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 소개

그 남자의 진실을 사랑한 여자.

그리고 알 수 없는 옛 기억부터 그녀를 사랑한 남자.

거액의 빚에 떠밀려 계약결혼을 하게 된 서희.

그녀의 남편은 냉정한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한 선우휘이다.

결혼식 당일, 그의 형수이자 그의 연인이라 주장하는 차민주가 나타나 서희의 마음을 어지럽히는데…….

서희는 자신을 향해 의기양양한 웃음을 짓는 여자를 보며 마주 웃었다.

‘내가 택했다면, 책임도 내가 져. 후회 안 해.’

그녀의 마음이 다짐으로 단단해졌다. 우선 당장은 이 무례하고 막돼먹은 여자 앞에서 나약한 꼴을 보일 수는 없었다.

“나가줘요. 입장할 시간이에요. 신랑이 여기로 올 텐데, 당신이 사랑한다는 남자가 다른 여자 손잡고 식장으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볼 건가요? 정말 비참하겠어요. 아! 걱정 마요. 난, 시부모 사랑 받을 거예요. 물론, 내 사랑하는 남편 사랑이 빠지면 안 되겠죠.”

당신 따위 끼어들 틈도 없게!

2. 작가 소개

이서윤

착실한 직장인에서 일탈을 꿈꾸고파 글을 시작한

소심쟁이.

꿈은 이뤄진다(夢想成眞)라는 믿음을 가진

낭만주의자.

해피엔딩이 좋아 로맨스를 쓰는

해피엔딩 마니아.

작가연합 ‘깨으른 여자들’에서 활동.

iseoyun@daum.net

▣ 출간작

안개 속에 숨다

왈가닥 결혼하다

태양의 제국

프레지던트

매화우

비연

독감

해후

효월

매혹의 포획자

비애 外

3. 차례

프롤로그

01.

02.

03.

04.

05.

06.

07.

08.

09.

10.

11.

12.

13.

14.

15.

16.

번외 : 그때, 봄날

4. 미리 보기

사파이어홀 입구에 서 있는 한 쌍의 봉황을 조각한 얼음조각에는 오늘 낮 시간에 결혼할 남녀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호텔 직원들조차 오늘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주인공들의 이름이다. 오늘처럼 많은 재계 인사들의 화환이 도착할 정도라면, 결혼식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알고도 남을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오늘의 주빈들은 신부는커녕 신랑의 이름조차 그들에겐 생소한 인물인 까닭이다. 부지런히 홀을 들락거리며 진행 준비를 하던 한 스태프가 동료에게 슬쩍 귀엣말을 했다.

“오늘 신랑이 누구야?”

“글쎄, 무슨 변호사라던데? 인수합병 전문가란다. 능력이 좋은가 봐. 오너들이 그 사람 눈치 엄청 본단다. 저 화환들 좀 봐라. 초대 안 해서 못 왔을 뿐이지. 선우휘란 사람 들어봤어?”

“선우휘? 어머! 그 사람 결혼이야?”

“왜?”

처음 궁금하다며 묻던 그녀는 들고 다니던 무전기까지 팽겨 칠 정도로 호들갑을 떨다 매니저의 눈치에 혀를 쏙 내밀었다. 다시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휘유, 거물이네. 좀 썩어빠진 거물이긴 하지만 매력적인 인간이긴 하지.”

“뭐가 썩어?”

“왜 있잖아. 그 사람 냉정한 건 이 바닥이 다 안다.”

“그게 왜? 냉철하고 좋은 거 아냐?”

“으이그. 신문이랑 뉴스 좀 보셔. 돈 벌레에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으로 나오지.”

“스크루지야?”

“뭐? 호호호. 무슨! 이렇게 젊은 남자가. 명색이 변호산데…….”

“그럼?”

홀의 한 구석에서 소곤대는 그들의 대화는 그칠 것 같지 않았다. 다시 낮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인수합병 전문인데, 회생 가능성이 있는 회산데도, 그냥 구조조정해서 해외에 매각해버리고, 피도 눈물도 없다고 소문이 나서 말이야. 그렇게 잘린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참! 얼마 전에 스캔들 나서 여성지에 한번 실렸어. 그때도 쫌 그랬다.”

“왜?”

“원래 이 남자 그런 쪽으론 칼이었거든. 근데, 쫌 지저분한 소문이 났었어.”

“뭐가? 점점 모를 소리네.”

“미망인인 형수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흠, 근데 결혼한다는데 아닌가 보다. 아깝다.”

“야, 근데 넌 어떻게 다 알아?”

“키키! 이 사람, 비연예인 인기순위 짱이다. 너 이 사람 엑스파일 도는 것도 모르지.”

“그건 또 뭐야?”

“있어. 스토커 비슷한 여자들이 수집한 선우휘 정보파일. 그나저나, 결혼한다잖아. 오늘 슬프다. 그 사람 신부는 얼마나 행복할까. 흑!”

홀 서빙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던 스태프들조차 소곤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쏟아지는 화환과 쌓이는 선물들에 비해, 양가의 초대손님은 중간 규모급 홀인 사파이어 홀을 넉넉하게 쓸 만큼 소수였기 때문에 여유로웠기 때문이다.

서희는 지금, 자신의 몸이 굳어 있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다. 결국, 자신은 신부 입장만을 기다리며 다소곳이 신부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서희야!”

끝까지 함께 있으며 헬퍼를 해주는 친구 혜선이 그런 서희를 눈치 채고 물었다. 그녀는 유독 긴장한 듯, 석고상이 되어 있는 친구가 걱정스러운 터였다.

“야, 너 정말 청심환이라도 먹었어야 되는 거 아냐? 왜 이리 굳었어? 두 번 결혼했다간 정말 애 잡겠네. 넌 오늘 최고로 행복해야 되는 신부란 말이야. 누가 보면, 니네 신랑 도둑인 줄 알잖아.”

“어? 어!”

서희는 혜선에게 억지로라도 웃음을 지었다. 생애 처음으로 남에게 맡겨 화장을 한 그녀의 입가가 바르르 떨렸다.

‘그래. 나는 지금 가장 행복한 신데렐라다. 웃어야 한다. 내 행운에 웃고, 행복에 웃음 지어야 하는 거겠지. 후!’

하지만, 하마터면 한숨을 내쉴 뻔했다. 자신도 모르게 올라온 근심이 그녀를 생각과 달리 석고상처럼 굳게 만들었다.

“서희야. 아무래도 니가 종일 굶어서 그런 거 같아. 아까 미용실서 뭐라도 먹을걸 그랬다. 아직 시간 좀 있으니까 내가 간식거리라도 찾아올게. 아니, 청심환 사다 줄까?”

서희는 연신 자신의 안색을 살피며, 안절부절못하는 혜선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워 설핏 웃음을 지었다.

“아니, 괜찮아. 너나 얼른 가서 뭐라도 먹고 와. 괜히 따라다니다 굶을 수도 있어.”

“그래도. 흠……. 그래, 나 배고프면 성격 나빠지니까. 얼른 갔다 올게.”

억지로 혜선을 신부대기실에서 내보낸 후, 서희의 얼굴을 굳게 하던 긴장감이 일순 풀렸다. 온몸을 딱딱하게 만들던 긴장감이 툭 풀리니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는 하얀 장미부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대기실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보았다. 모두 낯설다. 웨딩부케도, 웨딩드레스도. 스스로의 모습조차 생전 처음 본 타인의 것인 양,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베일을 내린 모습은 그림 같을 뿐이었다. 스퀘어 네크라인의 드레스를 입고 드러난 목 위에 걸린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도 잘못 달린 듯 낯설기만 했다. 예물로 신랑 측에서 보내온 선물이었다.

결혼.

하지만, 분명 그것은 현실이고,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결혼이다.

“후!”

긴장을 풀기 위해 깊은 한숨을 내 쉰 그녀에게 이젠 서서히 담담함이 들어찼다.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을 보며 끊임없이 주문을 외웠다.

‘사랑해. 나는 지금 사랑하고 있다. 사랑 없이 결혼을 어떻게 해. 그치 서희야?’

정말 거짓말처럼 점차 떨리지도 두렵지도 않게 되었고, 담담해졌다. 적어도 어느 선까진 분명 견딜 수 있다. 신부입장이 잠시 남은 시간, 신부대기실로 그 여자가 들어 서기 전까지는…….

신부대기실로 눈에 띄게 아름다운 여자가 들어섰다. 늘씬한 키, 그에 어울릴 만한 육감적인 몸매, 그리고 나이를 가늠키 어려운 동안이다. 어찌 보면 소녀 같은 앳된 얼굴에 눈매가 서늘해서 눈이 가던 그 여자가 차민주라는 사실을, 서희는 그녀가 대기실에 들어서자마자 알아차렸다.

“이렇게 꾸며놓으니 서희 씨도 예쁘군요.”

신부화장을 한 그녀보다 더 완벽한 화장을 한 민주에게선 짙은 향수 냄새가 폴폴 날렸다. 난데없는 그녀의 등장에 서희는 처음엔 의아함을 느꼈지만, 시간이 갈수록 식장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뿐이다. 아니, 그 전에 손에 들고 있던 부케라도 그녀, 차민주에게 던져버리고 싶었다.

“먼저 결혼 축하한다 해야겠죠?”

“차 비서님이 어, 어떻게…….”

“이런 걸 인연, 아니 악연이라 하나? 아! 난, 공식적으론 이 집안의 첫째 며느리예요. 뭐, 자세한 내막까지 알 필요는 없겠지만. 후후! 근데 말이야! 김진석 사장님 따님께서 선우 집안과 결혼을 하신다? 아버지 어머니 안 계시니, 혼자서 이런 결혼 결정도 하고 좋네요. 뭐, 어때요. 이미, 반상의 구별은 없어진 지 오래잖아. 그런데 현성 씨는 당신이 오늘 결혼한다는 사실이나 알까?”

서희의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굳어갔다. 차민주, 그녀의 차갑다 못해 얼음이 박힐 것 같은 말투가 비수가 되어 꽂힌다. 그녀는 미림그룹 회장의 개인 통역비서로 현성의 먼 친척뻘 되는 여자였다. 서희도 몇 번의 안면으로 그녀가 낯설지 않았다. 당신이 내 형님이라고?

“아! 그건 중요치 않겠지. 그것보다 난, 지금 당신한테 알려줄게 있어 왔으니까. 아니, 경고라고 해두죠.”

그녀는 당당했다. 서희는 차민주, 그녀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도 지금 알았고, 더욱이 그 남자에게 형이 있다는 소리도 처음 들었다. 게다 형수가 있었다는 얘기도, 더욱이 그 형수가 차민주라는 사실도 결혼식을 앞둔 지금까지 듣지 못한 내용이다. 자신을 선우 집안의 첫째 며느리라 소개한 여자는 도도한 눈빛으로 서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희는 놀람을 맘속으로 감춘 채 그림처럼 앉아 있을 뿐이었다.

“당신이 오늘 결혼할 남자, 선우휘. 그 사람 내 남자예요.”

그녀는 또박또박 자신의 할 말만 서희에게 내뱉었다. 경악으로 변하는 그녀의 눈빛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훗! 그렇게 혐오스런 눈빛으로 보지 마. 우린 인습, 관습 따위 무섭지 않으니까. 그런 것 생각했으면, 지금까지 오지도 못했어요. 잘 살아요. 여잔 남편 사랑 못 받아도 시부모의 사랑으로도 살 수 있죠. 그게 여자예요.”

“무슨…… 의도예요? 여긴 내 결혼식장이예요. 왜 하필이면 지금 나타나서 그런 말을 하죠? 그것도 나한테! 당신 남자? 이보세요. 지금 뭔가 착각하시는 것 아닌가요?”

“후후. 넌 나보다 더 지독한 인간이군. 한 남자의 순애보도 묵살하고 결혼하는 주제에 말이야. 현성이가 알면 어떨까? 지금이라도 뛰어오지 않을까? 당신 하나 맘 돌릴 때만 기다리는 남자인데…….”

“함부로 말하지 마요. 당신한테 현성 오빠와 내 사이를 설명해야 할 이유 못 느껴요. 왜 이러는지 모르지만, 그만 나가줘요.”

서희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말한 선우휘, 물론 그 남자가 지금 자신의 남편이 될 사람이라는 것은 그녀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비록 결혼하는 지금 이 순간까지 세 번밖에 보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서희의 심장이 불이 붙은 듯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여자는 그 남자가 자신의 남자라 공공연히 표명했다. 서희는 자신의 목소리가 자꾸만 갈라지는 것 같았다. 제발, 이 이상한 여자 앞에서 끝까지 꼿꼿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기를……. 서희는 마음속으로 바랐다.

“풋! 말했잖아. 선우휘가 내 사람이라고 말이야! 난, 당신이 보기만큼이나 똑똑하리라고 생각해. 현성일 현명하게 처리했던 만큼.”

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서희의 표정 같은 건 살피지도 않고 붉은 입술을 놀릴 뿐이었다.

“원하는 게 뭐예요? 내가, 이 결혼을 포기하기 바라나요? 내가 당신 말을 믿을 것 같아요?”

서희는 애써 용기를 냈다. 그녀의 말 같은 것은 믿고 싶지도 않을 뿐.

“글쎄. 그럴 용기나 있을까? 후후. 믿지 않아도 나는 상관없어. 한 가지 알려줄까? 신랑 손잡고 입장할 때, 혹시 그 남자 와이셔츠에 립스틱 안 묻었나 확인하라고. 방금 전까지 내가 그와 무엇을 했을까? 바로 이 호텔 스위트룸에서 말이야.”

비웃듯이 눈빛을 반짝이며 그녀는 놀라 눈이 커지는 서희를 바라봤다. 그대로 말을 이어갔다.

“뭘 했을까?”

서서히 곁으로 다가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이브를 유혹하는 뱀의 그것과 같았다.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서희의 귀에 속삭였다.

“그 남자가 날 가졌어. 뜨겁고 열렬하게 말이야! 아! 그 남자가 어떤 줄 아마 넌 모를 테지.”

허헉!

서희는 거친 숨을 들이켰다. 일상 대화를 하듯, 편안히 그 얘기들을 풀어놓는 그녀의 붉은 입술이 눈앞에서 춤을 추는 듯했다. 허헉, 허헉! 자신도 모르게 답답한 가슴을 손으로 누르던 그녀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져 갔다.

‘아아!’

자신만 모르던 수면 밑 진실, 이것이었나. 서희는 가만히 숨을 골랐다. 뛰는 가슴을 그것으로 진정시켰다. 두서없이 나타나 붉은 입술을 놀리는 그 여자 앞에서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뭔가 잘못 아신 것 같아요.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죠. 그건 본인께서 더 잘 아실 텐데요? 우린 서로 사랑해요. 정말 제 형님이시면, 조용히 가족석으로 가주세요.”

“후후! 나, 명색이 선우 집안 맏며느리였어. 내가 시모를 모를 줄 알아? 너 시모한테 무슨 빚을 진 거지? 이봐, 김서희! 이 결혼하면, 시모가 한 재산이라도 떼어준다 했니? 집안이 몰락하면 자존심도 없어지는 거야?”

머리가 지끈지끈 터질 것 같았다. 앙칼진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사기 그릇 깨지는 소리와 같이 그녀의 뇌리를 울렸다. 지금이라도 자신이 꼭 쥐고 있는 장미부케를 그 여자의 얼굴에 내던지고 뛰어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감정을 그녀는 자신의 안으로 눌렀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금은 버틸 것이다.

서희는 자신을 향해 의기양양한 웃음을 짓는 여자를 보며 마주 웃었다.

‘내가 택했다면, 책임도 내가 져. 후회 안 해.’

그녀의 마음이 다짐으로 단단해졌다. 우선 당장은 이 무례하고 막돼먹은 여자 앞에서 나약한 꼴을 보일 수는 없었다.

“나가줘요. 입장할 시간이에요. 신랑이 여기로 올 텐데, 당신이 사랑한다는 남자가 다른 여자 손잡고 식장으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볼 건가요? 정말 비참하겠어요. 아! 걱정 마요. 난, 시부모 사랑 받을 거예요. 물론, 내 사랑하는 남편 사랑이 빠지면 안 되겠죠.”

당신 따위 끼어들 틈도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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