야. 인후야. 알았으니까 비켜봐. 덥단 말이야. 진짜 더워.”
몸의 열기가 불꽃처럼 피어올라 얼굴부터 발끝까지 뒤덮어가고 있었다. 묘하게 숨소리조차 섹시하게 들려올 정도로 분위기도 화끈 달아올라 있었다.
“말했잖아. 난 끝장은 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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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 출간작 <사랑공식> <럭셔리 로맨스> <심장에 정조준> <오, 마이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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