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정주(鼎廚 : 부엌) 한 칸과 방 하나가 고작인 초가집 한 채. 마을에서 좀 떨어진 이 작은 오두막에선 눈먼 딸과 심마니를 하는 노인이 거주하고 있다. 앞 못 보는 딸이 항상 마음에 걸려 죽지도 못하고 그저 긴 한숨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노인의 손엔 빈 숟가락만이 쥐어져 있었다.

“또 왜 그러셔요.”

“아, 아니다…… 어서 한술 들 거라.”

노인의 한숨이 마음에 걸리는지 그의 딸은 조심스럽게 손으로 초라한 밥상을 더듬어본다. 그리고 자신 앞에 수북이 올라온 밥그릇을 만지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버지. 또 쌀 떨어진 거죠…….”

“아, 아니다. 식기 전에 어여 먹어.”

노인의 말에 그녀는 늘 그랬듯이 밥상을 돌려 손으로 노인의 그릇을 더듬어 텅 빈 걸 확인한 후 긴 한숨을 털어냈다.

“또 이러신다.”

못마땅한 듯 입꼬리를 틀어버린 그녀는 밥상을 다시 돌려 더듬더듬 수저를 잡은 후 수북한 자신의 밥을 반 뚝 떼어 노인의 빈 밥그릇에 넣어 주었다.

“어허…… 이 아비는 배 안 고프다니까. 어서 너나 많이 먹으려무나. 난 있다가 삼돌이 오면 주막거리 가서 탁배기 한 사발 하면 된다.”

“이 밥을 다 먹었다간 하루 진종일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거예요. 자요. 어서 같이 드세요. 온종일 이 여식이 걱정하는 거 보고 싶으세요?”

딸이 내민 수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노인의 입가엔 약간의 한숨이 달랑거렸다. 산삼을 캐기 위해 나간 자신을 저녁까지 기다리려면 반이나 덜린 밥으론 허기가 질 게 뻔했기에 마지못해 받아든 수저에 한없이 미안함을 담아 한술 떠 간신히 입에 물었다.

“어르신.”

때마침 문밖에선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삼돌인 게야?”

“예, 어르신.”

“알겠네. 금세 나감세.”

늘 자신과 함께 산을 타주는 삼돌이란 청년이 오자 노인은 딸이 퍼준 밥을 다시 그녀의 그릇에 담아주더니 황급히 봇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견화야, 아비 금세 댕겨올테니 문 단단히 잠그고 있어라.”

“아, 아버지. 식사는 하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을 열고나선 노인 탓에 벽을 더듬으며 황급히 그 뒤를 따라 문밖을 나서던 견화는 그만 문턱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그런 그녀를 삼돌은 가파른 산을 타며 다져진 단단한 팔로 재빨리 부축해주었다.

“견화야, 그렇게 급하게 나오면 다치잖느냐.”

“아…… 오라버니…….”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자신의 실수로 그의 품에 쓰러질 때면 살덩인지 돌덩인지 모를 단단함에 놀라곤 했다. 싸늘한 가을 날씨 탓에 옷을 두툼히 입었어도 불필요한 살덩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그의 몸뚱이는 꼭 들판을 내달리는 야생마를 껴안은 듯 그 탄력에 튕겨 나갈 것만 같았다. 아무리 마을과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사내 품에 혼례도 안 치른 처자가 안긴 꼴은 좀 보기 흉했다. 붉게 달아오른 뺨을 감싸며 황급히 삼돌의 팔에서 벗어난 견화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돌렸다.

“미, 미안해요. 또 주책없이 오라버닐 난처하게 했네요.”

“미안하기는…….”

견화가 빠져나간 품이 허전했던 삼돌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돌리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말은 안 해도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노인은 내심 마음이 놓이는지 옅은 웃음과 함께 걸음 떼었다.

“해가 중천이다. 해지기 전에 오려면 어서 나서야지.”

“아, 예, 예, 어르신…….”

노인의 말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이던 삼돌은 잘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떼면서도 견화가 마음에 걸려 자꾸만 뒤돌아보았다. 그러다가 가던 걸음을 돌려 다시 그녀에게로 다가와 손을 덥석 잡아 쥐었다.

“문단속 잘하고 있어야 한다? 또 그놈의 윤 도령 패거리들이 찾아와 행패 부릴지 모르니. 알았지?”

“걱정 말고 아버지 잘 부탁드려요.”

“그건 걱정은 말고 내 이번에 꼭 좋은 놈 찾아서 널 꼭 꽃가마 태워 줄 터이니 기다려다오 알았지?”

처음으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길을 떠나려 하는 그에게 견화는 대답 대신 부끄러운 듯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자신의 환한 미소가 보일 리 없겠지만, 그래도 더욱 큰 미소로 화답을 해 주었다. 그렇게 벅찬 가슴을 끌어안고 노인을 따라 산에 오른 삼돌은 눈에 불을 켜고 산삼을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