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평강공주는 나중에 크면 바보온달에게 시집 보내버리겠다는 부왕의 엄포를 진짜로 믿었을까? 그 어리석은 말 한마디로 어린 시절 내내 주위에서 놀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혼인할 시기에 이르러서는 부왕이 정해준 귀족출신의 정혼자를 거부하고 바보 온달을 남편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보 온달의 소문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위해 직접 그를 찾아 나선 공주는 온달의 실물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사내의 드높은 기개와 용맹을 숭상하는 이 고구려에서 저런 몰골로, 그것도 하필이면 남정네로 태어났으니 살기가 정말 만만치 않았겠구나. 쯧쯧쯧, 불쌍하고 애처로운지고. 그러다가 바람이라도 불면 훅하고 한 방에 가겠구나!」
반면 아름다운 공주의 모습에 첫눈에 반해 쩔쩔매기만 하던 온달은 막상 소문대로 공주가 울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
「저 울보에게 내가 꿀릴 게 뭐람? 좋아, 그깟 어린애 비위 맞춰 주는 거 하나 내가 못하겠어? 공주가 바라는 건 다 해드리지. 암! 그깟 거 뭐가 힘들다고. 타고나게 사람 좋은 이 온달이 공주가 원하는 건 다 들어드리고 말고. 암! 어디 말씀만 해 보라니까.」


-본문 중에서-

공주가 눈을 반짝이며 생긋 웃자, 온달의 맥박이 급격히 뛰기 시작했다.
아무리 공주를 철딱서니 없는 왈가닥 울보라고 스스로를 세뇌해 봐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에게 공주는 완전한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아, 이런 사람을 두고 금지옥엽이라 하는구나! 온달은 글 한 자 모르는 주제에 어디서 얻어들은 사자성어를 속으로 뇌까리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서방님, 이게 해라는 글자이옵니다.”
온달이 그녀를 보느라 정신이 속 빠진 사이 공주가 해 일(日)자를 써서 온달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 바람에 깜짝 놀란 온달이 헉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그걸 본 공주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온달을 째려보았다.
“어디다 정신을 팔고 계시는 것이옵니까? 아무리 공부가 하기 싫어도 그렇지 제가 이렇게 열심인데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아니오, 아니오. 그렇지 않소! 내 공주가 너무 예뻐서 쳐다보느라 그런 것 아니겠소.”
당황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속마음을 말한 온달은 화들짝 놀라며 ‘합!’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져 어쩔 줄을 몰랐다.
공주는 그 모양을 빤히 보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제가 예쁩니까?”
공주가 묻자 온달이 바보처럼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온달은 제 입으로 그런 말을 하고 나니 쑥스러워 감히 공주를 제대로 쳐다볼 자신이 없었다. 해서 공주를 외면한 채 붉게 물든 얼굴로 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한편 이를 본 공주는 예전에 취영루에서 금파와 나누던 대화가 생각났다.
‘이 사람도 사내라 남녀의 일을 안다고 했던가? 그렇다는 것은 어쩌면……!’
공주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래, 어쩌면 서방님에겐 이 작전이 먹힐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온달에게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감지한 공주는 스스로 미끼가 되어 그를 한번 낚아 볼 심산이었던 모양이다.
말하자면 온달의 학업성취도를 높이고자 저를 상으로 내걸겠다는 고런 유치한 발상을 한 것이데……, 아이고야 이 철딱서니 없는 것! 생각하는 것 좀 보게. 남자를 그렇게 우습게 알다니! 너 그러다가 큰 코 다친다.
아무튼 온달을 꼬드겨 보고자 결심을 단단히 한 공주는 무릎걸음으로 온달에게 바짝 다가갔다.
공주는 그에게 손을 얹고 고양이가 주인에게 하듯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는 온달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긴 속눈썹 사이로 촛불에 일렁이고 있는 공주의 새까만 눈동자를 본 온달은 그만 심장이 덜커덕 하고 내려앉았다.
“전 태어나서 그런 소리는 서방님한테 처음 듣습니다. 정말로 제가 어여쁩니까?”


[미리보기]

“싫사옵니다!”
자, 이것이 뭔고 하니 바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울보로 기록되었던 평강공주의 앙칼진 목소리 되시겠다.
“왜 하필이면 선(善) 그놈입니까?”
후대에 흔히 평강(平岡)왕으로 더 잘 알려진 고구려 제 25대 평원(平原)왕은 미처 예상치 못한 딸아이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사실 공주의 혼사를 두고 오랫동안 왕실과 신하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여 좀처럼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아무래도 고구려 왕실에 하나뿐인 공주다 보니 자연히 부마도위의 자리도 하나뿐이라, 어쨌든 꽤나 희소가치가 있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오늘에야 간신히 그 혼처가 정해진 바, 이에 몹시 기뻤던 왕이 일부러 짬을 내어 소식을 전하러 공주에 처소에 들렀던 터였다.
허나 애초에 공주의 반응이 이따위이니, 앞으로 펼쳐질 일이야 뻔하고 뻔한 일이었다. 왕은 자기가 입을 열자마자 남편감부터 물고 늘어지는 공주를 보고 저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지금 우리 고구려에 상부(上部) 고씨(高氏)만한 가문이 어디 있다고 그러느냐? 이는 다 내, 너를 아껴 고르고 고른 혼처이니 너무 타박 말거라.”
“그러니까 그 가문이 문제이옵니다. 그러니 그 호랑말코 같은 놈이 제 가문의 권세만 믿고 저리 오만방자한 것이 아니옵니까?”
공주가 이처럼 발끈하자 왕은 저도 모르게 끙 하는 신음 소리를 냈다.
속된 말로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는 딸이었지만 왕실의 혼인과 같은 중차대한 일에 저리 반항을 해대니 왕으로서는 속이 터져 미칠 지경인 것이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곱게 아비가 시키는 대로 하지 뭔 그렇게 잔말이 많으냐고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왕은 체통을 생각하여 부글부글 끓는 속을 억지로 꾹꾹 눌러 참았다. 그리고는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어 공주를 살살 달래었다.
“얘야, 선이란 자가 어디가 어떻다고 그러느냐? 집안 좋겠다, 인물 좋겠다, 모든 신하들이 하나같이 그자를 천거하며 네 짝이 될 만한 이는 그뿐이라 입을 모았느니라. 게다가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우리 고구려에 상부만한 집안이 어디 있다고 그러느냐?”
“흥! 말도 아니 되옵니다, 아바마마! 요즘 고구려에서 아무리 상부의 권세가 높다하나, 그 위에 왕실이 있는 법! 좋으면 그들이 좋았지, 왜 우리가 좋습니까?”
또 지지 않고 공주가 요리 말대꾸를 하자, 이에 드디어 왕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그 말이 아니지 않느냐! 네가 아무리 공주라 하더라도 나이가 차면 반드시 혼인을 해야 하는 법! 잔말 말고 이 아비가 시키는 대로 하거라!”
“싫사옵니다, 아바마마! 소녀는 시집가기 싫사옵니다. 제발 부탁이오니, 그냥 이대로 궁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소녀는 아바마마 옆에서 평생 함께 하고 싶사옵니다.”
저런! 이 공주 급한 마음에 너무 무리수 뒀다. 처녀가 시집가기 싫다는 거짓 발언에 이어 평생 함께 살고 싶다는 부모 기함할 발언이라니!
사실대로 말하면 이는 공주가 되는대로 지껄여 본 소리에 지나지 않았으나, 듣는 아버지의 입장으로서는 여간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왕은 어쩌자고 공주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게 되기에 이르렀나, 곰곰이 생각하면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왕이 생각키로 평소에 공주가 영 숫기가 없는 것이 남녀의 일에 관심이 없고, 성품이 담백하고 맑아 몹시 아꼈으니, 이는 다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았던 것이다. 게다가 공주가 막상 혼인을 할 나이에 이르고 보니 이는 장점이 아니라 다 단점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왕은 공주가 여자로서 미모를 가꾸고 남자와의 연애에 열을 올리는 대신 오라비인 태자를 본받아 학문에 정진하고 무예를 닦는 데 열심이었던 것을 흐뭇하게 생각했던 자신을 속으로 책망했다.
어차피 궁중의 여인들이야 신분 높은 가문과의 결혼으로 왕실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 전부인 것을! 자신은 뭐 하러 공주가 그녀들과 다른 삶을 사는 것을 기꺼워하며 용인했단 말인가!
왕은 지난날 자신의 태도가 오늘날 일을 어렵게 만든 원흉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속으로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이미 때는 늦어 버린 것을! 왕은 애초에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어 시집가는 딸을 축복해 주려는 마음을 버리고 지금이라도 엄하게 대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허허! 한 나라의 공주란 자가 이 무슨 망발인고? 네가 아무리 어리고 어리석다 하나, 어디서 그런 가당치 않는 말들을 잘도 지껄이는 것이냐? 내 아무리 너를 오냐오냐 하였지만 그것은 불가한 일이니라! 더 이상 왈가왈부할 것 없으니 그리 알고 혼인할 준비나 하거라!”
“아바마마!”
왕의 호통에 공주는 뭔가 항의를 해보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제게 무슨 뾰족한 수가 있어 왕의 마음을 바꾸겠는가? 낙담한 공주는 하는 수 없이 입을 꾹 다물었다.
대신 전략을 바꾸어 이번에는 읍소작전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느닷없이, 공주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부왕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아바마마! 소녀가 잘못하였습니다. 하해와 같은 성정으로 부디 소녀를 용서해 주시와요! 하지만 제발 상부에 만은 시집가라 하지 마옵소서. 부디 소녀를 어여삐 여기시어, 그 선이란 자와만은 혼인하라 하지 마옵소서. 그럴 바에야 차라리 소녀는…….”
공주는 일단 여기서 말을 끊고 억지로 눈물을 짜내려 애썼다. 제발 눈물이란 게 좀 나와 주면 좋으련만! 여기서는 좀 울어야 효과가 사는데 말이야!
“소녀는…….”
공주는 애써 한 번 더 말을 이으려 하다가, 그만 뚝 멈췄다. 왜냐하면 갑자기 어떤 미친 생각이 번개같이 머리를 스쳐 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공주, 그때까지 목숨 줄인 양 꽉 움켜쥐고 있던 부왕의 옷자락을 놓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소녀는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가겠사옵니다.”
옳다구나! 바로 이것이다!
이제야 드디어 우리 공주께서 앞으로 펼쳐질 파란만장 대서사 로망스의 첫 대사를 제대로 읊어 주신 것이다. 이 금쪽같은 대사야말로 능히 평원왕 뒷목잡고 쓰러질 결정적 한 방이니, 우리 공주 이쯤 돼야 아버지 속 꽤나 썩히는 철딱서니 없는 딸 노릇 옹골차게 하는 게 아니겠는가!


공주가 눈을 반짝이며 생긋 웃자, 온달의 맥박이 급격히 뛰기 시작했다.
아무리 공주를 철딱서니 없는 왈가닥 울보라고 스스로를 세뇌해 봐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에게 공주는 완전한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아, 이런 사람을 두고 금지옥엽이라 하는구나! 온달은 글 한 자 모르는 주제에 어디서 얻어들은 사자성어를 속으로 뇌까리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서방님, 이게 해라는 글자이옵니다.”
온달이 그녀를 보느라 정신이 속 빠진 사이 공주가 해 일(日)자를 써서 온달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 바람에 깜짝 놀란 온달이 헉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그걸 본 공주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온달을 째려보았다.
“어디다 정신을 팔고 계시는 것이옵니까? 아무리 공부가 하기 싫어도 그렇지 제가 이렇게 열심인데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아니오, 아니오. 그렇지 않소! 내 공주가 너무 예뻐서 쳐다보느라 그런 것 아니겠소.”
당황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속마음을 말한 온달은 화들짝 놀라며 ‘합!’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져 어쩔 줄을 몰랐다.
공주는 그 모양을 빤히 보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제가 예쁩니까?”
공주가 묻자 온달이 바보처럼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온달은 제 입으로 그런 말을 하고 나니 쑥스러워 감히 공주를 제대로 쳐다볼 자신이 없었다. 해서 공주를 외면한 채 붉게 물든 얼굴로 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한편 이를 본 공주는 예전에 취영루에서 금파와 나누던 대화가 생각났다.
‘이 사람도 사내라 남녀의 일을 안다고 했던가? 그렇다는 것은 어쩌면……!’
공주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래, 어쩌면 서방님에겐 이 작전이 먹힐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온달에게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감지한 공주는 스스로 미끼가 되어 그를 한번 낚아 볼 심산이었던 모양이다.
말하자면 온달의 학업성취도를 높이고자 저를 상으로 내걸겠다는 고런 유치한 발상을 한 것이데……, 아이고야 이 철딱서니 없는 것! 생각하는 것 좀 보게. 남자를 그렇게 우습게 알다니! 너 그러다가 큰 코 다친다.
아무튼 온달을 꼬여 보고자 결심을 단단히 한 공주는 무릎걸음으로 온달에게 바짝 다가갔다.
공주는 그에게 손을 얹고 고양이가 주인에게 하듯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는 온달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긴 속눈썹 사이로 촛불에 일렁이고 있는 공주의 새까만 눈동자를 본 온달은 그만 심장이 덜커덕 하고 내려앉았다.
“전 태어나서 그런 소리는 서방님한테 처음 듣습니다. 정말로 제가 어여쁩니까?”
아, 이 귀여움이라니! 공주의 애교에 혼이 쏙 빠진 온달은 좋아서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은 공주는 온달의 무릎 위로 기어가 앉으며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그의 입술에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추었다.
그런 짓을 하자니, 왠지 속이 울렁거리면서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만 이것도 다 처음이라 그런 것이고, 혼인을 한 이상 언젠가는 경험해 볼 일이라 생각하며 꾹 참았다.
온달이란 놈은 느닷없이 공주가 그런 행동을 하자, 기겁을 한 나머지 몸이 굳어 버렸다. 하긴 공주한테는 이 소심하고 수줍은 낭군이 입맛에 딱 맞았을 것이다. 그녀는 겁도 없이 이 분야에 대해 가진 지식을 총동원하여 그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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