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가 몰아치는 오후였다. 절벽에 면해 있는 성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흡사 수직으로 솟구친 땅을 두들겨 부수려는 듯 파도가 철썩거렸고, 땅은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기이한 소리를 냈다. 바다와 닿아 있는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가득하고, 날카로운 칼날 같은 비가 바닷물을 후려쳤다.'어린 소녀는 파르르 떨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성 안은 고요했다. 폭풍우의 요란한 소리 때문인지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는 것 같지 않다. 하인들조차 하나 보이지 않았다. '“엄마.”'소녀는 천천히 엄마의 방으로 다가갔다. 동생을 낳은 이후로 엄마는 계속 아팠다. 아무도 엄마의 방 근처에 가지 못했고, 새로 태어난 동생을 보여 주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성 안의 술을 전부 바닥내려는 것처럼 마셔 댔다. 하인들은 저주를 받았다고 속삭였다. 새로 태어난 아이는 다리 대신 물고기 같은 꼬리가 달려 있다고 했다. '“엄마아.”'소녀는 커다란 문을 간신히 밀고 안으로 들어갔으나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온통 소금기만이 가득하다. 바깥의 바다에서는 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이것은 전혀 다른 냄새였다. 훨씬 더 이국적이고, 머리가 어지러울 만큼 달콤한 냄새였다. '소녀는 엄마의 커다란 방을 천천히 걸어다니며 방금 전까지 누군가가 누워 있었던 것처럼 흐트러진 침대보를 건드려 보고, 화병에 꽂혀 있는 시든 꽃을 만지다가 그 옆에 있는 보석함을 슬쩍 열어 보았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실망해서 방을 나가려는데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렸다. 폭풍우의 거센 소리를 가르고 남자의 격한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네가, 네가!”'소녀는 눈을 깜박였다. 아버지의 목소리다. 그녀는 후다닥 엄마의 방에서 나와 고함 소리가 들리는 방으로 뛰어갔다. 방문은 열려 있었다. 발코니로 나가는 커다란 문 역시 열려서 빗줄기가 고스란히 들이치고 있었고, 흠뻑 젖은 양탄자 위에 아버지가 기묘하게 새파란 얼굴을 하고 드러누워 있었다. 창백한 얼굴을 한 엄마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엄마의 뒤에는 크고 초록빛의 해초 같은 머리카락을 한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남자의 기묘한 회색빛 팔이 엄마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로리.”'소녀는 눈만 깜박거리고 서 있었다. 소녀의 발 밑에서 뭔가가 파닥거렸다. 은빛으로 빛나는……'아기. '조그마한 아기에게는 보통의 발 대신 하인들이 수군거리던 것처럼 은색의 비늘로 뒤덮인 꼬리가 달려 있었다. 가끔 성 뒤쪽으로 사람들이 갓 잡은 물고기를 들여올 때 본 것처럼 아기는 바닥에서 미친 듯이 몸을 비틀고 있었다. '“아가.”'엄마가 손을 내밀었지만 남자의 팔은 단단하게 엄마를 붙들고 있었다. 엄마는 슬픈 눈으로 바닥에서 뒹구는 아기와 미동도 하지 않는 아버지, 그리고 소녀를 차례로 본 다음 몸을 돌렸다. 남자가 엄마를 껴안았고, 발코니 문으로 들이치던 비가 커다랗게 원형을 이루더니 갑자기 엄마와 남자가 사라져 버렸다. '소녀는 천천히 쓰러져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버지의 두 눈은 무언가를 노려보는 것처럼 부릅뜨고 있었고, 입은 반쯤 벌어져 있었다. 얼굴은 푸르스름하고 온몸이 단단히 굳어져 있다. 그리고 숨을 쉬지 않았다. 계속해서 비가 들이치고, 천둥이 으르렁거리고, 아버지는 흠뻑 젖은 채 그냥 그렇게 누워 있을 뿐이었다. 파닥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리고, 조그만 아기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새까만 눈이 그녀를 응시하고 있다. '소녀는 일어나서 아기에게 다가갔다. 아기는 숨을 쉴 수 없는 것처럼 할딱거리고 있었다. 꼬리는 차갑고 미끄러웠고, 조그만 가슴이 들먹인다. 등 뒤에서는 물고기와 똑같은 조그만 아가미가 벌어졌다가 닫히고, 다시 벌어졌다.'소녀는 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