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질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왜 너와 결혼을 해야 돼?

지하철 선로에 빠진 여학생을 구해 준 뒤 세간의 이목을 받게 된 재준. 그가 주목을 받게 된 데에는 지하철의 선행, 그것 외에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좋은 성품에 잘생긴 외모, 든든한 재력까지…. 모든 것을 갖춘 완소남의 등장에 여자들은 열광했다. 이후, 원치 않는 유명세에 시달리던 그는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상대로부터 만나자는 의외의 문자를 받게 된다. 문자를 보낸 사람은 두 학년 아래의 후배인 하은설. 의아한 마음을 안고 은설와 마주한 그는 그녀가 꺼낸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 뭐? 결혼을 해 달라고?

▶잠깐 맛보기

“서…… 선배님, 저랑 결혼해 주세요.”

“……뭐?”

이건 또 무슨 중동 오리가 차도르 두르는 소리야? 당황스러움은 둘째치고, 개그 프로의 한 장면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웃을 수 있다면 면벽수행의 달인이거나, 세상을 해탈했거나 둘 중 하나였다.

“너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 있다. 못 본 사이에 많이 변했구나.”

“물론…… 제 말이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없으신지 저도 잘 알아요. 그렇지만…….”

겨우 입가로 가져간 머그컵을 단숨에 내려놓으며 버럭 고함을 지르려던 재준이 입을 떼다 말고 멈칫했다. 은설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해 보여 어쩐지 그럴 수가 없었다.

“길 가는 사람,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이 안에 있는 사람들한테 물어봐. 지금 네 말이 가당키나 한 건지, 말이 되긴 하는 건지 말이야. 고등학교 후배가 어느 날 연락 와서 제발 좀 만나 달라고 해서 만났더니, 대뜸 한다는 이야기가 결혼해 달래. 내가 그전에 무슨 책임질 일이라도 했다면 또 모를까. 고작 아는 거라고 해 봐야 얼굴이랑 이름밖에 모르는데 다짜고짜 결혼해 달라니, 그게 제정신인 사람이 할 소리야?”

“단순히 얼굴하고 이름만 아는 사이요? 물론 선배님이야 그러시겠죠. 그런데 전 아니에요. 저 충분히 선배님께 결혼해 달라고 요청할 자격 있어요. 선배님 입으로 분명히 약속하셨잖아요. 저랑 결혼해 줄 거라고. 이제 와서 아니라고 발뺌한다면 선배님 남자도 아니에요!”

머슴살이 3년에 주인 성 묻는다더니,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갈수록 가관이었다. 재준은 황망하고 어이없는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선배님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을 소풍 기억 안 나세요? 직접 각서까지 쓰고도 모르겠어요? 선배님 머리 좋으시잖아요!”

“하다 하다 이제 목숨…… 잠깐, 6학년 가을 소풍?”

몇 개의 단어를 꿈결처럼 중얼거리던 재준의 낯빛이 삽시간에 사색이 되었다. 

“그러니까…… 그때 그 아이가 너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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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16

* 이 전자책은 2010년 타출판사에서 출간된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eBook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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