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주선으로 정혼을 하게 된 운교와 소윤.

원하던 바는 아니었으나 소윤은 이를 계기로

평생의 소원이었던 세상 구경을 하기 위해 꾀를 내고

운교에게 깜찍한 제안을 한다.

그녀의 미색에 놀라고 당찬 모습에 반한 운교는 이를 수락하고,

초야도 치르지 않고 신행길을 빙자한 세상구경을 떠나게 되는데……

“내 부인에게 살짝 변칙을 쓰려 하오. 이 사람이 부인을 여인으로 볼 수 없다면, 부인께서 이 사람을 사내로 느끼시게 만들면 되지 않겠소?”

아무리 남장을 하였으나 감출 수 없는 그녀의 고운 미색에 운교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고,

그녀와의 약조를 지키며 본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계획을 짜는데……

부부이지만 부부일 수 없는 운교와 소윤의 알콩달콩 조선시대 썸 타는 이야기.

그들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본문 내용 중에서]

“소녀가 어찌 무례함을 무릅쓰고 나리를 뵙고 싶다 청하였는지 궁금치 않으시옵니까?”

“궁금타 하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물론이지요.”

“그래, 그 연유가 무엇입니까?”

“소녀, 나리와 모종의 거래를 하고 싶사옵니다.”

당돌하게 눈을 마주쳐오며 거래를 하고 싶다는 소윤의 말이 흥미로운 모양, 운교의 한쪽 입술이 무언가 끌어올리듯 스윽 말려 올라갔다.

“그래, 이 사람과 어떤 거래를 하시고 싶으신 것입니까?”

“먼저 나리께서 이 거래에 응하실 마음이 있으신 지에 관한 것부터 말씀해주시는 것이 순서가 아닐는지요?”

“어떤 종류의 거래인지도 알 수 없이 말입니까?”

“절대 나리께 해로운 거래는 아니옵니다. 어쩌면 훗날을 생각하면 실보다 득이 많은 거래이지요.”

“실보다 득이 많은 거래라…….”

소윤이 했던 말을 되씹는 척 짐짓 심각하게 중얼거리며 운교는 저도 모르게 얼굴 가득 올라오는 즐거움을 감추었다.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담대하고 당돌하기까지 한 소윤 때문에 즐거워 미칠 지경이었던 것이다.

왕의 명이라 아무 소리 못하고 응한 혼인이었고, 다른 양반들이 그러하듯 저도 그저 타인보다는 조금 가까운 이로, 사랑보다는 정으로 살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어쩌면 이 사람과 함께라면 조금 다른 기대를 해보아도 될 것만 같았다. 그 기대는 운교의 머리를 타고 내려가 가슴을 휘젓고 단전 부근에서 하나로 뭉쳐 그대로 묵직하게 고였다.

“장사치는 아닙니다만, 실보다 득이 많은 거래에 응하지 않는 것은 기껏 거래를 제안한 낭자에게 실례가 아니겠습니까.”

“응하시겠다는 말씀이시옵니까?”

“그렇습니다. 어디 들어나 봅시다.”

“송구하오나, 나리. 들어나 보자는 마음이시면 소녀 가진 패를 모두 드러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하! 이런……. 좋습니다. 진지하게 거래에 응할 터이니 낭자가 가진 패를 모두 보여주시지요.”

흥정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운교는 이제 기꺼운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웃으며 흔쾌히 거래에 응할 것임을 밝혔다. 그러자 소윤이 정자 아래에서 처음 보았을 때처럼 정면에서 눈을 마주쳐오며 가만히 앵두 같은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녀, 혼례 올리고 임영까지 우귀 하는 길을 걸어서 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지금 무어라 하시었소?”

“들으신 그대로 이옵니다. 소녀, 오백리가 넘는 길을 꽉 막힌 가마에 앉아 바깥풍경 하나 보지 못한 채 답답하게 가고 싶지 않습니다. 나리께서 이 두 발로 당당히 걸어 임영까지 갈 수 있게 해주셔요.”

“어찌 그 먼 길을 걸어가시려는지 물어도 되겠소이까?”

“흔히 반가의 여식을 농중조에 빗대는 것을 아시지요? 그 말 그대로 평생을 꽉 막힌 담장 안에 갇혀 살아야하는 조선의 여인은 제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이 땅의 백성들이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지요. 하나, 소녀는 알고 싶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 나라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흠…….”

“서방님 마음이 열이라면 온전한 열을 다 바라옵니다. 열이 아니라면 아홉도, 하나도 필요치 않습니다.”

“이 사람이 거짓을 말할 수도 있소. 하나를 주고도 열을 주었다고 부인을 속일 수도 있단 말이오.”

“그런 거짓을 눈치채지 못하는 여인은 없습니다. 가슴에 품은 정인의 마음이 제게 온전히 쏟아 부어지지 않음을 모른다는 것은, 아마 그 여인 역시 정인을 온 마음으로 은애하지 않기 때문일 터이지요.”

“하면 이 사람의 마음이 온전히 열, 모두 간다면 부인의 마음은 얼마나 주시는 게요?”

“당연히 열이지요.”

뜻하지 않았던 소윤의 말에 운교의 눈빛이 짙어졌다. 소윤의 마음 열 가운데 열 모두가 자신에게로 온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벅참으로 뛰는 가슴 때문에 운교는 무어라 대답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운교를 말끄러미 바라보던 소윤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헤아려보시고 말씀해 주십시오. 이왕이면 임영에 도착하기 전에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소첩도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 저…….”

“이만 움직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늘도 갈 길이 먼데 너무 많이 지체했습니다.”

운교의 말을 자른 소윤이 부산스럽게 잘 묶여있는 갓끈을 만지작거리며 길 떠날 차비를 서둘렀다. 운교는 그런 소윤을 향해 일어서 정면으로 마주섰다.

“하나만 묻겠소.”

“무엇이…….”

“이 마음을 전부 다 부인께 드리면, 부인의 마음 또한 모다 이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 확실하오?”

“아무리 수염 나지 않는 계집이라 하나, 지아비를 상대로 허튼 소리를 지껄일 정도로 물색없지는 않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말이오?”

“……예.”

[프로필]

이희정

8월 23일생.

감정기복이 심한 전형적인 B형.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은 사람.

출간작

[모전여전] [복남이 이야기] [녹우綠雨] [쎄시봉!] [사랑 뒤의 사랑] [극기에 대한 맹세]

[Till Love] [춘화연애담] [라디오 스캔들] [사돈 對 사돈] [비애妃愛] [교동연가]

[The Moment]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애루화] [선남, 선녀] [수작] [햇빛우물]

[아삼삼한 연애] [DITTO 동감] [님아恁我]

[목차]

-1권-

序. 緣談(연담)

01. 祈望(기망)

02. 發覺(발각)

03. 布石(포석)

04. 去來成立(거래성립)

05. 婚禮(혼례)

06. 淏雲과 淡湖(호운과 담호)

07. 氣爭(기쟁)

08. 感應(감응)

09. 男女相悅之詞(남녀상열지사)

10. 雨中戀人(우중연인)

11. 莫上莫下(막상막하)

12. 逢變(봉변)

13.溺愛(익애)

-2권-

14. 勞心焦思(노심초사)

15. 初夜(초야)

16. 對面(대면)

17. 花樣年華(화양연화)

18. 芝蘭之交(지란지교)

19. 告白(고백)

20. 波瀾(파란)

21. 計網(계망)

22. 混沌(혼돈)

23. 攻防(공방)

24. 愛憎(애증)

25. 寬容(관용)

26. 心中人(심중인)

終.

-합본-

序. 緣談(연담)

01. 祈望(기망)

02. 發覺(발각)

03. 布石(포석)

04. 去來成立(거래성립)

05. 婚禮(혼례)

06. 淏雲과 淡湖(호운과 담호)

07. 氣爭(기쟁)

08. 感應(감응)

09. 男女相悅之詞(남녀상열지사)

10. 雨中戀人(우중연인)

11. 莫上莫下(막상막하)

12. 逢變(봉변)

13.溺愛(익애)

14. 勞心焦思(노심초사)

15. 初夜(초야)

16. 對面(대면)

17. 花樣年華(화양연화)

18. 芝蘭之交(지란지교)

19. 告白(고백)

20. 波瀾(파란)

21. 計網(계망)

22. 混沌(혼돈)

23. 攻防(공방)

24. 愛憎(애증)

25. 寬容(관용)

26. 心中人(심중인)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