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이거 어디에 둘까요? 소품 팀에서 부러질까봐 준비를 많이 해 놨다는데 오늘 빡세게 굴러야 할 거 같은 데요.”'“일단 한쪽으로 치워 놔. 애써서 준비해 준 거니까 네가 한쪽으로 놓고 잘 지키고 있어. 괜히 다른 소품들하고 나중에 섞이면 촬영만 지연되잖아. 그런 건 우리가 챙겨야지.”'후배 영민이 묻자 칼집에서 칼을 빼내며 창기가 대답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영락없이 무시무시하게 번쩍이는 그 칼을, 창기는 칼날보다 더 날카로운 눈빛으로 살피며 닦고 있었다. 오늘은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창기에게 두 개의 칼이 준비되어 있었다. 하나는 직접 적과 싸울 때 쓸 칼로 날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 그가 살피는 칼은 현실감 있는 화면을 위해 준비된 실제 검에 가까운 위험한 칼이었다. 잠깐 고개를 돌리자 많은 스태프들이 오가는 것이 보였다. 이층 구조에 넓은 홀이 있는 이 호프집을 갑작스럽게 섭외하느라 애썼다고 조감독이 말하는 걸 들었는데 장면에 나오지 않는 곳에 비닐을 붙이고 바닥 긁힘을 방지하기 위해 소품용 카펫을 까는 등 무척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한쪽에서 배우는 분장을 계속 고치고 있었고 문 앞에서는 스턴트맨들끼리 모여 긴장감을 풀기 위해 슬쩍 몸 장난을 치고 있었다. 창기는 다시 한 번 가게를 돌아봤다. 맥주를 파는 호프라기보다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분위기여서 그도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그때 영화감독이 창기에게 다가왔다.'“이번 장면이 중요한 건 알지? 나중에 주인공을 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장면이라 아주 중요해. 창기 씨가 수고 좀 해 주고. 그렇다고 너무 제대로 하면 큰일 난다. 이 호프집 섭외하는데 애 좀 먹었거든. 수리는 각오하고 있지만, 알지? 요즘 영화계가 상황이 안 좋아서 맘껏 하도록 해주고 싶어도 그러기 힘들잖아. 준비된 테이블은 소품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말이야. 근데 이수 감독은 창기 씨 있다고 오늘은 와 보지도 않네.”'웃으며 감독이 친근하게 말하자 창기도 웃으며 대답했다. '“감독님께서 촬영이 겹치게 됐는데 오늘 저쪽 현장이 애들만 보내기에는 너무 위험한 추격 신 촬영이어서요. 제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알아요. 그냥 창기 씨를 믿는다는 말이지. 그럼 수고 좀 해 줘요.”'두 번째 같이 일하는 영화감독이라 창기 또한 그 감독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다. 이수 무술 감독이 와 봐야 하지만 창기의 실력을 두 감독이 믿고 있으니 다른 영화 촬영장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칼을 다시 꺼내 수건으로 닦기 시작했다. 스턴트맨이란 직업을 시작할 때부터 촬영 전이면 손에 들게 될 소품을 계속 닦거나 손에 꼭 쥐고 있는 그의 징크스 같은 버릇이 무의식중에 오늘도 창기로 하여금 날카로운 칼을 계속 닦게 하고 있었다. MP3에서는 너바나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창기는 그 음악 속에 언제나처럼 빠져 들고 있었다. 그때 신출내기인지 연출부 조감독이 지나가다 창기의 번쩍이는 칼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창기는 속으로 피식 웃고는 바로 찍게 될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 보고 동선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때 후배 영민이 다가와 창기 옆에 털썩 앉았다.'“선배, 살살 좀 해 줘요. 내가 선배랑 찍고 나면 꼭 물리치료 다니는 거 알죠? 어떻게 감독이 큐 사인만 하면 동료, 선배 뭐 이런 걸로는 안 보이나? 그냥 한순간 사람이 변하면서 우리를 몰라봐요.”'“연습한 대로 맞춘 대로 하기만 하면 되잖아. 합은 괜히 짜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가서 아까 짜 놓은 합이나 애들하고 다시 맞춰 봐. 저기 애들 긴장하고 있는 거 안 보여? 그리고 인마, 너 또 손톱 뜯었지. 그 버릇 안 고칠래?”'“그게 잘 안 돼요. 고치기는 해야 하는데…… 전보다 긴장을 안 하는데도 그래요.”'“우리들 하는 일의 특성상 징크스 같은 건 이상한 게 아니지만 그래도 인마, 너도 나이가 있고 연차가 있는데 손톱이 망가질 때까지 뜯고 있으면 어쩌냐? 다른 사람들이 볼 땐 우린 천하무적이야. 천하무적.”'“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